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성 길러 학점 올리는 불편한 진실

일러스트 김하나
  즐겁던 백마축전이 끝나고 반갑지 않은 손님, 기말시험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놀기 바빴던 친구들의 단체 채팅방에는 어느새 시험과 성적에 대한 걱정이 오간다. 그런데 주고받는 말 속에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바로 족보다. 여기서 족보란 예상 기출 문제를 말하는데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려준다는 특징 때문이다. 시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족보를 찾을 수 있다. 족보는 단연 대학가에서도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해왔고 우리학교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대학은 교수의 스타일에 따라 시험문제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족보는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따라서 족보만 있다면 특정 교수의 문제 유형을 파악해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족보가 없는 학우는 시험범위에 해당하는 내용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시험문제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는 작업까지 마쳐야 시험을 완벽히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족보가 있는 학우는 시험문제가 어떻게 나오게 될지 예상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족보가 있는 학우는 족보가 없는 학우보다 훨씬 빨리 시험을 준비하고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다.
  보통 족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예상 기출 문제 족보’로 이전에 시험 문제가 어떻게 출제됐는지 분석해 놓은 자료다. 또 하나는 ‘핵심 족집게 족보’로 시험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내용을 요약해 정리한 것이다. 최근에는 심지어 ‘해석족보’까지 등장했다. 원문 교재를 사용하는 과목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는 번역본인 것이다. 족보는 이처럼 우리 주변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족보를 구할 수 있는 경로 또한 다양하다. 보통은 선배들이 과방에 게시하거나 학과 동아리 방에 게시한다. 하지만 족보의 개수는 한정적이라 모든 후배들에게 제공될 수 없어 친분이 있는 후배에게만 물려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선배들과 친한 후배들 사이에서만 오간다. 그래서 친한 선배가 없는 학우들은 족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사교성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시험 정보가 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 족보로 시험을 준비한 기자의 친구가 시험문제가 똑같이 나왔다며 자랑한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족보가 좋은 선물이겠지만 족보를 받지 못한 자에게는 허망함을 안겨줄 뿐이다. 시험이라는 공정해야 할 경쟁에 족보가 걸림돌이 된다면 족보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사교성에 따라 받는 학점이 진정한 학점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최병인 수습기자
bright9400@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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