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사회적 책임

  최근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단순히 감정적인 차원의 문제 이상의 성격을 띠고 있다. 과정을 도외시 하고 결과만 강조하는 물량주의적 사고가 횡행하는 자본주의 체제속에서는 늘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결과만을 놓고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일을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잣대는 인격체인 인간을 무한경쟁으로 몰아넣어 스스로 인간성을 파괴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능력이라는 허울좋은 말로 포장된 이 잘못된 잣대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인간이 기계처럼 생산된 제품을 놓고 평가된다는 상상을 하면 그 누구라도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을 것이다. 이 점에서 연예인들의 죽음은 능력과 결과만을 외치는 이 사회를 향한 경종이기도 하다. 결국 결과 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에 대한 전면적 수술이 필요하며 이는 교육부문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일만을 주목하는 교육 풍조 아래서는 결과 만능주의, 능력 만능주의 풍조가 사라질 수 없다. 인간은 공부라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계가 아니다. 따라서 아이들의 다양한 가능성을 북돋아 주고 각자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하나의 모습 그대로를 소중히 보듬는 교육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한다. 어쨌든 연예인들의 죽음은 미화될 수 없다. 그들의 자살은 심하게 표현하면 스스로를 생산능력을 상실하며 폐기 처분되는 기계로 전락시키는 일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기계가 아님을 주장하며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삶을 당당하게 살아나가야 한다. 우리는 감히 민중이 역사의 주인임을 선언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을 한다. 매스컴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몇몇 인물을 위해서 무대뒤에서 주목받지 못한 채로 자기 몫을 담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사람들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뜰하게 보듬는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몇몇 주인공을 위해서 스쳐 지나가는 많은 엑스트라들과 유명가수의 한곡을 빛내기 위해 동원되는 많은 코러스 멤버, 무희, 악기연주자들의 노력은 주인공과 인기가수 이상의 무게를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 연예인의 자살은 더불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 대한 모독일 수 밖에 없다. 들녘, 산중 외딴 곳에 홀로 피어나는 길가에 피어나는 이름없는 꽃에도 제 몫의 삶이 있기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 똥’이 생각난다. 자살한 연예인들이 그 책을 읽었더라면 그렇게 목숨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끝으로 그들의 죽음을 놓고 이리 저리 부풀리며 장사속을 내보이며 선정적 보도를 일삼는 언론에게 깊이 자중할 것과 들꽃의 소중함을 진지하게 보도하는 전향적 자세를 보일 것을 충고하고 싶다.

김헌주<한겨레 21 대구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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