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진적으로 증액된 R&D 예산이 내년 16.6% 대폭 감액된다.  인포/ 윤성현 기자
점진적으로 증액된 R&D 예산이 내년 16.6% 대폭 감액된다. 인포/ 윤성현 기자

  지난 7월 퀀텀에너지연구소에서 LK-99를 영화 ‘아바타’ 속 둥둥 떠있는 바위섬을 구현할 수 있다는 상온 초전도체로 내세우며 화제가 됐다. ‘아바타’ 속 ‘언옵테늄(Unob- tainium)’처럼 구할 수 없는 물질을 구현했다는 소식에 LK-99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초전도체 인기에 이어 기초과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덩달아 늘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열기를 냉각시키듯 지금 기초과학계엔 먹구름이 드리웠다. 내년도 연구비 삭감이 그 이유다. 정부가 지난 8월에 발표한 내년도 R&D(연구개발) 예산안에 따르면 총 R&D 예산은 21조 5,000억 원으로 올해 대비 5조 2,000억 원(16.6%) 감액된다. R&D 예산 삭감으로 기초과학 연구를 위한 지반에 균열이 잇따르자 기초과학계의 반발이 빗발치고 있다.

기초연구 R&D가 글로벌 R&D에 통합된다.  인포/ 윤성현 기자
기초연구 R&D가 글로벌 R&D에 통합된다. 인포/ 윤성현 기자

  R&D에 드리운 먹구름               

  R&D(Research and Development)는 기초연구와 그 결과를 토대로 응용 기술을 개발하는 활동을 통틀어 부른다. 그중 기초과학은 응용과학과는 달리 실용적 성과를 선보이는 학문은 아니다. 기업으로부터 지원받는 일이 적은 기초과학계는 주로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예산이 줄어들어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 R&D 예산 삭감 이유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서 R&D 투자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3월 발행한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 ‘과학기술 5대 강국 도약’이라는 비전과 함께 5년간 정부 R&D에 170조 원을 투자할 것과 선도국 대비 기술수준 90% 이상, 8개 이상의 전략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3년 간의 논의 끝에 올해 2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이를 확정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한 후 과기정통부에서 지난 8월 내년 R&D 예산안을 대폭 감액 편성했다. 중장기 투자전략이 발표된 후,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계획이 갑작스럽게 뒤엎어진 것이다. 

  - 내년도 R&D 예산안은? 

  내년도 R&D 예산안에 따르면 기초과학 분야가 포함된 주요 R&D 예산은 21조 5,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3조 5,000억 원(13.9%) 감액된다. IMF 외환위기 때도 축소되지 않았던 R&D 예산이 삭감돼 10년만에 처음으로 정부총지출 대비 투자 비율이 3%(3.98%)대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주요 R&D 분야별 감액 규모는 ▲지역기업 사업화 25%(6,300억 원) ▲디지털전환 34.7%(8,500억 원) ▲탄소중립 15.3%(3,600억 원) ▲재난·안전 등 생활밀착형 15.2%(3,400억 원) ▲국방 12.7%(4,219억 원) ▲글로벌 23%(8,375억 원)이다. 이때 기초연구·인력양성 예산은 글로벌 R&D의 세부 항목으로 통합됐다. 따라서 글로벌 R&D와 기초연구·인력양성 예산을 합친 금액이 전년도에 비해 23% 깎인 셈이고, 기초연구 R&D 예산은 6.2% 줄어들어 2조 4,000억 원이 됐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이 고심끝에 도출한 중장기 투자전략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정부의 졸속 예산안 변경에 대해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10월 밝힌 ‘2024년 예산안 분석’에서 “정부의 R&D 투자방향 전환 및 그에 따른 예산 합리화 기조는 단기적 시각에서 명확한 기준 및 근거 없이 이뤄져 합리적인 재원 배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우리 학교는 내년도 연구비 예산안을 발표하지 않았으나, 우리 학교 연구지원부 측은 내년도 연구비 예산 감액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 학교의 총 연구비 중 정부의 지원은 약 8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기초과학 연구는 대부분 정부 예산으로부터 조달돼 R&D 예산 삭감은 내년도 우리 학교 연구비에 타격을 줄 전망이다.

