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대표음식 잡채 조선시대에는 당면이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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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잡채다. 명절 때 마다 먹는 잡채는 우리민족 뿐 아니라 외국인도 좋아하는 한식 중 하나다. 잡채는 맛과 향이 일품인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이다. 그런데 당면 없는 잡채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당면 없는 잡채는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원래 잡채에는 당면이 없었다고 한다.

  구절판 같은 과거의 잡채
  오늘날 잡채의 주인공은 바로 당면이다. 잡채에 들어가는 재료 중 시금치와 당근 등은 부재료에 불과하다. 그 말은 당면이 주인공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먹었던 잡채에는 당면이 없었다고 한다. 당면이 들어가지 않은 과거 조선시대의 잡채에는 지금의 부재료에 불과했던 각종 야채들이 주인공이었다.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의 저자 김찬별 작가는 “조선시대 잡채는 도라지, 각종 버섯, 당근 등의 야채가 중심인 음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670년에 저술된 『음식디미방』이란 책에서 잡채는 갖가지 야채를 볶고 삶은 후 구절판처럼 진열한 뒤, 꿩고기를 갈아서 만든 누르미 소스를 끼얹어 완성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의 잡채는 구절판에 더 가까운 음식이었던 것이다.

  중국 음식인 당면, 일제강점기 때 들어오다
  조선시대 잡채에는 당면이 없었다는 말은 당면이 그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즉 당면이 우리나라 음식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당면(唐麵)은 원래 중국의 음식이며 한자 그대로 당나라의 국수라는 뜻이다. 하지만 뜻일뿐이지 당나라의 음식은 아니라고 한다. 당면의 당은 중국에서 들어온 음식에 붙여지던 어미일 뿐이다. 당면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때는 1912년 일제강점기 때다. 그 당시 중국인들에게 당면 만드는 방법을 배운 양재하란 평양사람이 1920년 황해도에서 다수의 중국인을 고용하면서 우리나라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당면이 잡채의 주인공으로
  당면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잡채에 사용되진 않았다. 당시에 남아있던 조선시대의 양반 문화가 당면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김찬별 작가는 “조선시대에는 면이라는 음식을 상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즉 개화기 때부터 조금씩 면이 음식의 주재료로 이용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면요리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이유는 양반 문화의 관념이 깨지기 시작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굶주림 때문이었다. 당면이 잡채에 들어가게 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 당시 당면은 부족한 곡식을 보충할 음식으로 사용됐는데 이는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본래 전통 잡채는 수십 가지의 재료가 들어가는 음식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등 현대사의 질곡 속에 배고프고 가난했던 사람들은 영양가 높은 잡채로 배를 채우기 위해 당면을 점점 더 많이 넣게 됐다. 그 결과 현재의 잡채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윤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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