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산물, ‘환경위기’

 다가오는 21세기, 과학기술만 믿고 달려왔던 현재의 세계는 이제 벼랑끝에 있다.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 줄 수 있을까? 대답은 미지수이다. 대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들도 아직은 떠오르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를 의식하고 진단해 나가는 가운데 미래는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글싣는 순서>
              1. 인류의 마지막 화두, ‘환경은 생명’
              2. 생태주의란?
              3. 새로운 대안, 동양사상

 편집자주

  인류의 출현 이래 지난 2천년간은 인간이 좀 더 편하게, 안락하게 살기 위하여 ‘자연과 투쟁’해온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를 5년여 앞둔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새로운 가치체계는 자연은 정복과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일부라는 인식, 이제까지 역사속에서 한 번도 전면에 등장한 적이 없었던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의 뿌리는 단연 환경문제의 대두이다.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근대과학의 출현만큼 인류의 생활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없었다. 근대과학 이후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생활양식과 전반적 사고체계를 변화시켰다. 동서양을 나누어 보자면 서양의 근대화는 그 문명의 구심점이 기독교로부터 근대과학으로 이행된 과정, 그리고 동양의 근대화는 서양의 근대과학을 수용한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과학은 10세기에 이르러 서양의 산업혁명속에서 기술과 연결되기 시작했고 결국 ‘과학기술’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통일되어 일관되고 혹은 독자적인 가치체계로 종횡무진 인류의 삶 전반을 휩쓸었다. 이는 인간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것이 지고의 선이라는 인간중심의 사고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서구에서 산업혁명의 결실이 극에 달하던 1960년대에 들어서 과학기술은 환경문제라는 복병으로 자신의 이면을 인류에게 드러내었다. 현대과학 기술이 낳은 갖가지 재난은 지구전체를 위협할 정도로 절실하고 긴박한 문제이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 자원의 고갈 및 편재, 환경오염과 파괴, 생태계의 교란, 핵무기양산 등 굳이 비판론자가 아니더라도 인류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이제까지 인류발전의 총아임을 의심치 않았던 과학기술, 또한 근대과학 기술을 낳은 서양문명과 사상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보게 하였다.
  동양사상의 자연관, 즉 자연을 기와 자기완결성을 가진 완전한 유기체로 보는 것은 중국, 인도, 한국에서 내내 존재해 왔다. 서구에서 환경문제에 관한 그간의 해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경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현실을 볼 때 이러한 근본적인 사유의 전환이 새로운 세기에 요구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환경위기의 대안에 있어서 과학기술이 차지하는 위치는 극단적으로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과학기술 낙관론(기술지향주의)와 과학기술 비관론(생태주의)이 그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과학기술이 환경위기조차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입장이 전자이고 이미 환경문제를 야기한 과학기술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으며 보다 근본적인 가치와 생활방식의 전환만이 인류와 자연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 후자이다. 대안의 방식에 있어서는 앞서 말한 과학기술적인 접근, 사회경제체제적인 접근, 가치체제적인 접근으로 나눌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환경문제의 접근 또한 복잡해진 것이다.
  아직 과학기술에 대하여 편중되는 경향성은 일부 극단적인 생태주의자를 제외하고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각국의 환경운동을 포함한 환경위기 극복의 노력들은 과학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있음은 현실이다. 그 적개심의 자리를 동양사상으로서의 생명사상이 대신하여 환경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분명한 것은 개개인의 생활양식의 변화로부터 지구적 차원에서의 공동모색까지 전반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가오는 21세기의 화두, ‘생명’은 20세기 말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성낙진<환경운동연합ㆍ정책실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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