우리 학교 여나은 학우(우주지질학 석사과정)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윤성현 기자
우리 학교 여나은 학우(우주지질학 석사과정)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윤성현 기자

  없어선 안 될 기초과학 

  - 기초과학이란? 

  기초연구법 제2조에 따르면 기초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탐구 자체를 목적으로 하며, 공학·의학·농학 등의 밑바탕이 되는 기초 원리와 이론에 관한 학문’이라고 명시돼 있다. 우리 학교 최성희 기초과학연구원장은 “기초과학은 자연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으로 응용 연구와 기술 혁신의 기반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초과학 연구는 자연의 기본 원리와 메커니즘을 탐구하며, 나아가 새로운 기술과 의료와 같은 다양한 문제 해결의 기초적 토대를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기초과학 연구원들은 심도있는 탐구를 통해 모든 영역의 과학적 지식을 확장한다. 그들의 호기심에 기반한 탐구는 때론 의외의 발견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모은 지식이 다양한 분야에서 첨단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 기초과학은 과학 기술의 본바닥 

  기초과학이 발전하면 국민의 삶의 질 또한 높아진다. 최근 대용량의 에너지 공급이 가능한 이른바 ‘인공태양’이라고 불리는 핵융합에너지의 상용화를 위해 우리나라는 자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인공태양인 ‘케이스타(KSTAR)’ 연구를 진행하며 미국, 일본 등을 포함한 6개국과 함께 프랑스에 설치될 국제핵융합실험로(이하 ITER)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9일에는 ITER에 설치될 초전도자석 전원공급장치가 우리나라 기술로 완성됐다. 초전도자석 전원공급장치는 설계부터 제품 제작까지 국내 연구진들이 12년에 걸쳐 이뤄낸 기술 개발의 결실이다.  

  얼핏 보면 인공태양은 응용과학에 치중돼 보이나 그 기반은 기초과학이 뒷받침한다.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은 작년 12월에 열린 한림원탁토론회에서 “핵융합에너지를 실현하려면 플라즈마 제어, 핵융합 연료 시스템 등 기초과학이라는 탄탄한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공태양은 수소를 원료로 이용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며 핵분해와 달리 방사성 폐기물도 적어 친환경적이다. 또한 인공태양를 대용량 생성하는 데에 효율성이 높아진다면 국민은 저렴해진 전기료 혜택을 볼 수 있다. 나아가 전체 전력 시장을 바꿀 수 있는 이유로 우리나라 인공태양 사업의 귀추가 주목되나 이 역시 예산 삭감의 여파를 피해갈 수 없다. ITER 사업 예산의 경우 내년 160억원 삭감된다. 

  - 기초과학은 꾸준한 투자가 경쟁력 

  기초과학 연구는 실용적 성과가 뒤따르지 않더라도 점진적인 기술개발을 위해 중요하다. 따라서 기초과학 연구는 국가 차원에서 비전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다. 일본 정부는 국가간 신뢰관계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4년 전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불화수소·불화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의 수출을 규제했다.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반도체 소재가 없어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했기에 한동안 반도체 장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른 무엇보다도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반도체 소재들을 국산화하는 것이었다. 이에 지금까지 축적된 기초과학 지식이 한데 모아졌다.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은 지난 7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해 예상되는 피해를 최소화했다”며 “이는 우리가 적지만 기초 기술을 축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초과학의 성과를 축적해야만 다가올 위기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학교 또한 다방면에서 기초과학 연구에 매진하며 장기적 연구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 학교 화학과 이재범 교수는 지난 9월 ‘친환경적 철 기반 양자점 대량합성 기술’을 개발했다. 양자점(Quantum dot)은 나노미터 규모의 아주 작은 반도체 입자를 일컬으며 양자점 기반 QLED TV나 암 조직의 위치를 확인해주는 바이오마커에 주로 사용된다. 대부분의 납 계열 양자점은 환경 오염의 문제가 있는 반면 이재범 교수의 철 기반 양자점은 친환경적 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해당 연구에 대해 이재범 교수는 “우리 연구소는 2012년도부터 철로 양자점 합성을 해왔고 대량 생산에 이른 것은 이제 10년 됐다”며 기초과학 연구는 오랜 시간 투자가 필요함을 드러냈다. 

