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정을 보냈던 전화

  몇달전, 고향읍내에 있는 전파상 앞을 지나다가 문득,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물건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70년대 시골부락에서나 볼 수 있었던 까맣고, 묵직하며 옆에 돌리는 손잡이가 달린 자석식 전화기가 진열대의 한쪽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고요히 앉아 있는 것이다.
  내 어린시절, 우리 부락 마을회관의 스피커에서 OO아버지는 서울에 아들에게 전화왔으니 빨리 오라는 이장 아저씨의 구수한 목소리가 부락 전체에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허겁지겁 다려가시던 동네 아저씨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 자석식 전화기는 사용하는데 다소 불편하였으나 이 전화기 하나는 다른 곳에 사는 그리운이의 목소리를 가장 빨리 들을 수 있는 수단으로 부락민 전체가 그 편리함의 혜택을 받았고, 먼곳의 사람과 인정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즈음은 전화의 용도에서 이전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어린아이의 장난감전화에서 조차 모습을 감추어 버린 자석식 전화기를 사용한 그때에 이웃간의 따뜻한 정과 서로를 위하는 사랑, 믿음이 살아 숨쉬었다. 오늘날의 이웃이란 담하나의 거리에 몇십리의 무심함으로 사는 것 같아 나의 가슴을 메마르게 한다.

  男이영재(무역ㆍ4)

  전화 예찬론

  「창을 사랑한다는 말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서 좋다」라고 읊었던 이는 아마도 김현승님이었을게다. 이 글귀는 한국인의 정서중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을 칭송한 것이리라. 어떠한 사물을 한 걸음 물러나 볼 수 있을때 비로소 그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들 한다. 전화가 그렇다. 마주하고 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전선을 통해 오고간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통해 그리움을 전하고 그동안 망설였던 사랑을 전하기도 한다. 매일밤 잠들기전 누군가 전화를 걸어와 「잘자」란 인삿말을 건넨다면 어떻까. 그의 목소리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감미로운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부디 전화하는 것에 인색해지지 말기를. 이제 가을이 낯설지 않다. 여름의 종착역은 이렇게 각자의 우산속에서 맞게 되는가 보다. 어제까지 그렇게 무겁더니 오늘 기분좋은 신선함과 함께 비가 내린다. 오늘비는 좀 행복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오랜만이란 풋풋함때문인지, 가을이 오리란 설레임때문인지. 이런날 아주 반가운 목소리에게 빗소식이라도 알리고 싶어진다. 그저 「비가온다」란 한마디를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아도 나를 흉보지 않을 어느 고운 목소리에게. 주머니에 금화 두닢이 남아 뒹구는 날. 그리운 이름에게 수화기를 들자. 전화를 걸어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한 사랑 한 웅큼 안겨주기로 하자.

  女문정숙(문헌정ㆍ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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