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칼럼

   *동명의 소설 제목에서 차용했다.

  내년 4월 초에 호주로 출국하는 비행기표를 샀다. 만 31살을 한 달 남겨두고 급하게 신청한 워킹 홀리데이 비자 때문이다. 1년간 머무르며 8월의 겨울은 어떤지 겪어보고 시급 2만 원으로 번 돈이 통장에 들어오는 놀라움도 맛보면서 그곳이 살만한 곳인지 확인해 보러 가는 것이다. 어느 정도 계획이 세워져 있어서 다가오는 2024년 계획은 새로 세울 일 없이 생각한 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 살만한 곳이라면 거기서 다시 학사를 따고 취업해 이민할 예정이고, 나와 맞지 않는 곳이라면 우리나라로 돌아와 먹고 살 방법을 궁리하려 한다.

  2016년에는 캐나다에 살고 싶어서 대학원을 알아봤었다. 주 5일 아이엘츠 학원을 다녀 최저 점수 기준을 맞추고, 선수과목 이수를 위해 온라인 대학으로 80만 원짜리 수업도 두 개나 들었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당시 재직하던 회사의 지사장님께 추천서를 받고, 학부 교수님 두 분께도 추천서를 받아 2019년 겨울에 지원을 했는데 결과는 탈락이었다. 우울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그해 외국인 학생을 거의 뽑지 않았다는 이메일을 읽었다. 지금 충남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긴 하지만, 그때 지원했던 대학원은 순전히 이민을 위한 수단이었다.

  ‘탈조선’이라는 말은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폭넓게 확산하였다고 한다.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는 날이면 온라인에서 ‘탈조선’이라는 말이 쓰이는 빈도도 높아졌단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고학력, 전문직에 속하는 3040세대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캐나다나 북유럽으로 이민하는 사례에 대해 보도되었다. 국가의 재난·위기 대처 능력에 따라 태어난 국가를 떠나 다른 국가로 이주하고 싶은 욕구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은 있지만 내일은 없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말하는 한국의 불안정성을 나도 느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양 오염과 대기 오염, 그럼에도 지속되는 정부와 사람들의 무관심. 의자 열 개를 두고 200명이 경쟁하지만 그 경쟁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묻히고 마는. 권리를 위한 언어를 이념 갈등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내가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목소리를 내도 바뀌는 게 없다는 무기력함. 무기력함은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도 눈에 보이게 확연하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 수 없는데도 무작정 앞으로 달리는, 이처럼 흔들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고 말았다.

  올해 합계출산율이 최저치를 기록하고, 10월 출생아 수는 역대 처음으로 1만 명대로 하락했다는 것 역시 ‘이곳에 살고 싶지 않음’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고 싶지 않은데 내 자식까지 살게 할 수는 없다는 방식의 모성 발현이다. 70년 만에 등장했던 여성 총장이 가고 다시 총장 후보자 5인이 모두 남성으로 꾸려지는 것을 보며 여성 청년으로 살아가는 내가 이곳에서 어떤 희망이나 목표를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걸 보며 희망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다.

  한 해 약 2만 명이 한국 국적을 포기한다고 한다. 떠나야 할 이유가 많은 곳에 머무르는 고통을 참는 역치가 너무 낮은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여전히 살아갈 곳이므로. 그럼에도 한 번뿐인 인생을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곳에서 사는 것보다는 다른 곳에서 부딪혀보는 것이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므로.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하는 곳에서 삶까지 참고 싶지 않기에 떠나는 이들의 마음이 너무나 애처롭게 와닿는다. 

 

공연화 (여성젠더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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