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 「북한언어학연구」학술발표

  지난 3월23일과 24일 이틀동안 한글 학회에서는 「북한의 언어학 연구」라는 제목으로 연구발표 모임을 가졌다. 10명의 학자가 북한의 「문장론, 방언학, 국어사, 음운론, 향가 해석, 이두, 형태론, 품사론, 방언지리학, 국어학사」에 대한 연구성과라는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이번 발표의 목적이었다. 이번 발표회를 위하여 지난해 여름부터 20명의 국어학자들이 몇차례 모임을 가지면서 연구를 해왔고, 그 결과는 늦어도 6월말가지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여서 발간될 예정이다.
  필자는 위의 연구 분야들 가운데서 「문화어 음운론」에 대한 북한에서의 업적을 검토한 일을 맡았다. 10명의 학자들의 발표 내용을 듣는 가운데서는 북한의 언어학계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의 새로운 공통어(또는 표준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어를 체계화하고 완벽하고 연구하는 데에 심혈을 쏟아 왔다는 것이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특히 문화어의 통어론, 형태론, 품사론, 조어론, 음운론의 연구와, 그 연구성과의 활용은 일관성있게 강력한 행정력의 지원을 받아오고 있다.
  한글 학회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분단 46년에도 끄떡없이 남쪽과 북쪽의 사람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묶어주고 있는 것은 우리말이며, 앞으로 나라가 하나되는 날이 올 때, 우리의 말에 있어서 만은 실제 사용면에서나, 학술면에서나, 교육면에서나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 하는 길을 터놓기 위한 것이다.
  표준말은 서울말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진 것으로 처음에는 남쪽과 북쪽의 공통어였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양쪽의 주민들이 두루 쓰는 공용어였으나, 분단 상태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 예상됨에 따라 북쪽에서는 새로운 공통어를 제정하는 것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회주의 혁명과 주체사상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기 위해서도 언어가 「혁명의 힘있는 무기」라고 그들에게는 여겨졌던 것이다.
  북쪽의 말은 인위적으로 추진된 언어 정책으로 말미암아 변질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남북 사이에 언어의 이질화가 심각할 것이라는 일부 남쪽의 언론인과 학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남쪽의 표준말과 북쪽의 문화어는 민족어로서의 동질성이 충실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점이 이번의 연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는 것이 큰 다행으로 여겨진다.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회 집단의 구조와 문화및 정치ㆍ경제 체제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북쪽의 낱말들 가운데는 소리가 같으면서 그 뜻이 남쪽의 낱말과 다른 것들이 약간 있고, 사회주의 체제와 주체사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새로 만들어진 것도 몇 개 눈에 띄지만 그러한 낱말들은 조국이 하나가 되어 거기에 맞는 새로운 체제가 전개될 때는 자연히 없어지거나 변화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일은 못된다. 북쪽의 민중들이 쓰는 대부분의 낱말들과 어법은 남쪽에서 쓰는 말보다 훨씬 더 순수하게 보존되고 발전되었으며, 그 발음도 다듬어져 있다. 이것은 민족어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북쪽 사람들의 자각과 끊임없는 노력과 일관성 있는 언어및 교육정책과 학자들의 연구의 성과이다.
  남북간의 언어의 이질화는 서양말에 대하여는 무조건 개방적이며, 우리의 고유어를 가벼이 여기고, 국어를 순화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남쪽의 일부 국민들과 일관성 없는 언어정책을 펴 왔던 교육 당국에 오히려 책임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지난날의 잘못과 게으름을 고쳐 가야할 것이다.
  이제 우리말을 연구하는 남북 학자들의 학문하는 경향에 대하여 몇마디 말해 두겠다. 1960년경까지만 해도 우리말을 연구하는 남북 학자들의 연구경향과 그 내용및 능력의 차이에 지나지 않았다. 양쪽이 다 전통문법의 범위안에 있으면서 음운론에 있어서는 유럽과 영국의 구조주의 이론에 접하고 있었다.
