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공장 사망사고, SPL 평택 제빵공장 소스 배합기이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평택 공장 사망사고, SPL 평택 제빵공장 소스 배합기이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지난 10월 15일, SPC그룹 계열사인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근무 중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SPC는 사고 이후 안전 관련 후속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안전사고는 SPC 외에도 전국의 다양한 공간에서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안전사고, 왜 막을 수 없는 걸까. 안전한 노동환경 보장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현재, 청년들의 일터를 살펴봤다. 

불매운동, SPC 불매운동이 일어나 SPC 계열사 로고가 찢기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불매운동, SPC 불매운동이 일어나 SPC 계열사 로고가 찢기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1 : 29 : 300 

  1 : 29 : 300. 1건의 대형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벌어지기까지 같은 원인으로 29건의 중형 산재와 300건의 작은 사고가 사전에 발생한다는 걸 의미한다.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하는 이 원칙은 1920년대, 미국의 여행 보험 회사 관리자였던 하버트 하인리히가 7만 5,000건의 산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어떤 상황이라도 문제의 원인을 초기에 발견해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번에 사망사고가 발생한 SPL 평택 제빵공장(이하 평택 공장)은 파리바게뜨에 반죽과 재료를 납품하는 업체로, 피해자는 냉장 샌드위치 라인에서 근무하던 중 상반신이 소스 배합기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가 난 기계에는 끼임이 감지되면 작동이 멈추는 자동방호장치나 안전펜스가 마련돼 있지 않았으며, 2인 1조 작업 체계였지만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해야 했기에 사고 발생 당시 피해자는 혼자 일하던 중이었다. 

  또한, 평택 공장은 이전에도 유사한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한국안전보건공단(이하 안전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평택 공장에서는 지난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총 37건의 산재가 발생했다. 이 중 15건이 이번 SPC 사망사고와 동일한 ‘끼임 사고’였다. 해당 사고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이유다.  

  해당 사고는 사고 발생 후 SPC가 보인 비윤리적인 대처 때문에 더욱 물의를 빚고 있다. 평택 공장은 사고 발생 다음날도 사고가 난 기계 인근에서 피해자의 동료들에게 빵을 만들게 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고 대중의 비난이 거세지자, SPC는 그제서야 평택 공장의 작업을 중단하고 공장 직원들에게 휴가를 줬다. 사고 이틀 후인 17일에는 허영인 SPC 회장 명의의 공식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SPC는 같은 날 런던에 파리바게뜨 매장을 열었다며 영국 진출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등 이중적인 행보를 보였고, 사고 피해자의 장례식장에는 조문객 답례품으로 빵 두 상자를 보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회사 내규에 규정된 것이라지만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했다는 것이 대중의 입장이다. 

  이후 사건 발생 6일 만인 10월 21일, 허 회장은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여러분의 엄중한 질책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특히 고인 주변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들의 충격과 슬픔을 회사가 먼저 살피고 배려하지 못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허 회장의 대국민 사과 이틀 뒤인 23일, SPC의 다른 계열사 샤니 제빵공장에서 40대 노동자가 손 끼임 사고를 당함으로써 SPC는 자사의 노동 환경에 대한 국가와 대중의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재해유형별 산재 사망사고, 올해 3분기 기준 총 483건의 산재가 발생했다. 인포/ 최지수 기자
재해유형별 산재 사망사고, 올해 3분기 기준 총 483건의 산재가 발생했다. 인포/ 최지수 기자

