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주도 세계질서재편, 제3세계 위협강화

  소련정변이후 국제정세 변화와 남북관계 전망

  1. 소련사태의 의미

  「소련사태」가 8인 위원의 체포와 고르바초프의 모스크바 귀환으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우선 옐친의 권력강화와 고르바초프의 재집권으로 요약되는 소련사태 이후의 정치상황이 소련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소련이 안고있는 경제위기와 연방해체로 대표되는 정치적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소련은 장기간 혼란상태에 빠질것임을 예견케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소련제국의 붕괴」는 중국ㆍ북한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소련사태가 여타의 사회주의 국가에게 미치는 영향은 다시 두 가지 차원으로 나뉘어 논의될 수 있다. 중국ㆍ쿠바 등지의 공산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자성의 기회를 부여할 것이라는 것이 그 하나의 측면이다. 이 경우 소련사태의 영향력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여타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를 통해 획기적인 자기점검과 정화의 계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 나라들은 이제 국제적 고립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동시에 선진자본주의의 침투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자본주의적 함포는 이미 중국이라는 「최후의 목표물」을 서둘러 겨냥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중국으로 하여금 5주일 안에 시장개방의 구체적 일정표를 제시하지 않을 경우 무역보복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발표는 이런 맥락하에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소련사태 이후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이 「혁명적」공산주의의 진로는 이 두 측면의 생존투쟁에 의해 결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였다.

  2. 미국의 신세계질서 구상과 국제정세

  그러나 앞서의 두 가지 측면과 달리 소련사태가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가지는 의미는 향후 세계질서 구축과 관련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소련사태의 결과는 그동안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던 소련의 현실적인 힘의 상실을 수반하였다. 이는 역으로 「탈냉전의 새국제질서」속에서 「신세계질서 구축」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주도권이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예견케 한다. 여기서 소련사태는 기존의 국제정세 변화추세를 가속화하는 촉매제의 역할로 위치지워진다.
  소련은 2차대전 이래 제3세계 반제투쟁에 대한 지원을 통해 국제적 지지기반을 쌓아왔다. 그러나 개혁ㆍ개방정책에 따른 고르바초프의 평화공세이후 미국과의 적대적 대립관계는 경쟁적ㆍ상호 의존적 대립관계로 재정립되었다. 이것은 초기에는 미국내 군산복합체를 고립시키고 광범위한 평화운동세력의 연대를 모색함으로써 미국의 군비 확대 노선을 저지하고자 하였으나 소련 스스로가 국내의 경제ㆍ민족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미국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에 따라 1990년대에는 2차대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소련의 영향력이 축소된 반면 상대적으로 미국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 기실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 전개이후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공세에 무력하게 대응해왔다. 미국의 파나마 침공, 니카라과 내전 개입, 필리핀 쿠데타 개입, 페르시아만 전쟁 도발 등에 대해 소련이 「평화를 호소」하는 가운데 일방적 양보를 거듭해왔던 것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따라서 향후 소련이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노골적인 군사개입에 대해 무기력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어려운 추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바로 이처럼 변화한 세계정세속에서 미국의 「신세계질서 구상」의 의미를 짚어 볼 수 있다.
  신세계질서 구상은 미국이 압도적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서방동맹체제를 동원하고 소련의 협조를 결합하는 다국적 국제협력체제, 즉 「전지구적 동맹체제」의 실현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때 중요하게 지적되는 점은 군수산업을 제외한 미국의 경제력이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뒤떨어져 있게 때문에 2차대전 직후와 같은 「팍스 아메리카나」체제의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에서 소련사태는 걸프전 이후 두드러지고 있는 미국주도의 세계질서 재편에 강한 추동력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미국이 소련을 제치고 유일 헤게모니를 창출할 수 있는 근거로 착용하였다. 게다가 소련이 서방의 경제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향후 소련이 대외문제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도 향후 국제질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과거 어느때보다 강화되는 가운데 새롭게 구성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앞으로 국제정세를 주도한다고 하여 이것이 곧 미국이 국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 결정자」로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경제적 권위 상실을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다. 경제력에 근거한 유럽공동체와 일본의 대두로 인한 국제관계의 다극화 추세는 탈냉전 이후 이미 막을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지금껏 이러한 다극화 추세의 가장 큰 걸림돌이 소련이었음을 감안할때, 소련사태에 따른 동ㆍ서냉전의 완전한 붕괴는 세계경제의 블럭화 현상을 더욱 노골화시킬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소련사태가 정치ㆍ군사관계를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를 경제관계로 바꾸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군축의 전망도 이러한 평가속에서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이다.

