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무는 현대사

  여러분은 과거《실미도》라는 영화를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흉악범들로 만들어진 특수부대가 북한으로 침투해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훈련을 받다가 탈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 속에서 설경구 등 걸출한 배우들이 호연을 펼친 것은 물론 한국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으로 남아 있으며, 수십 년간 잊혀 있던 실미도 사건을 다시금 재조명되게 한 결정적인 계기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1968년 1월 21일, 1·21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에서 남파한 공작원 31명이 대통령을 암살할 목적으로 서울까지 침투한 사건이다.

  사태 이후 중앙정보부에서는 보복을 목적으로 여러 북파 공작부대를 창설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실미도의 684부대였다. 영화에서는 684부대가 흉악범들을 모아 만든 부대로 묘사되었으나, 실제로는 전과 없이 가난한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해진다. 더 놀라운 점은 영화처럼 재소자들을 모아서 684부대를 창설할 예정이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어디 가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즉 소모품으로 써먹을 만한 사람들만 골랐다는 사실이었다. 그들도 분명 소중한 가족이 있고 꿈도 가졌을 텐데 그저 자신들의 복수를 위한 소모품으로만 여겼던 당시의 정부가 이해되지 않았다.

  영화를 감상한 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공작원들은 섬을 빠져나와 군경과 총격전을 벌이다 대부분 버스 안에서 자폭하게 된다. 심지어 그 당시 살아남은 공작원은 4명이었으나, 그들 또한 베트남으로 보내 준다는 군 관계자의 말에 속아 사건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모두 처형되었다. 결과론적으로 그들은 국가에 두 번씩이나 속은 셈이었다. 돈을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감언이설에 속아 실미도로 끌려간 것도 모자라,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거짓말에 또다시 속아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증언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 평소 챙겨보던 시사 프로그램에서 실미도 사건에 관해 다루는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었는데, 후반부에 들어서 버스 안에서 자폭한 공작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장면이 나오고 한 아주머니가 이 나라를 용서하지 말라며 울부짖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가끔 뉴스에 외국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이 보이면 어른들은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도 없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치에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간혹 가해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판결이 나오거나, 가해자가 국가인 경우에는 그것을 없던 일처럼 묻어갈 때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 본인도 마땅한 해결책은 잘 알지 못하나, ‘나만 아니면 돼.’라는 그릇된 가치관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에서는 실미도 공작원들과 같이 억울한 피해자들이 속출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지 않고, 권력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들도 합당한 배상을 받게 될 시대는 과연 언제 올까.

김현중 (국사학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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