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아기곰은 너무 귀여워.”
  명지가 원래 불러야 했던 노래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사회자도, 명지와 함께 출현한 엄마도 당황했다. 지난달 8일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양심수 캠페인 행사 중 시민가요제에 출현한 네살박이의 실수였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섞여 있던 젊은 엄마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곧 이어졌다.
  “명지 돌이 3일 지나고 아빠가 잡혀 가겼어요. 올해 명지가 네살인데…” 아빠곰, 엄마곰, 앞니 빠진 아기곰 귀여운 명지. 창 살 머너로만 아빠 얼굴을 봐야하는 세 식구의 비애였다. 실수를 한지도 모르고 웃고 있는 그 아이를 보며 오히려 지켜보던 사람들은 눈시울을 적실 수 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고 가슴이 저려왔다. 생각할 자유가 없는 나라라니… “이건 창살에 갇힌 아빠구요, 앞에서 서 있는건 엄마와 저예요.”라고 그림 설명을 하던 9살박이 산하의 소리도 명료하게 들려온다. 국가 보안법은 양심수에게 0.75평 감옥속에서만 생각할 자유를 허용하고 양심수의 부모와 딸, 아들 가슴에 멍을 만들었다.
  민가협 어머니들이 그날 쏟아냈던 눈물과 한을 이 세상은 거두어 주질 않았다. 자주색 수건을 쓰고 포승주로가 죄수복, 파란 수의로 아들의 처지가 되어 한걸음씩 걸을때는 얼마나 서러울지. 정의롭던 아들이 몇십년째 햇살 한번 안비치는 감옥에 들어가 병상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 땅 차가운 구석자리로 내몰린 4백여명의 양심수들.
  그들을 가두는 악법은 온 세계가 지탄해도 그들만의 잣대로 작가들을 가두고 군사 독재하에 권력을 위해 불법으로 사람들을 수감시켰다. 그리고 그들 가정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던지고 있다.
  감옥이란 공간과 그것이 제공하는 반성적인 측면에서 담당하는 기능은 뇌물을 받고 세금을 횡령하는 뻔뻔한 얼굴들이나 2천의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을 들이대고도 죄를 발뺌하는 얼굴이 감옥이란 위치에, 사회의 정의란 이름에 더 걸맞는다.
  집에서 아빠 얼굴을 삼일밖에 본적이 없는 명지의 웃음과 산하, 그리고 민가협 어머니의 눈물을 생각하며 답답한 이 땅 한 숨을 내뱉는다.

김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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