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밀물썰물

이가은 기자,  철학과
이가은 기자, 철학과

  어릴 적 끔찍한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는 드라마 ‘더 글로리’.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범죄자를 한 택시 기사가 응징해 정의를 구현한다는 드라마 ‘모범택시’. 요즘 우리 사회는 개인의 힘으로 사회 정의를 바로잡는다는 일명 ‘사이다 복수극’이 열풍이다. 그러나 이런 통쾌한 사이다 복수극 열풍의 이면에는 무고한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현 사법 체계에 대한 분노와 드라마에서나마 이루어졌으면 하는 권선징악에 대한 씁쓸한 염원이 담겨있다. 

  지난 2020년, 초등학생 아이에게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조두순이 출소 후 안산시로 돌아가겠다고 밝히자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안산시를 떠났고 인근 주민들은 조두순 거주 반대 시위를 벌였다. 또한 안산시에 계속 거주하던 피해자가 조두순의 이사 소식을 듣고 결국 안산시를 떠나자, 피해자가 평생 겪게 되는 아픔에 비해 처벌이 부족하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이에 피해자 대신 보복하겠다는 예고가 잇따랐고, 실제로 한 남성이 조두순의 자택에 침입해 둔기로 머리를 내리쳤으나 오히려 시민들에게 ‘의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편 지난 여름 연이어 발생한 서울 서이초, 대전 관평초 등 학부모 갑질에 시달린 교사들의 극단적 선택에 시민들은 가해 학부모 신상을 공개하고 사업장에 음식물을 던지는 등 분노를 표했다. 악성 민원을 일삼은 학부모 얼굴을 영정사진과 합성해 모자이크 없이 공개한 어느 SNS 계정의 팔로워 수가 6만 명을 넘기는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가해자를 개인적으로 단죄하고 처벌하는 것을 ‘사적 제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중들은 왜 이러한 사적 제재에 열광하는가. 일개 개인이 범죄자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위법임에도, 국민들은 ‘타인의 인격을 죽인 흉악범에게 인권은 사치’라고 비판하며 신상 공개를 지지했다. 또한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10~20년 형을 살고 나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어 재범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이 크고, 피해자에게 영구적인 고통을 남긴 것에 비해 형량이 부족하다는 국민의 법 감정이 현재 우리 사회가 사적 제재에 열광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도를 넘은 사적 제재는 법치주의를 위협한다. 당장은 속 시원할 수 있지만 마치 인민재판처럼 모두가 서로의 잘못을 색출해 내고 만천하에 공개한다면, 사람들은 법을 거치지 않고 형벌을 내리게 될 것이다. 또한 인터넷상의 정보는 허위 정보일 가능성이 높아서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고,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개인 신상 공개는 자칫 고소 공방전으로 사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그러나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사적 제재는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는 공적 제재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의사결정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시민과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수준으로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반복되는 사적 제재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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