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아리 ‘답사여행’ 이 답사 가는 날, 하늘은 곧 비라도 뿌릴 듯 잔뜩 찌푸려 있다. 그러나 첫 답사지 문경새재에 도착하니 바람은 다소 세차지만 하늘은 푸르기만 하여 기분이 상쾌하다. 새재는 ‘鳥嶺(조령)’ 이라고 하듯이 ‘새도 쉬어 넘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일설에는 조선시대에 이곳에 새로 길을 내었기 때문에 우리말의 ‘새로운’ 의 뜻이라고 한다. 문경새재의 세 관문은 모두 임진왜란 후에 건축되었다. 임난 때 왜인들이 문경새재를 너무 쉽게 통과하여 서울이 바로 함락되었기 때문에 새재를 지었으나 그 후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쓰인 적이 없다고 하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 곳곳에 역사드라마 왕건과 무인시대 촬영을 위한 세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볼만하다. 새재를 넘는 길은 푸른 물이 흐르고, 단풍이 곱게 물들어 너무도 아름다우며, 3시간만에 도착한 3관문 정상의 주위풍경은 기히 볼만하다. 우리가 걸어온 잘 닦인 길은 과거급제 후 금의환향하는 길이고, 옆으로 난 오솔길이 과거 보러 가는 길이란다.
 들녘을 지나 마주한 충주 탑리 7층 석탑. 중앙탑으로 불리는 통일신라의 독특한 탑이지만, 어딘지 우아함과 기교의 맛이 떨어지는 듯 . 그러나 높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아름다운 충주호와 멋진 조화를 이뤄 한 폭의 절경이다. 교과서에서 수없이 배운 중원 고구려비. 고구려 장수왕이 남하정책으로 백제 개로왕을 죽이고 한강 유역을 정복한 기념으로 세운 비석이다. 비석에는 신라의 왕으로부터도 신하의 예도 받았다고 하는. 국사시간에는 배우지 못했던 사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삼국통일을 한 신라보다 고구려와 백제가 더 가슴속에 아려온다.
 하루를 보낸 여주는 세계 도자기 축제가 열리는 중이다. 조선시대에 번화했다는 이포나루터를 바라보며 오른 파사산성은 그 빼어난 산세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산 아래에서는 산성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되지 않았는데, 교수님은 어떻게 알고 안내하고 설명을 해주시는 건지. 정상에 서니 굽이굽이 도는 남한강은 물론이고 저 멀리 이천과 여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통일신라 때 창건되고 고려시대 전국 제 1의 사찰이었다는 고달사는 폐사지가 되어 쓸쓸히 맞이하고 있다. 이곳을 일으킨 원종대사가 중국 유학 후 귀국할 때, 통일신라는 이미 망하고 고려가 건국되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황당하고 세월의 덧없음과 삶의 공허함을 느꼈을까? 황량한 절터를 거닐며 인생사가 한순간의 꿈과 같다는 생각에 빠져든다. 마지막은 명성황후 생가. 몰락한 양반집에서 태어나 국모가 된 명성황후. 그녀는 신데렐라였는가? 권력의 화신이었는가?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의 끊임없는 권력투쟁. 종국에는 일본 깡패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차라리 평범한 여인이었다면?
 가을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동아리 답사에 참가했는데, 이름조차 몰랐던 유적지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와 선인들의 발자취를 하나씩 더듬어가면서, 보고 느낀 것이 너무도 많았다.경상도에서 태어나 나도 모르게 신라위주의 편협한 역사의식 속에 있었는데, 백제와 고구려, 고려 등의 문화를 보고 배우니 인식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 우리의 역사와 땅을 밟아보는 것이 진짜 역사이고 산 지식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번 답사는 인생답사이기도 했다. 벌써부터 다가올 일출답사와 중국답사에 마음이 설렌다.

우현영(물리 · 3)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