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개방, 한ㆍ미 쌍무협상으로 해결해야

  '쌀수입개방저지 전국농민대회'를 다녀와서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배달의 농사형제 울부짖던 날...."
  '농민가'를 힘차게 부르며 정읍농민회 소속 농민들이 동국대 정문에 들어서자 진행원들이 "멀리서 오시느라 정말 수고했습니다"라며 대회참가를 환영했다.
  "어이잉, 자네들도 수고가 많네잉. 이봐요! 대회장에 다왔답니다. 큰 소리로 우리의 도착을 알리시다. 쌀수입 반대! 미국 반대!"미국쌀 막으러 왔다는 한 아주머니는 주먹을 불끈쥐며 더욱 소리높여 구호를 외친다.
  지난 15일 오후2시, 동국대학교 대운동장은 '살수입저지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에서 올라온 농민, 학생 1만5천여명의 열기로 가득했다.
  정부의 농업포기정책과 쌀수입개방 움직임에 분노하여 농민들이 직접 일어선 것이다.
  "여러분 지금 정읍농민형제들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농업사수','쌀수입저지'라고 쓰여진 프랭카드가 길게 늘여뜨려진 연단에서 울려퍼지는 사회자의 소개와 먼저 도착한 농민들의 떠나갈 듯한 함성과 박수가 어울어져 '쌀수입저지의 동지'들을 맞이했다.
  풍물패의 흥겨운 가락과 노래패의 공연은 식전행사부터 대회장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곧이어 기수단 입장과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의장인 배종열(60)씨의 대회사로 본대회의 막이 올랐다.
  "정부는 일관되게 실농정책을 펴왔습니다. 아무리 공산품을 수출해도 우리의 기간산업인 농업을 포기하면 목숨을 내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의 목숨인 '쌀'은 꼭 지킵시다."
  6공화국의 농업정책은 미국과 국내 대기업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수입개방, 농산물 저가정책으로 농업발전을 통한 농민들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논리보다 오히려 농업포기정책으로 일관해왔다.
  지난해 12월30일 주 제네바대사인 박수길씨는 UR협상이 93년 2월안에 타결될 것이라며 한국은 쌀시장을 개방할 것인가, 아니면 가트(GATT)를 탈퇴할 것인가 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유포해 쌀수입 불가피성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쌀시장개방을 둘러싼 대립구도는 가트체제와의 대립이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대립이며 그 해결방안도 또한 한-미 쌍무협상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농어민후계자중앙연합회(이하 한농연) 회장 김동열(37)씨는 "정부는 일본과 우리의 쌀문제를 동일시하며 이른바 '쌀수입 대세론'을 유포하고 있다. 이는 일본과 우리의 경제구조를 감안하지 않은 정부의 여론조작이다."라며 "이에 맞서 이제까지 노선을 달리했던 전농과 한노연은 서로 단결하여 쌀수입저지와 농업보호를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는 국내 농업단체들의 연대, 더 나아가 UR협상에 공동대처하기 위한 '국제농민연대'의 기틀을 마련한 것에서 더욱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미국대표로 참가한 존 스텐슬(미국 록키지역농민연합 대표)은 "미국 대농들만을 위한 UR협상에 반대한다"며 이 협상이 미국내에서도 많은 반대가 있음을 역설하고 이후 굳은 연대를 다짐했다.
  이어, 송영선(한농연 전북회장)씨는 결의문을 통해 "가트-UR협상에 대해 국제농민연대로 쌀시장 개방의 부당성을 알리고 농업사수를 위해 노력할 것과 전농과 한농연은 쌀수입저지, 농업사수, 농민권익보호를 위해 결사하전 할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본대회를 마친 농민들은 동국대를 출발해 대학로까지 평화대행진을 하였다. 행진하는 동안 농민들은 시민들에게 쌀수입개방의 부당성을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주며 적극홍보에 나섰다. 당국의 집회허가속에 이 행진은 합법적, 평화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과잉보호(?)로 전농충남연맹 소속 봉고 트럭의 유리창이 부서지는등 농민들과의 산발적인 몸싸움도 있었다.
  한농연 회장 김동열씨는 "신정부의 쌀수입반대입장이 불투명하다"면서 "김영삼 차기 대통령은 선거기간동안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지키겠다고 약속한 '쌀수입반대 공약'을 꼭 지켜달라"고 말했다.
  국민들의 의사를 절대적으로 반영하는 국민의 정부가 되겠다고 공언을 거듭했던 김영삼정권이 진정한 '국민의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농민들의 이러한 요구는 물론 정당한 요구를 하다 구속된 농민들에 대한 사면조치, 농업과 농촌을 살릴수 있는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쌀수입저지 만세! 농업개혁 만세! 이나라 4천만 민중 만세!"만세삼창과 함께 '농민가'를 부르며 "쌀수입저지 전국농민대회'는 막을 내렸다.
  이제 봄이 되면 농민들은 다시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우리들의 먹거리를 생산할 것이다. 묵묵히 고향을 지키며 일하는 농민들의 땀이 더이상 슬픔과 절망으로 다가와서는 안될 것이다.
 
  <송주환 기자>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