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쌀지원, 정부의 ‘양다리’ 정책

  최근 북한의 식량난은 매우 심각하다고 한다. 유엔 인도국(DHA), UN, WHO, UNICEF, FAO등의 국제기구와 미국, 일본 등 세계 여러나라가 현지조사를 통해 밝히고 있는 사실이다. 얼마전 북한을 현지조사하고 돌아온 스위스의 한 구호단체 간부는 “어린 아이들의 얼굴이 굶주림으로 상하여 부황이 든 것 같다”고 하면서 “즉각적인 지원이 없으면 커다란 혼란이 예상된다”고 하였다.
  실제로 북한의 식량사정은 거듭된 농정 및 농업의 실패로 크게 악화되었으며, 특히 95년 7, 8월의 수해로 결정적인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즉 90년대 이후 매년 259만톤 정도의 식량이 부족하였으며, 특히 95년에는 집중호우로 인한 곡물피해 총량이 190만톤에 달해 북한의 총 곡물소요량 620만톤 중 388만톤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미국, 일본은 이미 한국정부의 입장과는 별개로 정부차원의 대북 식량지원 방침으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절차 및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북한은 이미 하루 두끼 먹기 운동을 통해 식량 부족분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으며, 지금 당장 굶어 죽을 상황은 아니다”라며 국제적인 대북지원 움직임에 대해서조차 달가와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지난해 6월 대북 쌀지원때와는 정반대이다. 그 당시 정부는 어떠한 전제조건도 달지 않고 동포애와 인도주의에 기초하여 대북 쌀지원을 추진하여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학수고대하던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쌀지원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인공기 사건, 사진 촬영 사건 등 여러가지 불미스런 사건과 국회 동의 등의 국민적 합의 과정을 생략한 점, “외국쌀이라도 사서 북한을 지원하겠다.”는 등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등이 문제가 되어 쌀지원으로 화해 협력의 분위기가 아니라 남북관계를 더욱 경쟁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쌀지원시의 인도주의와 동포애를 뒤집어 엎을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쌀지원으로 지자체 선거에서 참패하였다는 분석에 기초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또 다시 대북지원을 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견해가 정부나 여야 정당의 민족적 차원에서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지난해 지자체 선거에 민자당(신한국당)이 참패한 것은 거듭된 실정과 과거 군사정권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깜짝쇼’를 벌인 김영삼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냉정한 평가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정부와 4당 등 정치권은 지난해 6월 쌀지원 때의 정신으로 돌아가 더 이상 굶주림으로 고생하는 북한 주민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 그동안 남북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우성호 선원’이 지난 연말 송환되었으며, 관망의 자세로 일관하였던 미국 조차 정부차원의 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적어도 남한은 우성호 선원의 송환에 대해 어떠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우리 동포 형제를 돕는 일을 다른 나라의 압력을 받아 쌀지원을 하게 되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 대북지원은 어디까지나 인도적이고 민족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 우간다나 팔레스타인(1천 8백만불 지원), 소련(30억불), 중국(30억불) 보다도 기아에 허덕이는 우리 동포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가 앞서서 대북지원을 해야 민간차원의 대북지원도 활성화 될 수 있다. 민간차원의 대북 지원활동에 대해서도 식량은 안된다는 식의 제한보다는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민간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깨닫고 민간 차원의 활동이 더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북한 또한 남한 정부와의 대화재개 등을 통해 정부 당국자 배제전략을 철회해야 한다. “남의 집 구걸하기 전에 형제에게 먼저 부탁하는 것이 도리 아니냐”는 여론 또한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남북간의 화해 협력은 남쪽만의 일도, 북쪽만의 일도 아니라고 할 때 남북 정부 당국자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7천만 겨레의 소망은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이다. 지금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에 바로 전화위복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대북 쌀지원이라는 용단을 내리는 길이다. 그렇게 할 때 분단 50년사의 대립과 반복을 불식하고 화해와 협력의 새시대를 열어 갈 수가 있다. 이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으로 되돌아갈 때이다.

김동규<경실련 통일협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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