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재산권 행사 못한 ‘뜨거운 감자’

  그린벨트지역, 상수원보호구역… 이런 명칭이 붙은 지역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은 국가적으로 국민의 안전과 쾌적한 생활여건을 유지, 향상시키기 위하여 보존을 필요로 하는 지역들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안에서 생활을 꾸려야 할 사람들에게 적게는 생활의 불편을, 크게는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유는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곳의 건축물에 대해서 신축은 물론 증축과 보수까지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심하게는 몇십년전에 볼 수 있었던 초가집도 이 지역에서는 종종 구경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개발제한구역의 문제는 우리와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학생들이 흔히 말하는 바로 학교 정문 옆의 헌동네이다.
  학교 정문으로 들어오다 보면 왼편으로 작은 오솔길이 나있다. 오솔길을 따라 몇 걸음 옮기면 어느 달동네를 연상할 수 있을 만큼의 허름한 동네가 눈에 뜨인다. 이곳이 대전광역시 유성구 궁동 1통 6반 222번지에서 258번지 사이의 집들이다. 이 동네는 불과 3, 4년전 까지만 해도 충대인들의 사랑을 받던 곳이었다. 요즘 한창인 개강파티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크고 작은 행사가 진행되었던 장소이다. 지금도 간단한 식사와 조촐한 뒷풀이 공간으로 이용되기는 하지만 맞은편 ‘새동네’의 화려한 등장으로 ‘헌동네’의 위상과 역할(?)이 이만저만 아니게 되었다. 현재 15가구 정도가 삶을 살아가는 조그마한 이 동네는 과거의 보랏빛 추억들을 뒷전으로 하고 학내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 문제가 시작된 것은 연구학원 부지로 지정된 73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학교당국과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의 학생과 학교의 등록금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예산안편성에서의 문제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측은 이 지역을 민원지역으로 지정해 놓고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주민들은 학교측에 해당구역 토지매입을 포기하겠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포기각서’를 대덕연구단지 관리사무소에 전달해 달라는 강한 입장이다. 이유는 지금 이 지역 건물들은 상당히 오래되어서 파손이 심각하기 때문에 주민들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고 정당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되었다고 하는 집은 1920년대 흙벽돌로 지은 집이 지금까지도 보수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사용되고 있다. 건물이 오래되어 보수를 하고 있는 주민들은 벌금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 동네에 거주하면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남신(62)씨는 “다른 문제들은 접어두고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하는 것이 걱정이다. 상태가 심각한 집은 대들보가 무너지려고 해서 방안에 임시 기둥을 받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곧 우리의 생존권과 관련되는 것이다.”라며 문제의 시급함에 대해 말했다
  또 이 동네에 사는 주민인 이영훈(62)씨는 “올 여름에 장마가 오면 큰 걱정이다. 장마를 넘기지 못할 집들이 몇 집된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바라는 문제해결방안에 대해서도 “이 시점에서의 방법은 충남대학교측에서 토지를 산다는 결정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관련기관과 협의하겠다.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동네주민들과 직접적인 대화상대인 학교측에서는 주민들과는 다소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 이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곳은 대학본부 기획실이다. 대학본부 기획실 한 담당자는 “학교측에서 토지 매입을 포기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 않는다. 이 지역이 제한구역에서 풀릴 경우 새동네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 학교안에 유흥업소가 들어설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제한구역을 풀어 줄 경우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서도 주민쪽에서는 “우리들은 궁동이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새동네가 유흥업소화 되는 것을 반대했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점심식사를 파는 것, 그리고 하숙이상은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학교측에서는 민원지역으로 관리하고 있는 지역은 약 2천 3백여평에 토지와 건물을 포함한 액수는 유성구청 개별기준시가를 기준으로 약 3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작년 우리학교에서 총장의 강한 의지로 이 지역을 매입하려고 했으나 재정확보가 가장 큰 문제로 인식되었다. 국고에서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우리학교 토지보유율은 219%로 더이상 국고의 지원으로 토지매입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기성회비에서 예산을 확보하려 했으나 학생측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되었다. 이 지역이 문제시 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1973년 궁동은 대덕연구 학원도시 건설기본계획상 ‘연구학원 부지’로 확정되었다. 77년에는 ‘대덕산업기지 개발구역’으로 지정고시되었고, 81년에는 ‘연구 및 교육시설지역’으로 고시되었다. 그리고 84년 대덕연구단지의 궁동개발 추천방침이 결정됨에 따라 85년에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민원이 발생하는 지역은 사업구역에서 제외되었으며 대안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식사, 가게, 하숙 등으로 생활을 유지해 왔다. 또 93년 6월에 한밭대로가 개설됨에 따라 동네가 고립화되었고 개발제한으로 생활이 급격히 곤란하게 되었다. 이에 주민들은 ‘토지매입 및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92, 93년 그리고 94년에 걸쳐 계속적으로 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관계기관으로부터 얻은 답변은 “토지매입 불가능”이었고 이런식으로는 민원이 해결되지 않자 과기처, 유성구청, 청와대등이 대책회의를 갖고 그 후 관계기관에서는 토지매입 의사는 있으나 예산확보의 어려움을 통보했다. 이러한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갈등이 빚어지자 우리학교에서 전격적으로 토지매입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과거와 큰 차이없이 예산 확보의 어려움에 부딪혀 제자리를 걷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단순히 예산확보라는 차원만이 아닌 것 같다. 학교측에서 섣불리 제한구역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학교의 이미지 찾기라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냥 두자니 바깥에서 보기에 볼품없고, 문제되는 땅을 사자니 돈이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주민들이 원하는대로 토지매입을 포기하고 제한구역에서 풀어주려고 보니 헌동네가 변신을 해서 제2의 새동네가 될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반면 주민들은 깨끗하게 건물을 지어 기껏해야 밥이나 팔거나 하숙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하숙을 유치할 경우에도 조용한 면학분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 모두 주민들의 입장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주민중의 한 사람인 정연순(61)씨는 “식당이라든지 간단한 오락장을 운영할 수 있다. 당장 생계대책이 없는데 어떻게 살란 말이냐?”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주민들 역시도 하나의 목소리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해결방안은 겉으로 나타나는 돈문제만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부분도 문제해결이 제자리를 맴도는 이유라고 본다. 그 보다도 학교측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점이 있다. 주민들의 안전에 대한 것이다. 집에 대들보가 무너질 것을 걱정해 다른 기둥을 세워야 할 정도라면 건물이 상당히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한 의식전환과 더불어 돈과 인간의 생활권 보장이라는 비중을 견주어 볼 때 어느 것이 비중이 있는가 생각해 보게한다.

이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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