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꼭 한 달 정도 지났다. 낮으로는 햇살이 포근하지만, 해가 떨어지면 여전히 으슬으슬 춥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요즘, 뜨끈한 음식 한 접시가 절실하다. 이런 날씨에는 대전의 토속 음식인 ‘두부 두루치기’가 제격이다.

  대전이 아닌 타지에서 온 사람에게 두부 두루치기는 다소 낯선 음식이다. 보통 두루치기에는 살코기와 갖가지 채소를 넣는다. 헌데 두부 두루치기는 ‘두루치기’라고는 하나 고기 대신 두부가 주인공이다. 두부에 매콤한 양념을 끼얹고 바글바글 끓여내는데, 두부와 대파를 제하면 별다른 재료도 없다. 참 투박한 서민 음식의 정수(精髓)다.

  그 투박함만큼이나, 두부 두루치기는 서민들과 동고동락한 음식이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고달픈 시절을 겪어야 했다. 끼니를 걱정하는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그때 두부는 서민들에게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돼 주었다. 전쟁 이후 대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고, 대전역과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노점이나 포장마차 같은 작은 식당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 가게에서는 두부를 안주로 내는 일이 흔했는데, 어느 날 손님이 두부에 양념을 해서 파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 그걸 그대로 팔게 됐고, 그렇게 두부 두루치기가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여하튼 근본이 서민 음식인지라 두부 두루치기를 파는 식당은 대전에 흔하다. 대전 곳곳에 ‘현지인 맛집’이 하나씩 들어서 있다. 광천식당, 별난집, 진로집 등이 대표적인 두부 두루치기 맛집이다. 그중에서도 진로집은 1969년부터 장사를 시작해 올해로 55년의 업력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노포라는 진로집을 방문하니 가게는 이미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간판에는 ‘향토음식’이라는 문구가 예스럽게 적혀 있고, 가게 문 앞에는 ‘백년가게’임을 알리는 문패가 붙어있었다. 가게 내부의 분위기는 할머니 집 안방에 온 듯 구수했다. 색이 바랜 벽지와 30년 전쯤에 유행한 듯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지나온 세월은 가게 안팎을 넘나들며 제 흔적을 남겨놓은 듯하다.

  자리에 앉아 두부 두루치기 소(小)자와 칼국수 사리를 시켰다. 진로집의 두부 두루치기에는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가 칼칼하고, 목구멍을 ‘탁’ 치는 듯한 매운맛이 있다. 두부를 어느 정도 건져 먹으면, 칼국수 사리가 들어갈 차례다. 걸쭉한 양념이 칼국수에 들러붙어 입안에 착 감긴다. 짭짤하고 매콤해 밥반찬이든, 술안주든 모두 소화해 내는 든든한 ‘멀티 플레이어’다.

  계산하며 사장님께 장사하신 지 얼마나 됐느냐고 여쭈었다. “이제 60년 가까이 됐죠.” 무심하게 툭 던진 사장님의 대답에서 업력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요즘, 오랜 세월동안 서민들의 배를 채워온 ‘두부 두루치기’ 한 그릇 어떨까.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