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 제기

  최근 재벌에의 경제력집중의 문제와 그에 대한 정책방안의 논의가 사회 각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여 보면 재벌문제를 보는 시각에 상당한 편차를 드러내고 있을뿐 아니라, 재벌에의 경제력집중에 대한 대책에 있어서도 커다란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과 견해의 차이는 부분적으로는 각 경제주체의 상이한 가치판단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나, 상당부분에 있어서는 오도된 시각과 취약하거나 그릇된 논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본고에서는 지난 7월26일 전경련 주최 최고경영자세미나에서 행한 「제7차 5개년계획과 기업의 역할」이라는 제하의 경제기획원장관의 강연으로 표출된, 재벌에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정부의 견해와 이에대한 재계의 대응으로, 8월 하순에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제 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의 주요과제와 정책방안」에서 제시된 재벌에 대한 논의, 그리고 지난 2월에 「경실련」에서 발간한 「재벌」에서 제시된 재벌에 대한 문제인식과 그에 대한 대책방안을 중심으로 재벌문제를 보는 시각과 경제력집중에 대한 대책을 살펴보고, 이러한 논의들의 문제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2. 재벌문제를 보는 시각

  정부는 재벌에의 경제력집중에 대한 시각을 90년대의 급속한 국제화, 자율화, 정보화의 진전에 대응하여 기업경영의 전문성과 창의성이 요청된다는 관점에서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기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입장에 입각하여 재벌문제를 다음과 같은 같은 시각에서 보고 있다. 첫째, 진입장벽이 실질적으로 제거되어 공정한 경쟁여건을 통하여 이루어진 기업규모와 대형화는 문제되지 않는다. 둘째, 자기자본의 능력 범위내에서 위험분산을 위하여 다각화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으나 외부자금차입이나 계열그룹내의 순환식 상호출자등으로 기업영역을 무리하게 확장함으로써 재무구조가 부실하게 되거나 기업진단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은 문제로 된다. 세째, 기업진단의 소유주나 가족의 높은 지분율의 유지는 외부자금차입의존도를 높이게 되어 바람직하지 않다. 네째, 그룹집중경영방식은 계열기업군내의 모든 자금의 조정과 배분, 인력채용, 경영관리 및 내부거래를 촉진하고 계열기업간 출자와 지급보증 등을 통하여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부실기업을 존속시킴으로써 비효율을 초래하여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다섯째, 기업집단은 경쟁기업 또는 하도급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행위, 계열회사간의 내부거래에 의한 계열기업의 보호및 고유중소기업분야에의 진출에 의하여 기업집단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다.
  이상의 재벌문제에 대한 정부의 시각에서 문제로 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규모의 대형화는 어떠한 여건에서 이루어지든지 일반집중이나 시장집중을 현저히 증대시키는 경우에는 문제로 된다. 둘째, 재벌소유주의 높은 지분율의 유지는 외부자금차입의존도를 높인다는 측면보다는 오히려 재벌 소유주가 외부자금의 차입을 확보한다는 측면이 문제로 된다. 세째, 그룹집중경영방식이 문제로 된다는 시각은 재벌그룹이 경제적으로 단일 사업단위라는 실질적 측면보다는 재벌의 계열기업이 법적으로 독립된 기업이라는 형식적 측면에서 재벌을 본데서 비롯한다. 그룹집중경영방식이 야기하는 것으로 적시된 재벌문제의 근원은 계열기업군을 형성시키는 소유구조에 있으며 집중경영방식은 이러한 소유구조를 토대로 재벌그룹 입장에서 기업경영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편이라는 시각에서 재벌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고 생각된다.
  재계의 시각은 이상의 정부의 시각과는 현격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즉 재계는 재벌에의 경제력집중의 완화는 견실한 대기업성장의 억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기술력의 격차를 해소하여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성장촉진을 통해서 이룩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취하면서 경제력집중의 폐해에 대한 기존 인식에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시장집중의 주요 결정요인인 시장규모가 국제화ㆍ개방화되는 7차계획기간에는 대폭 커지게 되므로 거의 대부분의 산업에서 시장 집중의 문제는 해소되며, 해외로부터의 경쟁으로 인한 잠재적 경쟁이 높으므로 단순히 시장집중으로 시장지배력을 평가할 수는 없다. 또한 높은 이윤율은 기업의 효율성에 기인한 것이지 높은 시장집중에 기인한 것이 아니며, 경합시장(Contestable market)에서는 독점이라도 폐해가 없다. 둘째, 일반집중은 외국에 비하여 양호한 상태이며 경제 성장에 따라 자연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약 500개의 기업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30대 기업집단의 일반집중은 일본의 6대집단이나 미국의 100대기업과 비슷한 수준이다. 세째, 소유집중의 문제는 경제력집중 차원보다는 자연인의 부의 소유집중차원의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네째, 전문경영인은 장기적인 기업성장보다는 단기이윤을 추구하는 근시안적 경영형태를 보이기 때문에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경영의 효율을 저해한다. 따라서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제는 기업조직상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다는 것이 인식되어야 한다. 또한 그룹집중경영방식은 생산부문과 유통, 기술, 정보, 마케팅, 인력관리 등과 같은 생산지원부문에서 범위의 경제(economies of scope)를 거두기 위한 경영방식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불완전 시장의 높은 거래비용으로 범위의 경제가 특히 크다. 다섯째 대규모기업진단은 소수의 업종에서 관련전문화를 하고 있으며, 동일한 업종에 속하는 기업이 여러 개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다각화도가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다. 또한 유사분야의 다각화는 인력, 자금, 기술면에서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이상의 주장에 의하면 재계는 재벌문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문제가 있더라도 자유방임적으로 해소되어야 하며 정부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상당 부분의 취약한 논리와 그릇된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국제화ㆍ개방화로 시장집중의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 정도로 국내시장 규모가 대폭 커지리라고 단정할 수 없고 경합시장의 조건은 현실적으로 충족되기 어려우므로 시장집중의 폐해는 상존한다. 둘째, 일반집중은 외국에 비하여 양호하지 않다. 제조업무문 매출액 기준 100대기업에 의한 일반 집중은 한국 38.9%(1987년), 미국 41%(1972), 일본27.3%(1980년)로서 일본보다는 월등 높고 미국에는 근접하고 있다. 또한 일반집중이 경제성장에 따라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증거도 없다. 세째, 소유구조의 문제는 부의 집중뿐만 아니라 경제력집중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네째,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영자 지배기업은 단기이윤이외의 다른 경영자의 목표를 추구하기도 한다. 다섯째, 재벌의 다각화도를 나타내는 구체적인 수치가 현재 일반에게 제시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므로 그것이 과장되어 있다는 주장은 무의미하다.
  한편 「경실련」재벌문제에 대한 시각은 △경제민주화와 시장질서 저해 △분배왜곡과 정경유착 심화 △「재벌은 비관련 다각화에 의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춘 전문대기업이 육성되지 못하였고 범위의 경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 중 재벌의 경우에는 범위의 경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재벌의 경우에도 계열기업간의 공통요소(Public inputs)는 존재할 수 있으므로 이로 인한 범위의 경제는 거둘 수 있다.
  
