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쿠데타의 사회적 배경과 전망

  개혁의 혼란으로 보수세력의 위기감 표출

  1. 쿠데타, 충분히 예견되었던 사건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 운동이 힘겹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조만간 정통노선(소련에서 공식화되어 있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견지를 표방하는 세력(소위「보수파」)에 의한 쿠데타가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하더라도 시도될 것이라는 점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충분히 감지되고 있었다. 정통 노선의 실패를 공공연히 선포하고 「신사고」에 입각하여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페레스토로이카 운동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 소련 경제의 소생 및 소련 인민의 생활의 개선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아무런 실질적인 성과도 거두지 못하는 가운데, 보수파는 보수파대로, 급진 개혁파는 급진 개혁파대로,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불만을 심화시켜 갔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자본주의로의 복귀운동이 아닌지 의심받을 수 있을 정도로 목표로 하는 개혁의 폭을 넓혀가는 페레스트로이카를 보면서 보수세력이 감지하는 위기가 심화되어 갔다. 그 보수세력은 여전히 권력의 핵심부에 포진해있고 광범한 조직망도 가지고 있었다. 쿠데타의 발발은 예감되기 시작했다. 과연 쿠데타는 시도되었고, 그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이 글에서는 이 드라마의 필연성을 예비했던 과정을 살펴본다.

  2. 정통 노선의 이론과 실제

  소련에서 공식화되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적 발전노선의 주요 측면들은 요컨데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1)경제적 측면: 소유관계에 있어서 국가소유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여서 결국은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소유화 하며 이에따라 모든 기업은 국영기업화 한다. (농업의 경우 모든 농장의 국영농장화) 이를 물적 기초로하여 민주집중제의 원리에 따른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전면적으로 관철시키고 사회주의적 균형발전 및 사회주의적 확대재생산을 추진한다. 완전고용을 실현하며 생산력을 빠른 속도로 발전시킴으로써 점차 「노동에 따른 분배」로부터 「필요에 따른 분배」로 이행해 간다. 이로써 인민들의 평등한 삶과 소비생활의 향상을 실현시킨다.
  (2)정치적 측면: 프롤레타리아 당파성을 견지하는 공산당이 국가를 일당 지배한다. 공산당은 인민의 가장 선진적이고 활동적인 부분들로 조직된다. 당 및 국가는 모두 민주집중제의 원리에 따라서 활동한다. 공산주의의 발전단계가 높아져가고 계급적 이해관계 대립의 남은 자취들이 점차 소멸되어감에 따라서 「계급지배의 도구」로서의 국가도 최종적으로는 소멸되며 민주적인 행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3)문화, 이데올로기적 측면: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유일하게 올바른 사상, 이론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교양을 강화함에 따라 인민들은 자신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을 동일시 하고, 공동체를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고결하고 헌신적인 사회주의적 인간으로 변모해 간다.
  (4)소연방 내 공화국들간의 관계의 측면: 각 공화국들의 자결권과 연방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권리(자결권의 일부이다)는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큰 국가는 작은 국가에 비해서 많은 장점을 가지기 때문에, 연방제는 하나의 큰 국가로의 완전한 통일로 나아가는 과도기의 형태로서 이해된다.
  (5)국제관계의 측면: 국제관계의 대원칙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이다. 소련은 세계의 모든 진보적인 운동의 구심체의 역할을 한다. 사회주의형제국들과는 착취를 수반하지 않는 호혜적인 사회주의적 국제분업과 사회주의적 경제통합을 강화하고, 반제 공동전선을 형성한다. 제국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은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를 갖는다.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사회주의세력은 제국주의의 간섭과 반혁명 기도로부터 혁명의 성과를 지켜내야 할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다른 세력들도 지원해야 한다. 특히 제국주의 신식민주의적 지배와 억압에 시달리는 발전 도상국들에서의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해야 한다.
  이상이 간략히 살펴 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주요 측면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중요한 점들에서 이론을 배반하게 되었다. 그 중 다른 모든 사정들의 기초가 되는 가장 중요한 사정은 소련 경제가 초기의 활력을 상실하고 주요 생필품이 부족할 정도로 심각하게 생산력 발전의 정체를 겪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민주집중제의 원리에 따라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물 추진해 나가는 주체인 공산당과 국가가 인민으로부터 유리되어 비능률적이고 부패한 독재기구로 전락해 버리게 되었다는 사실인데, 후자는 전자의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나. 인민의 근로의욕 약화, 사회주의에 대한 신봉의 약화, 당 및 국가와의 동일시의 이완, 공화국들 내에서의 민족주의의 고취와 연방 이랄 움직임의 심화, 사회주의 형제국들사이의 타결의 이완, 국제정치 무대에서의 소련의 영향력 약화 등 여타의 사정들은 근본적으로 소련정치경제의 이와 같은 위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3. 페레스트로이카의 시련과 갈등의 심화