  1960년대 중반이 넘으면서는 북쪽에서는 새로운 언어 이론을 국외에서 도입하는 데는 폐쇄적이었으나, 대신에 독자적인 역량을 쌓으면서 국어의 민족어로서의 특성과 우수성을 발견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이론적인 면에서는 남쪽보다 다소 뒤져 있으나 독자적인 이론을 전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많이 쌓았기 때문에 멀지 않아 이론적인 열세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같은 시기에 남쪽에서는 미국의 기술언어학을 도입하여 음운 분석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70년대로 들어오면서 미국에서 일어난 (변형)생성문법과, 그 영향으로 일어난 여러가지 현대적인 통어론과 같은 배경에서 시작된 생성음운론과 생성형태론에 접하면서부터 신진 학자들이 우리말의 연구를 통한 독자적인 방법론을 제쳐두고 미국의 아침 저녁으로 바뀌는 이론을 쫓는 데에 주된 힘을 쏟았다. 그러다가 보니 진정한 국어의 특성과 국어에 나타나는 언어 현상들의 본질을 밝히지 못하고 외형적인 언어의 보편성만 강조하는 미국의 언어 이론을 위하여 많은 젊은 학자들이 복무하는 꼴이 되었다.
  언어학은 그 연구방법이 다른 인문과학에 비하여 매우 자연과학에 접근해 가는 특징이 있다. 특히 필자가 연구하는 음운론은 소리를 연구하는 음성학의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하기 때문에 더욱 자연 과학에 가깝다. 그러나 음운론이 인문학인 이상 인간의 연구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음악과 서양의 음악이 모두 소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서양 음악의 이론으로 우리의 전통음악(보기를 들어 「가야금 산조」나 「판소리」)을 분석하고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언어의 여러 가지 체계, 이를테면 낱말의 체계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분절 방식을 반영함과 동시에 세계 인식의 방법을 반영한다. 수평적인 가족 관계의 일부를 「형-오빠-언니-누나」로 분절하는 우리말과, 같은 것을 「시스터-브라더」로 이분하는 영어와, 이들을 통털어서 낱말 하나로 부른 필리핀의 타갈로그어는 가족 관계를 분절하고 인식하는 방법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발음기관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물리-생리적으로 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 분절 방법과 인식 방법은 예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국어를 떠난 보편적인 이론은 국어세서 다른 언어들과 구별되는 진정한 국어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는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마치 서양 음악 이론으로 진정한 우리의 음악을 분석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인문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인문학의 하위범주에 들어가는 우리의 역사ㆍ철학ㆍ문학ㆍ언어학은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떠나서는 참된 학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볼때 북쪽의 우리말에 대한 연구태도에서 많은 정당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학문이란 항상 더 높은 이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론 추구에 힘을 쏟아 온 남쪽의 젊은 학자들에게도 격려의 마음을 주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론의 개발을 늦추거나 남의 이론을 빌어다가 적용만 해서는 국어학의 진정한 발달을 바라기 어렵다. 우리는 항상 세계적으로 우수한 민족어와 세계에 으뜸가는 한글과 15세기부터 쌓여 온 우리의 언어이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여 우리의 국어를 통한 보편적인 언어 이론을 세계 학계에 바쳐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가지 덧붙일 것은 우리 선조들의 업적에 대한 가치를 바르게 인식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에 대하여 북쪽의 국어학자들은 『우리 선조들은 오랫동안 불합리하고 순탄하지 못한 글자 생활을 해오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하여, 진지한 연구를 거듭한 결과, 드디어 144년 민족 글자 훈민정음을 만들어 내었다』는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누가 만들었으며 그것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어떠했는지, 창제에 대한 사대주의 학자들의 거센 반대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기술을 북쪽 학자들의 책에서 한마디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은 훈민정음의 학문적인 가치를 외면하고 외국의 이론만을 쫓는 일부 남쪽 학자들에 못지 않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른 나라의 학자들까지도 찬탄해 마지 않는 세종임금과 그를 도와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집현전 학사들의 우리글 창제의 공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민중을 억압하던 봉건시대의 왕과 그를 추종하던 부하들로만 평가하겠단느 것인가? 그분들이 우리 민족과 온 인류에게 물려 준 가장 값진 학문적인 문화 유산은 시대마다의 정치적인 체제를 뛰어넘어서 남쪽과 북쪽의 겨레는 물론이고 온 인류가 기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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