이론과 실천이 합치하는 21세기 변혁이론

  사회ㆍ경제적 변화에 따른 의식의 변화와 현실적요구 수용하기 위한 여성학강의 늘고있어

  요즘은 표면상으론 많이 나아진 것 같다. 전에는 걸핏하면 『무슨 여자가ㆍㆍㆍ』『여자답지 못하게시리ㆍㆍㆍ』등의 꾸지람 비슷한 것이 여자들 뒤꽁무니를 늘상 따라 붙기 마련이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엔 남자후배들이 오히려 여자후배들의 몸에 습성처럼 달라 붙어 있는 소극성과 의존성을 끄집어 내어 비판하고 각성시키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참으로 신선하고 대견한 모습이다. 물론 전체를 놓고 볼 때 아직은 그런 제스츄어가 낯설고 흔치 않은 모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움직임 일상사에서 보여지기 시작했다는 점과 남ㆍ녀가 함께 여성의 문제를 남성 대 여성의 문제가 아닌 보다 구조적ㆍ역사적 문제로써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시대에 사는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내가 몸으로 머리로 느껴지는 성차별의 굴레에 대한 억울하고 울화통이 치미는 막연한 울분을 다소 체계적이고 이성적인 안목과 접맥시킬 수 있었던 것은 89년도 수강했던 「여성과 사회」라는 강의를 통해서였다.
  햇수로 벌써 3년이나 되었지만 강의 형식과 내용의 신선함, 그리고 문제를 풀어나가고 인식을 심화시켜 가는 과정의 자연스러움과 여성문제를 과학적으로 고민하고 그 해결의 전망을 가져보자라는 실천적 합의를 지난 것이었기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강의는 여성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구조속에서 여성의 위치레 대해 문제제기한다. 즉 여성문제는 대 남성투쟁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구조적ㆍ역사적 측면에서 여성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현재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구조내에서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현대 산업화된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과 급변하는 사회속에서의 여성의 적응문제이다. 즉, 기존에는 여성은 가정, 남성은 사회라는 이분법적 도식이 별무리없이 온존되는 사회였으나, 70ㆍ80ㆍ90년대를 거치면서 여성들의 대거 사회진출현상과 넘쳐나는 욕구, 그리고 전체 가정부의 30%가 부업을 지니고 있고 더 많은 수가 이를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문제는 바로 여성들이 변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집약될 수 있다.
  여성이 받는 차별과 억압을 뜻하는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다. 여성차별적 관습의 문제가 본질적인 여성문제라고 보는 사람은 그것이 교육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고,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은 남녀의 생물학적 성차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다소 비현실적이며 격양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또, 여성문제를 사회구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로 보는 사람은 사회구조의 변혁에서 그 해결점을 찾기도 한다.
  사실 여성은 유사 이래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억압을 받아 왔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성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여성들이 받고 있는 억압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고 이에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 것도 역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등장이라는 객관적 환경에 직면하면서 부터이다. 따라서 핵심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여성문제의 본질이며, 이는 성차별과 계급차별이 어떠한 관계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그런데 여성학의 요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차별은 계급차별을 지탱하는 동시에 계급차별에 의해 강화된다라는 논지이다.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은 성ㆍ인종ㆍ연령등 모든 차이를 차별화함으로써 이윤 추구를 극대화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도 자본에 막대한 이익을 주기 때문에 유지ㆍ강화되는 차별의 일환으로 본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라는 모순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모순인 계급관계를 유지, 강화하기 위한 특수한 모순으로 관철된다. 여성이 받는 성차별은 개인적이고 별개의 차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그 착취를 위해 온존ㆍ강화하는 차별인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문제의 본질은 계급적으로 분리시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자본가 계급의 여성은 극히 소수로 부유함과 안락함을 누리지만 남성에 의존해서만 부유함을 누릴 수 있으며 이런 기생적 삶에서 오는 무료함과 소외를 겪고 있다.