  3. 소련사태와 북한사회의 진로

  소련사태가 북한에게 미친 영향으로는 우선적으로 북한의 「경계심」을 지적할 수 있다. 어쩌면 소련사태는 동유럽의 붕괴보다 더 직접적으로 북한사회에 위기감을 던져줄지도 모르겠다. 소련의 정변에 대한 북한이 어느 누구보다도 고무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옐친의 실세화는 직접적으로 북한에게 충격으로 다가갈 것이다. 관영 「평양방송」이 28일 주민들에게 『내외의 적으로부터 사회주의를 보호하자』고 추구한 것이나 현체제의 안정화를 위해 내년으로 예견되었던 김정일 권력승계가 연기될 것 이라는 보도는 소련사태로 인한 「북한의 위기의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에 따라 조-소간의 군사적 측면에서의 관계경색을 지적할 수 있다. 그간 페레스 트로이카의 전개에 따라 정치ㆍ경제적 관계경색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조-소간의 군사적 협조 관계는 긴밀히 유지되어 왔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조-소간의 정치적 군사적 측면에서의 관계지속이 보수파들에 의해 가능했다고 할때, 보수파의 악화를 결과한 소련정변은 어떤 형식으로든 소련과 북한간의 군사적 유대관계에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셋째, 소련사태는 북한으로 하여금 이제 유일한 사회주의대국인 중국과 보다 연대체제를 강화시킬 것이다.
  소련사태에 대한 중국의 공식적인 견해는 화평연변(和平淵變: 평화적인 수단을 통한 체제전복). 즉 미국이 소련 사회주의를 붕괴시켰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베이징 일원에 일급 전시체제(준전시체제)가 선포되고, 덩샤오핑이 소련사태발전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화평연변」에 당의 모든 투쟁역량을 동원할 것을 촉구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무튼 중국은 앞으로 상당기간 소련사태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사회주의이념 선전 등 체제유지에 전념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향후 북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날 것이다. 바로 이점이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존재가치를 높여 주는 직접적 요인이다.

  4. 6공의 「북방정책」과 남북관계

  한편 소련사태는 북방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의 북방정책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 및 고르바초프와의 관계 위에서 가능했던점들을 고려할 때, 북방정책의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기실 고르바초프는 1986년 블라디보스톡 선언과 1988년 그라스노야르스크선언을 통해 동북아진출(경제협력을 기초로 한동방정책)을 계속적으로 피해왔다. 하지만 고르파초프는 이번 정변으로 연방의 붕괴, 경제사정의 악화, 권력기반의 붕괴 등의 상황에 처하면서 이러한 정책기조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말해 소련사태로 인해 그간 고르바초프가 꾸준히 강조해왔던 「동방정책」과 「대 한반도정책」이 정책집행의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논리가 단지, 고르바초프의 주도권이 강화되고 소련사태가 정리되면 소련이 이전과 같이 동일한 수준과 영향력을 가지고 대한반도정책을 전개할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소련사태로 인해 이제 소련은 군사부문을 제외하고 그 어디서도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이룰 수 없는 상황에 처하였다. 따라서 이는 양극체제의 한 축을 이루었던 소련이 이제 확실하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 재편에 포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바로 여기서 남한 정부의 북방정책이 제조정되지 않을 수 없는 근거가 주어진다.
  결국 소련과 중국이라는 두 축을 정점으로 해서 전개되던 북방정책은 첫째 소련사태에 앞서 천안문사건을 겪었던 중국에게 북한의 존재가 중요한 위치로 부각된 점, 둘째 「현실적 힘을 상실」한 소련의 위치라는 두가지 이유로 인해 「자기수정」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문제는 북방정책의 조정이 단기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에 편입되면서 좀더 미국의 의도에 종속되는 양상으로 표출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북방정책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한ㆍ소 경험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일단 사태수습에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소련은 정국이 안정되면 개혁ㆍ개방정책을 더욱 강력히 추진할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 등 급진 개혁파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어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 경우 소련은 자금 및 소비재 등을 더욱 필요로 할 것이고 이는 한-소경협을 확대하고 촉진하는 결과를 낳을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형식으로든 경제적 원조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현재 소련이 처한 현실이라고 할 때, 이는 소련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나라가 일본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부각될 소지를 안고있다.
  고르바초프의 재집권과 옐친의 득세로 남북관계도 조정기간을 거쳐 현재와 같은 상태로 계속될 것이다. 북한이 고위급 회담과 관련해 갑자기 경직된 입장을 내비쳤던 것은 보수파의 성공을 예상한 북한의 행동 방향을 엿보게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일단 향후 남북관계에 「시간벌기」로 응수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요구가 시급한 만큼 대서방경제교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독일식의 통일을 피하기 위해 일본의 경제협력이 더욱 절실히 요구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9월에 핵안전 협정 서명과 유엔가입 서명, 그리고 10월28일의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앞두고 있는 북한의 태도는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서인석<한국정치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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