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평에 가둔 희망, 문민아 풀어다오

  “내 아들 내놔라”고 끝내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한을 내쏟는 어머니, 감옥철창을 배경으로 ‘아빠, 보고 싶어요.’란 글씨가 새겨진 아이의 그림.
  지난 달 8일부터 10일까지 명동성당일대에서는 ‘96양심수 석방을 위한 캠페인’이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 양심수는 4백여명. 민가협의 통계대로 문민정부들어 하루 2.8명이 수감되고 있다. 삼청 교육대라는 공포가 존재하고 쉬쉬하며 말해야 했던, 5,6공도 아니고 문민정부는 오히려 더 많은 감옥들을 열어두고 있다.
  외국에 1년간 출장나가 있었다는 김선수 변호사는 이날 행사에 하루 감옥체험자로 참여하면서 “그래도 문민시대라서 수가 줄거라고 믿었다. 국보법 수감자가 더 늘었다니 믿기 힘들다”고 밝힌다.
  세월이 지나도 0.75평 햇살 한줌 비치지 않는 네 벽들은 양심수의 병상한 몸을 옥죄고 있다. 양심을 지키기 위한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육체적, 정신적 부담은 이미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고 있다.
  김대영씨, 이번에 하루 감옥 체험에서 교도관을 맡았던 그는 전경해체와 관련한 양심 선언으로 4년 6개월을 복역했다고 작년 11월에야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쇠사슬에 꽁꽁 묶여 천장에 매달려서 맞아 보기도 했다.”라는 그는 하루 감옥 체험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라고 밝힌다.
  4년 6개월, 장기수 어른들에 비하면 그의 고통은 비할 바가 못 될지도 모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인 만델라가 수감했던 23년의 형기보다 더 오랜 형기를, 무려 39년에 이르는 형량을 안고 차디찬 감옥을 견뎌야 하는 양심수도 있다.
  20년, 30년 이들의 오랜 수감생활은 갖가지 병고를 몸 곳곳에 남겼다. 출소 장기수들에 대한 건강진단 결과를 보면 간정, 위정, 순환기, 폐등에 만성질병이 3가지 이상이라고 한다.
  특히, 이들은 언어 장애 즉, 동물과 인간의 가장 큰 구획선인 모국어조차 상실할 위험속에 처해있다고 한다.
  게다가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권력의 관심은 보안 관찰법으로 이어진다. 명분은 ‘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다. 몇 십년의 옥고를 치루고 나와서도 이들은 끊임없이 담당경찰에게 생활을 보고해야만 한다. 양심을 지킨 죄가 나와서조차 또 하나의 감옥 생활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이들에 대해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한 목소리로 모아진다.
  하루 감옥 체험에 2번 수감자였던 소설가 김영현씨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인간의 자존을 유지하는지 막막하다. 20년, 30년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니 엄청나다. 자유를 빼앗기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의 상처이다. 더 현실을 직시해야겠다는 반성을 한다.”라고 밝혔다.
  양심수 자녀들과 함께하는 희망그리기에 참가해서 둘리를 그렸던 만화가 김수정씨도 “5,6공때도 뭔가 이유없이 갇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청산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되었다고 하니 슬프다. 그들과 어깨를 함께 맞대고 살수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십자가가 명동성당 아래를 고요히 내려다 보고있다.
  우용각 39년, 김성만 사형언도에서 무기징역, 13년째 수감, 박노해, 황석영, 강용주, 이혜정, 정민주…. 계단에 주욱 전시된 얼굴들, 이 땅에 살기에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가슴 아픈 얼굴들을.
  시민 가요제에 참가한 한 주부의 발언을 떠올린다. “노래엔 자신이 없지만 그 고생하는 분들에게 정말 작은 힘이라도 되었으면 하고 나왔어요.” 그리고 행사에 참여하여 “세상에 천의 말보다 하나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부끄럽다고 밝힌 정숙자 목사의 말도 기억난다. 학내에 안보이는 얼굴들과 그 모든 억울한 이들을 위해 작은 노력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마지막에 함께 불렀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구절중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를 마음으로 불러본다.

김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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