  소련 정치경제의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이의 시정을 위한 운동으로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추진되기 시작했다(글라스노스트는 페레스트로이카의 한 중요한 부분이다.)페레스트로이카의 중요한 측면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경제적 측면: 개인적 소유의 인정과 이의 확대, 다수 국영기업의 개인기업으로의 전화, 시장 메카니즘의 도입(계획과 시장의 조화), 노동에 따른 분배라는 원칙의 실질적 적용, 인민 소비생활의 향상.
  (2)정치적 측면: 공산당 일당 지배 포기(다당제 인정). 공산당 역할의 축소와 국가역할 강화. 공산당에 대한 국가의 자율성 강화, 민주집중제의 회복, 정보, 공개(글라스노스트).
  (3)문화, 이데올로기적 측면: 페레스트로이카 식으로 이해되는 사회주의적 도덕성 강화.
  (4)소련연방 내 공화국들간의 관계의 측면: 연방 정부 권한의 축소와 공화국들의 자율권의 확대, 일정한 과도기를 거친 후의 분리독립 인정)희망하는 공화국의 경우.
  (5)국제관계의 측면; 사회주의 형제국들과의 단결 강화, 사회주의 형제국들에 대한 소련의 실질적 내정간섭의 철회, 제국주의와의 평화공존 추구, 군비축소, 자본주의 세계체제 내부의 사정들에 대한 불간섭(플로레테리아 국제주의의 실질적 포기), 자본주의 나라들의 소련 투자 허용, 자본주의 나라들과의 교류 증진.
  이상이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요한 측면들이다. 전술했던 정통 노선의 여러 측면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우선 페레스트로이카가 정통 노선이 예측했던 것과는 적어도 그 방향에 있어서는 반대되는 쪽으로의 변화를 추구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 역시 소련의 경제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는 없었다. 낡은 방식의 통제는 이완되었다. 그렇다고해서 페레스트로이카의 추진자들이 희망하는 새로운 질서가 작동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결과 페레스트로이카가 추진되는 기간에도 소련의 경제위기는 오히려 심화되어 갔다.
  사회주의권의 약화와 해체만을 고대하는 제국주의 나라들로부터의 실질적 지원의 부재도 부분적으로 작용했겠지만, 페레스트로이카에 시련을 안겨준 근본적인 원인은 소련 내부의 분열에 있다. 개혁 세력들로부터의 집중적인 비판에 의해 현저히 위세가 약화되기는 했지만, 정통 노선을 고수하는 세력들은 여전히 당과 국가의 구석구석에 포진해 있으면서 페레스트로이카의 개혁에 제동을 걸었다. 사회주의의 포기와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세력들은 그들 나름대로 페레스트로이카가 추구하는 개혁의 미진함을 공박했다. 국민적 합의는 형성되지 않았으며, 그런 가운데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경제 개혁의 실패가 이미 심각한 상태에 도달해 있는 내부 분열을 더욱 심화시켰다. 사회주의 혁명과 그 이후의 건설에 의해 짜리즘의 수탈과 압제 하에서 고통을 겪었던 부모나 조부모보다도 훨씬 처지가 좋아진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정보다는, 현재의 제국주의 나라들의 인민들에 비해서 뒤떨어지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정에 더 예민한 감수성을 갖는 인민들은 점점 더 급진 개혁파의 지지자로 변모해 갔다. 이에 따라 페레스트로이카는 시간이 흐를수록 목표로 하는 개혁의 폭을 넓혀갔다. 물론 고르바초프가 사회주의적 룰 내에서의 개혁, 인간적 사회주의의 건설을 목표로서 공언하기는 했지만, 그 말의 진실성을 의심케 할 정도로 사회주의의 핵심적인 원칙들에 대한 수정들이 가해지게 되었다. 공산당 일당 지배의 부정, 글라스노스트와 군축, 공화국들의 자율권 강화등의 조치들은 정통 노선을 견지하는 기득권 세력의 존립기반을 크게 약화시키는 것이고, 이에 따라 그들의 위기의식은 고조되어 갔다. 아울러서 쿠데타 발발의 가능성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과연 그것은 일어났다.

  4. 쿠데타의 실패와 페레스트로이카의 운명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쿠데타 세력들은 조국과 사회주의를 분열과 퇴행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 그 것이 불가피했다고 말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 인민들은 소련의 사정을 현재와 같은 위기로 빠뜨린 데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세력들이 다시 전면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소련 인민들은 쿠데타 기도를 보수세력들의 기득권 지키기 비상대책 정도로 이해했으며, 그들의 재등장을 암흑시대의 재현으로 이해했다. 인민들은 단결하여 쿠데타를 좌절시켰다.
  쿠데타의 기도와 그것의 실패는 정통 노선과 그 주도세력의 대중적 기반을 더욱 약화시켰다. 개혁에 대한 보수세력으로부터의 조직적인 반발은 적어도 당분간은 어렵게 되었다. 그것은 페레스트로이카를 좌측으로 끌어당기던 힘이 약해진 반면, 우측으로 끌어 당기는 견인하는 힘이 드세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컨대 문제는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보수세력이 완전한 끝장난 것도 아니고, 좀 더 개혁의 폭을 넓히게 될 페레스트로이카의 전도를 가로막은 장애요인들이 모두 제거된 것도 아니라는 데에 있다. 자본주의적 요소를 강화해 가는 개혁 그 자체가 그리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소련인들이 오래동안 잊고 있었던 각종의 문제점들이 노정될 가능성이 크고, 그때 쯤에는 인민들이 또다시 정통 노선에의 향수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소련의 이번 정변은 아무도 그 귀착점을 알 수 없는 소련의 개혁 몸부림의 과정에서 반드시 통과하도록 되어 있었던 한 국면이었을 뿐, 그것으로서 사태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라고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박노영(사회ㆍ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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