  3. 경제력집중의 완화방안

  정부는 경제력집중문제를 기본적으로 정부의 조치와 규제에 의한 해결보다도 기업의 자기 혁신노력에 의하여 해결될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경제력집중완화를 유도하기 위하여 공정거래제도나 세제와 세정 및 금융 등 제도적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는데 중점을 둔다는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정책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대규모기업집단의 우월적 지위남용행위와 불공정한 내부거래등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제도의 운용을 강화해 나간다.
  둘째, 소유분산을 촉진해 나가기 위해 상속세, 증여세의 운용을 강화하면서 계열기업간 내부거래에 대하여 철저히 과세하며 자본시장의 육성을 통하여 기업의 공개와 소유분산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간다.
  세째, 계열기업간 지급보증을 요구함으로써 개변기업의 독립성과 책임경영체제 확립을 저해하는 금융관행을 시정한다.
  네째, 명시적인 정책방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룹집중경영방식을 전환하기 위하여 재벌의 기획조정실의 축소ㆍ폐지는 재벌을 해체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사전조치라면 의의가 있으나, 재벌존속을 전제로 한다면 재계의 주장과 같이 「경영간섭」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상의 정부의 경쟁력집중 완화방안에 대하여 재계는 다음과 같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한 걸음 나아가 기존의 재벌에 대한 정책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그룹집중경영방식은 기업이 새로운 사업방향을 모색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그룹단위의 종합적 검토와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긴 것인데 기획조정실의 축소ㆍ폐지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부인하는 경영간섭이며 사실상의 재벌해체를 뜻한다.
  둘째, 상호출자금지와 출자총액제한은 공정거래법의 원래 목적과 부합되지 않고 경제적 왜곡을 가져올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도 미미한 상태이므로 완화 내지 폐지가 바람직하다. 상호출자의 허용은 경영권확보의 불확실성을 감소시켜 기업공개를 활성화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기업소유분산에 따라 개인소유지분은 감소될 것이므로 경영권 안정을 위해서는 기업간 출자의 긍정적 영향이 증대할 것이므로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출자총액한도의 상향조정이 필요하다.
  세째, 시장집중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네째, 소유집중문제는 상속세와 증여세와 같은 세법의 정비와 공정한 적용을 통하여 장기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전망되며, 대주주의 지분을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생기는 공개 및 증자기피, 자기 자본비율저하에 의한 재무구조의 악화는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달에 의한 기업공개의 활성화를 통하여 완화되어야 한다.
  다섯째, 부의 형평성은 법인의 차원이 아니라, 자연인의 차원에서의 문제이므로 재벌에 대한 정책과는 무관하다. 이상의 정책방안 중 첫번재의 비판을 제외하고는 앞의 재벌문제의 시각에 대한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과 같은 이유로 그 논리적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한편 「경실련」의 재벌에 대한 정책방안은 재벌에의 경제력집중을 완화하기 위한 직접적인 방안뿐만 아니라 경제력집중완화의 여건을 조성하는 방안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전문경영체제의 확립△소유의 분산△재벌의 여신편중및 금융산업지배 억제 △재벌의 탈법적 세습화 방지와 재벌의 부동산투기 억제 △「경제력집중억제법」을 특례법으로 제정, 그리고 최근에 정부는 그룹집중경영방식을 중심으로 계열 기업에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정부방안 이외에 재벌회장제도및 사장단회의 폐지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상의 방안에 있어서는 다음의 두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전문경영자는 합리적 경영을 한다는 전제하에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전제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둘째, 계열기업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추가적인 방안은 앞의 논의에서와 같이 경영간섭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4.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본 정부ㆍ재계 시민단체의 재벌문제에 대한 시각과 경제력집중완화의 정책방향은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근본원인은 다음의 두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이러한 문제를, 국민경제적인 불편부당한 시각이라기보다는 각 경제주체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벌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결여된 상태여서 기존의 입장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동원하여 논의가 이루어지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재벌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두 가지 점을 유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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