  브띠 부르조아ㆍ중산층ㆍ부르조아 인텔리 여성의 문제는, 이들이 정치적ㆍ경제적ㆍ법적 불평등을 겪는다는 점이다. 독립적인 경제력이 없기 때문에 남성에게 종속되어 가정에 얽매여 있는 이 계급의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직업기회를 보장받는 것이 최대의 과제이다. 그러나 자유경쟁시장의 문을 열어 달라는 여성들의 이 요구는 여성과의 경쟁에 두려움을 느낀 남성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되어 대남성투쟁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노동자계급 여성에 있어서의 문제는, 끊임없이 값싼 노동력을 요구하고 그것을 착취하려는 자본의 욕구 때문에 발생한다. 이 계급의 여성은 생계를 위해 어려서부터 노동현장에 나오게 됨으로써 값싸고 순종적이어서 자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노동력이다. 그러나 이들이 결혼하거나 임신하면 퇴직시키는 것이 당연한 규정이되고 있다. 자본가는 쓸 수 있는 미혼의 노동력이 널려 있기 때문에, 모성보호의 부담을 걸머쥐고 기혼여성을 고용할 필요가 없다. 여성노동자들은 너무나 고달퍼 결혼이라는 환상에 매달리지만 남편은 십중팔구 같은 노동자 계급의 남자이기 때문에, 집안일과 더불어 하루종일 일해 봤자 몇 천원벌이가 고작인 가내노동으로 혹사당하거나 마흔 때보다 더 낮은 임금으로 다시 노동현장에 나올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자본가는 기혼여성의 이 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한다. 따라서 미혼이든 기혼이든 노동계급의 여성운동은 부르조아나 쁘띠 부르조아 여성이 같은 계급의 남성에 맞서 싸우는 것과는 달리 자본가의 착취 폐지라는 공통의 이해를 위해 같은 계급의 남성과 연합할 수 있다. 자본가가 언제라도 싼값에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여성 노동력이 쌓여 있기 때문에 남성의 임금보다 더 낮아지는 식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착취는 남성에 대한 착취와 한 고리로 묶여 있는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사회 여성의 문제는 보다 명확히 정의될 수 있다. 즉, 『자본의 논리에 의해 여성 노동력이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것』이다. 여성은 가사 노동전담자로 규정되면서 활동영역이 가정에만 국한됨에 동시에 노동시장에 자본에 의해 노동력이 직접 착취되고 있다.
  왜 그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 재생산은 각 가정을 단위로 여성에 의해 전담된다. 자본은 노동력 재생산의 부담을 각 가정을 단위로 떠맡겨 버리고 여성이 봉사의 차원에서 무보수로 그것을 수행케하며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성별분업-여성은 가사노동 전담자, 남성은 생산노동 전담자-과 그것에 기초해 가족은 유지되며, 동시에 여성은 그것으로 인하여 억압당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에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것은 가사노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을 통해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은 여성을 가사노동의 영역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여성의 산업노동은 필수적인 부분으로 되어 간다.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노동과정은 단순화ㆍ기계화ㆍ자동화됨에 따라 육체노동의 현격히 줄어들게됨에 따라, 그리고 여성노동력은 생계보조적이라는 이유로 저임금을 주어도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가사노동 전담자로서, 저임금 노동력으로서 존재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체제의 유지자체가 여성의 가사노동전담과 저임금 노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해결점은 무엇인가?
  먼저 가사노동의 문제는 노동력 재생산이 각 개별가족을 단위로 사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한편 생산노동의 문제로 여성은 가장 낮은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한다는 문제로서, 남성과는 애초에 직종이 분리되어 있거나 같은 일을 해도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등 여성의 차별임금이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야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사노동과 생산노동의 문제는 각각 별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히 인식될 필요가 있다.
  이 강의가 여성문제 해결을 위해 내리는 실천적 합의는 다음과 같다. 노동력 재생산이 개별가족을 단위로 여성에게 전담되지 않아야 하며, 가사노동은 사회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안일의 대부분을 사회적 노동으로 바꾸어 여성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되거나, 가사노동이 엄연히 사회적 노동, 생산적인 노동으로 가치평가됨으로써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적 노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차별이 사라져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모성보호는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이처럼 가사노동의 문제와 생산노동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여성은 억압받는 성으로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으며, 아울러 남성역시 인간해방이 가능할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겐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성운동, 여성의 특수한 이해를 반영하는 여성운동이 필수적이다. 이 때의 여성운동은 전체 사회운동의 부분 운동으로 자리매김되며 여성노동의 문제라든지 농촌여성에 핵심을 둔 운동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89년에 처음 이 강의가 설강되었을 때 우선 주목을 끌었던 것은 팀 티칭(Team teaching)운영방식으로 여성문제의 포괄적 이해의 가능성을 넓혀준 그 새로운 시도였다. 사실 여성문제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토대로부터 야기되고 규정되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상부구조 전 영역에 걸쳐 깊이 삼투되어 있다. 따라서 이 강의는 각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팀티칭 방식으로 여러 분야를 포괄함으로써 풍부함 이해를 돕고 있다. 물론 팀 티칭 방식에서 드러날 수 있는 문제점-관점의 차이등-이 없을 수 없다. 욕심을 낸다면-학생들의 열의가 전제되어야 겠지만-각 전문분야 선생님들과 주제별 세미나 형식을 시도해 본다면 팀 티칭 방식에서 우려되는 관점의 차이도 극복될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각 개인의 실존적 깨달음이다. 우리가 제기하는 해결의 전망이 현실 속에서 구체화된 역동적 실천으로 드러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연희(국문ㆍ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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