  지금은 활용할 수 없는 분야여도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 그 쓸모를 찾아낼 수도 있다. 노 원장은 “기초과학자들은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기초과학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기초과학의 침체 위기

  ‘나눠먹기 식’ R&D를 개선하는 방안이 제도적 개선이 아니라 예산 삭감뿐이라면 과학계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거의 공급받지 못하는 기초과학은 발전 침체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 기초과학 경제난 

  최성희 기초과학연구원장은 “교수들의 연구비 수주가 어려워지면 당연히 대학원생에 대한 지원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성희 기초과학연구원장은 예산 삭감으로 인해 야기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초과학 분야 인력 양성에 대한 국가의 의지 부족에 크게 실망한 우수 인력들이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서 이탈하는 것”이며 “이는 현재 대두되는 기술패권 경쟁 가운데 국가의 과학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R&D 예산 삭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실제 연구 현장은 어떨까. 우리 학교 해양환경과학과에서 석사과정에 있는 A 학우가 진행하는 연구분야는 해수나 퇴적물 등의 해양시료를 필요로 하며 오염원을 분명하게 관측하기 위해서는 많은 분석을 통해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A 학우는 “R&D 예산 삭감으로 연구 활동에 필요한 소모품 및 분석료 등의 감액이 불가피해졌다”며 “소모품이 많이 필요한 중금속 및 동위원소 분석법 개발 및 관련 연구에서 성과를 내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2024년 수행될 예정인 연구 일정 및 예산 조정 등 연구 활동이 제한적이게 됐고 연구실 보조 인력 충원이 어려워졌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기초과학계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우리 학교 기초과학연구원에서 학부연구생으로 활동하는 B 학우는 주위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에 R&D 예산 삭감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학교 교수님 중 예산 삭감으로 분석용 컴퓨터를 돌리는 것조차 부담된다고 말씀하신 교수님이 계셨다”고 말했다. 또한 “랩실 중에 기초과학연구원 야간 식대가 사라진 곳이 있다”고 전했다. 

  기초과학이 존중받아 마땅할 때까지

   장기적인 국가 발전을 위해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수백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당장은 과학기술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수출하는 것이 중요해 보이나, 그 모든 기저에는 기초과학이 있다. 기초과학자들은 사람들이 이러한 인식을 갖길 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초과학계는 서명운동, 천막농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로부터 대응하고 있다. 최근 기초과학계 학생들도 예산 삭감 대응에 가세해 반대 여론이 강해지자, 정부는 학생 인건비와 기초연구 지원 분야 예산을 일부 복원할 것을 발표했다. 그러나 복원 정도는 기존과 큰 차이가 없었다. 더구나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예산안 방향 브리핑에서 “그동안 비효율적으로 사용된 예산을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에 소중한 예산이 쓰일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라고 밝혔다. 해당 발언은 R&D 예산 삭감 기조가 지속될 것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이재범 교수는 “기초과학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연구를 진행하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도 열정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표명했다. 기초과학자들은 여전히 각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 연구 목적은 다양하나 최종적으로는 미래의 국가 경쟁력 상승일 것이다. 향후 존중받아 마땅한 기초과학이 될 때까지 기초과학자들의 열정은 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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