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칼럼

  여름 방학 동안(물론 대학원생에게는 방학이 없다) 생전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추석 연휴에 친구들과 LA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3년 만에 떠나는 해외 여행을 충분히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거제도에서 나고 자란 아빠는 할머니댁에 갈 때마다 나와 동생을 바다에 띄워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고 애썼지만 30년간 성공하지 못했다. 아빠는 친구들과 물속의 꽃게를 잡아 망태기에 넣고 고둥을 건져 올리며 헤엄치는 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했기 때문인지 가르치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었던 것 같다.  

  올해는 아침부터 기온이 30도를 넘나들기에 양산을 샀다. 머리 위에 좁은 그늘을 만들어 쓰고 수영장에 도착만 하면 50분은 시원한 물속에서 물장구를 칠 수 있다. 초급반인 나는 키판을 잡고 허우적거리며 전진하려고 애써본다. 강사가 물속에 잠긴 내 어깨를 치면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뭐해?”라고 물을 정도로 실력은 형편없지만 부드러운 물길이 팔뚝과 허리를 스치는 느낌은 확실히 상쾌하다.

  대부분의 시간에 졸업 논문을 쓴다며 컴퓨터와 씨름하다가 수영을 갔다 오는 한 두 시간 사이에는 생소한 모습을 본다. 공공수영장에는 집에서 씻고 왔더라도 반드시 샤워를 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앞 시간을 마친 사람들과 뒷 시간 강습에 참여해야 하는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룬다. 강습 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들이 수영복을 들고 눈치를 보며 줄에 서면 할머니들은 120센티미터 정도 되는 어린이의 팔뚝을 휙휙 낚아채 자기 자리에서 비누칠을 하고 수영복도 입혀준다. 아이들이 부끄러워하면서도 잠자코 수영복을 갖춰 입고 나가면 흑설탕 팩을 바른 할머니 얼굴이 왠지 부드러워진다.

  수영장의 주요 고객은 나이 든 여성들이다. 빨간색 바탕에 금색 글씨로 “MASTER”라 새겨진 단체 모자를 쓴 이들은 상급보다 더 높은 마스터반 회원들로 속도나 자세가 물개를 연상케 한다. 어제는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마스터반 회원 뒤에 샤워줄을 서서 말을 걸었다. “빨간 모자 선생님들 너무 멋져요.” 초급반이라 깊은 풀에서 처음 수영하고 넋이 나갔다고 말하자 “젊은이들은 금방 배워. 나는 왜 진작 안 배웠나 몰라.”라고 대답했다.

  수영 강사는 아들이 바다에서 수영하는 걸 무서워해서 혼냈다고 한다. “물 위에서 떠서 하는 건데 뭐가 무서워?” 초급반 수강생들은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한 번도 바다에서 수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바다 수영을 할 수 있을까? 하려고 시도할까? 아빠는 바다에서 고둥이나 멍게를 잡으러 갈까? 미리 배워서 올해 여름이 가기 전에 대천 앞바다라도 헤엄쳐 봤다면 이렇게 아쉽진 않았을까 싶다.

  여행을 준비하며 LA는 대중교통이 좋지 않아서 여행객들은 차를 빌리거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백인들이 사는 부촌과 유색인종이 사는 곳 간의 왕래를 줄이고 구역을 구분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았다고 한다. 차로 15분 거리를 버스로 1시간 걸린다는 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정한 규칙이 다른 사람의 생활 반경을 축소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영을 할 줄 알면 더 넓은 곳에서 헤엄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도.......

 

공연화 (여성젠더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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