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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 승인 2020.06.03 17:20|(1160호)

눈동자

허수경

  죽은 이들 봄 무렵이면 돌아와 혼자 들판을 걷다 새로 돋은 작은 풀의 몸을 만지면서 죽은 이들의 눈동자 자꾸자꾸 풀의 푸른 피부 속으로 들어가다 마치 숲이 커다란 눈동자 하나가 되어 그 눈동자 커다란 검은 호수가 되어 검은 호수가 작은 풀끝이 되어 나를 자꾸 바라보고 있는데 내버려두었다네, 죽은 이들이 자꾸 나를 바라보는데, 그것도 나의 생애였는데
 

  그 숲에는 작은 나무 집이 하나 있었다 집 앞 닫혀진 문 앞까지 걸어갔다 집 안은 아직 겨울이었고 결혼 대신 시를 신랑 삼았던 여성 시인이 있었다 시인의 저녁 식사에 올려진 양의 눈동자, 이방의 종교처럼 접시에 올려진 양의 눈동자, 여성 시인을 신부 삼은 시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를 쓴다, 애인아, 이 저녁에 나는 당신의 눈동자를 차마 먹지 못해 눈동자를, 적노라, 라고

 

  최근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 시간에는 그동안 잘 하지 못했던 책이나 시 읽기에 도전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여러분은 시 읽기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으신가요? 첫 번째 학우연재로 소개할 시는 허수경 시인의 「눈동자」라는 시입니다. 허수경 시인은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고,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1992년에는 독일로 가서 살기 시작해 2018년 10월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첫 연에서 화자는 죽은 이들이 봄 무렵이면 돌아와, 새로 돋은 풀의 푸른 피부 속으로 들어가 숲이 커다란 눈동자 하나가 된다고 했습니다. 죽은 이들이 봄 무렵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겨울 동안에는 초록 빛깔을 띄우지 않았던 잎들과 풀들이 푸른빛으로 물든다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눈동자는 숲이 되기도 하고, 커다란 검은 호수가 되기도 합니다. 또 검은 호수는 작은 풀끝이 됩니다. 눈동자이면서 숲, 그리고 검은 호수, 작은 풀끝은 화자 자신을 자꾸 바라봅니다. 그것은 죽은 이들이기도 하지요. 죽은 이들이 화자를 바라보아도 화자는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그것이 자신의 생애였다고 하면서요. 그렇다면 이 죽은 이들은 흘러가는 시간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의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자연의 탄생, 생장, 소멸을 지켜보며 화자는 시를 쓰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 또한 자신의 생애라고 합니다.
  2연으로 넘어가면, 그 숲으로 들어가 작은 나무 집으로 들어갑니다. 집은 문이 닫혀있습니다. 숲은 이미 봄으로 접어들었는데 집 안은 아직 겨울이고, 결혼 대신 시를 신랑 삼았던 여성 시인이 있습니다. 그 시인의 저녁 식사에는 양의 눈동자가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처럼 접시에 올려진 양의 눈동자, 눈동자는 이 여성 시인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이 시를 지은 허수경 시인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이방의 사람처럼, 이방인처럼 혼자 봄이 오지 않는, 자연의 시간을 거스르는 겨울의 집 안에서 시를 쓰고 있는 시인. 아마 이 시인에게 있어서 시 쓰기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진 이방의 것,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반적이지 않은 것일 겁니다. 그럼에도 이 시인은 결혼 대신 시를 신랑 삼았다고 합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으로 표현한 시를, 그럼에도 계속 써 나가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이 책과 시 읽기를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꼭 책과 시가 아니더라도 이번 학기, 이번 년도에 하고 싶은 일들이 있으신가요? 여름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학우 분들이 도전하는 일의 의미를 찾아가는 6월이길 바랍니다.

박시현(국어국문·2)
@garnetstar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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