  빙산의 일각  

  이번에 사망사고가 발생한 곳은 SPC의 계열사인 SPL 공장이었으나, 이러한 산재는 SPC라는 기업에 한정된 문제라고 볼 수 없다. 농심, 코레일, 삼성전자 협력업체 등 업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유형의 산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일 농심 부산 공장에서는 20대 여성 노동자가 냉각기에 팔이 끼어 부상을 입었다. 냉각기는 제품 포장 전 냉각을 담당하는 설비로, 해당 공장은 올해 2월에도 냉각기 끼임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당시 농심 공장의 냉각기에는 SPC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신체나 사물이 꼈을 때 기기가 자동으로 멈추는 끼임 방지 센서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부상을 입은 노동자는 이번 사고 이전에도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1월 5일에는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에서 30대 남성 노동자가 화물열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동자는 시멘트 운반 열차의 화물칸 연결 작업을 하던 중, 선로 전환기의 이상으로 인해 열차에 치여 숨졌다. 올해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는 지난 3월과 7월, 9월에도 근로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고까지 포함하면 총 4건이다. 특히 이번 사고는 코레일이 중대재해 예방책을 내놓은 지 이틀 만에 발생한 사고라는 점에서 사고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지난 7일에는 광주 산업단지 내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디케이산업에서 20대 노동자가 1.8톤짜리 철제 코일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고들이 발생한 지 수일이 지난 지금, 아직도 전국 곳곳에서 매일같이 다양한 산재가 발생해 많은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는다. 

  우리 학교 사회학과 최인이 교수는 최근 청년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잦은 이유에 대해 “SPC처럼 주야 2교대 12시간 작업에 작업 강도까지 높은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는 숙련된 노동자 역시 산업재해에 있어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청년 노동자는 최근 입사해 일을 시작했으므로 작업 과정에 익숙해질 시간이 부족하고 위험성에 대한 인지도 부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기업은 신입 직원들이 작업에 익숙해질 때까지 선임자와 동반해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등 산업재해 예방조치를 반드시 취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지난 11월 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3분기 누적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산재로 48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510명이 숨졌다. 이 중 절반 이상이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것으로 예방이 가능한 추락·끼임 사고였다. 지난 8개월간 산재 사망자 현황을 재해 유형별로 구분하면, 추락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204명(199건)으로 가장 많았다. 추락 외에도 ▲끼임 78명(78건) ▲부딪힘 50명(50건) ▲깔림·뒤집힘 40명(40건) ▲물체에 맞음 34명(33건) ▲기타 104명(83건)이 뒤를 이었다. 여기서 ‘기타’는 ▲무너짐 ▲화재 ▲폭발·파열 ▲빠짐·익사 ▲ 감전 ▲질식 ▲유해 물질 중독 등이다. 

  소비자들의 움직임  

  그동안 소비자들은 가격과 품질 등의 요소를 통해 제품 구매를 결정했다. 때로는 기업의 행보를 지지하기 위해 제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구매’가 아닌 ‘불매’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표출한다.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 이후 계속되는 ‘남양유업 불매운동’, 2019년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반항으로 나타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인 ‘노재팬’이 대표적인 예이다. 남양유업은 2013년 이후 꾸준히 매출이 감소했으며,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역시 노재팬 직후인 2020년에는 전년의 절반도 되지 않는 매출로 적자를 냈다. 

  이번 사망사고와 그에 대한 SPC의 대응을 지켜본 소비자들 역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피 묻은 빵 먹지 않겠다’, ‘앞으로 SPC 계열사는 사지 않을 것’이라며 SPC 불매운동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 샤니 등 SPC 그룹 계열사 목록과 제품 구별법이 공유되기도 했다. 또한 상품 바코드를 찍으면 SPC 그룹 제품인지 판별해주는 ‘깜:빵집’ 사이트도 등장했다.

