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영광이 다시 오길

이강우 디지털미디어부장, 행정학과

   토크빌은 공공성을 소양으로 갖춘 자발적인 시민이 민주주의를 정상적으로 움직일 거라고 했다. 또한 민주주의란 공동체가 갖춰야 할 덕목이며 혁명이 아닌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그들 자신을 지킬 것으로 봤다. 토크빌이 살던 시대의 프랑스는 전란과 혁명이 끊이지 않았다. 혁명의 좌절된 이상은 혹독한 전제정치로 귀결됐다. 이 이야기는 얼마 전까지 230년 전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러기를 바랐다.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점거한 영국은 영중공동선언에 따라 1997년 중국 정부에게 홍콩을 반환했다. 영국에게 민주주의를 배운 홍콩인들을 위해 영국이 내건 조건은 ‘홍콩의 자치를 50년간 보장할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정부에게 약속이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홍콩에서는 지난 6월 범죄인인도법안으로 촉발된 시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와 정부는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홍콩시민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범죄인인도법안은 홍콩으로 도주한 중국인 범죄자의 신병을 중국정부에게 약속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홍콩인들은 이 법이 일국양제를 훼손하고 민주파 인사에 대한 정치적 탄압의 도구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사태가 이러함에 따라, 민주주의를 공부할 기회라 여기고 시험이 끝난 후 30일 새벽 비행기로 홍콩에 건너갔다. 지난 8월 공항점거 사태 때문인지 공항의 경계는 무척 삼엄했고, 거리에는 경찰이 순찰 중이었다. 홍콩대학 입구에는 시위기간 중 사체로 발견된 15세 소녀의 빈소와 시위 경과를 정리한 게시판이 보였다. 학생들은 시험으로 정신없이 오가는 중에도 고인에 대한 추모를 잊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시위일정이 담긴 포스터를 붙이는 학생을 발견해 달려갔다. 그녀는 자신을 지역 대학생이라 말한 뒤 “홍콩은 민주화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독립이 아니라 민주적인 선거를 원한다”며 중국정부에게 “홍콩 기본법의 일국양제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익명의 홍콩시민은 “우리는 항복하는 대신 싸울 것”이라며 ‘한국인들의 지지와 관심’을 요청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침사추이에 들렀다. 검푸르게 물든 홍콩의 밤하늘이 고층 빌딩과 어울렸다.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나 도로 곳곳에 쓰인 ‘홍콩 해방’, ‘시대 혁명’의 문구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홍콩인들의 기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11월 1일 현재 중국 정부는 홍콩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을 예고한 상황이며, 이에 따라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유튜브에 홍콩시위 노래가 업로드 됐다. Glory to Hong Kong. 홍콩에 영광이 다시 오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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