  SPC 불매운동에 동참한 우리 학교 김영우(통계학·4) 학우는 “파리바게뜨 여성 노동자의 유산율이 높다는 글을 읽고 해당 기업의 노동 환경이 열악하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는 없어도 불매운동으로라도 연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불매운동 참여 계기를 밝혔다. 덧붙여 불매운동의 효과에 대해 “매출이라는 직접적인 타격을 줌으로써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 이은서(산림환경자원학·2) 학우 또한 “이번에 발생한 사망사고를 접한 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불매운동을 통해 소비자로서의 불만을 SPC 측에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SPC 계열사의 제품은 대체재가 많아 불매운동이 어렵지 않았지만 열차나 가전제품처럼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은 불매운동이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다른 기업의 노동자들도 이번 SPC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SPC 삼립이 생산하는 피 묻은 빵을 거부한다’는 성명문을 통해 “SPC그룹 계열사 SPL이 생산하는 샌드위치의 최대 고객은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라며 “삼성전자는 사내 식당에서 SPC 제품 지급을 중단하고, 다른 기업 제품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과 한국GM 부평공장 역시 사내 노동조합의 요구에 따라 간식 납품업체를 SPC에서 다른 업체로 변경했다. 현대자동차는 내부 공지에서 “SPC와의 계약과 관계없이 간식 품목을 변경해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불매운동은 SPC 계열사들의 매출 타격으로 이어졌다. 특히 SPC 주요 브랜드인 파리바게뜨는 사고 이후 작년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SPC는 지난 10월 28일 불매운동으로 인한 가맹점 피해를 줄이고자 본사에서 완제품으로 납품하는 빵 35종에 대해 반품을 허용했다. 불매운동이 장기화되자, 지난 11월 21일 빵과 부재료의 매입가격을 한시적으로 10% 할인해주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불매운동이 언제나 정답이 될 수는 없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소비자의 불매는 절대 가볍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불매’라는 소비자의 권리를 통해 기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수 있다. 다만, 그 무게를 인지하고 목적을 이룰 때까지 지속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국가의 책임 

  산재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소비자와 기업의 행보도 중요하지만, 국가 역시 법적 규제를 통해 기업을 감시하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을 새롭게 발효하며, 경영책임자의 주의 의무를 강화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중대재해는 산재 중 피해 정도가 심한 재해를 의미한다. ▲사망자 1인 이상 ▲동일한 사고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하는 것을 중대재해라고 규정하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1년 이상의 징역과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선 적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의 의미와 범위가 모호하다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지난 11월 14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월 한 달 새 발생한 중대재해 사망사고는 44건, 사망자는 46명이다. 그러나 이 중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지 않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가 26건, 사망자는 26명으로 전체 사고의 약 59%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 역시 지난 11월 17일 열린 검찰 월례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에도 통계상 산재 사망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시행 첫해에 곧바로 실효성을 평가하기는 어려우나 지속적으로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산재를 줄이고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산재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물어야 산재가 감소하고 예방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엄정히 대응해달라”고 검찰에 당부했다.  

  한편, 지난 10일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수립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사고 발생 이후 처벌 위주인 중대재해처벌법과 달리, 기업이 자율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해 사고를 예방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고용부는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과 세부 정책과제 검토를 거쳐 이달 중으로 로드맵을 발표하기로 했다. 로드맵에는 기업의 안전보건 예산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방안과 다른 기업의 사고 사례를 공개해 사고 예방에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포함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또한, 중대재해 처벌 대상과 책임 범위를 이전보다 구체화하는 등의 내용도 함께 담길 것으로 보인다.  

  안전할 권리를 달라  

  ‘안전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릴 기본 권리입니다’ 

  이 문장은 안전공단이 홈페이지에 올린 안전문화 캠페인 슬로건이다. 그러나 기본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매년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일하던 중 직장에서 숨지는 일이 허다하다.

  최인이 교수는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조직이라 노동자들의 안전보다 단기적인 이익을 좇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국가는 기업이 노동자의 안전한 노동생활을 보장하는지 감시하고 위반 사항이 발생할 때 제재하는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 제정이나 제도의 마련도 필요하나 법이 실제 현장에서 잘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감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사고를 막을 순 없지만 막을 수 있는 사고는 있다. 우리는 한 번의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 비슷한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작은 사고가 일어났을 때 개인의 부주의나 우연으로 치부하지 않고 즉시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 사고에 대한 후속 조치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건강한 노동환경이 만들어지고,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얻기 위해선 300건의 작은 조짐을 무시하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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