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 하는 것이 좋다』, 2018.

작년 가을, 친구들이 단체 카톡방에 올려 알게 된 칼럼이 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인데 통찰력 있는 유머와 리듬감 있는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추석 때 만난 친척들이 당신의 근황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가지고 불편한 질문을 한다면 대충 얼버무리지 말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당당히 반문하라는 내용이었다.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묻는 이들에게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라고 권한다. 이 칼럼을 쓴 사람이 바로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영민 교수이다.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그가 신문이나 잡지에 실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책의 제목이 꽤 거창하고 만만치 않아 보이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잊지 않으면 오늘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을 외면하려 애써왔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처럼 대부분의 인간은 삶에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민 교수는 아침을 열면서 공동체와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어려운 시절이 오면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걸어 닫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진다는 것이다. 삶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56편의 에세이 중에서도 저자가 새해를 맞이하며 ‘행복’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꼭지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크 타이슨의 말을 인용한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처음에는 피식 웃게 되지만 마냥 마음 편히 웃을 수만은 없는 문장이다. 우리는 대개 그럴싸한 기대와 계획을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하고,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고 말이다.

  저자는 너무 거창해서 실현될 가능성이 없거나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면서 그 덧없음에 불행해하기보다는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지’라고 근심하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만한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기에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을 추억하고 미지의 세계를 궁금해하며 새로운 만남을 잊지 앉으려는 노력으로 한 권의 책을 내놓았다는 김 교수의 말처럼, 이 책은 소소하거나 시시해보이지만 실은 삶에서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펼쳐 놓는다. 성장, 결혼, 추석, 수능, 현대사 등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근심한다. 끊임없이 되묻고 비트는 책. 그러면서도 참신한 비유와 탁월한 유머, 해학를 잃지 않는 글들이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비슷한 류의 책은 많지만 무겁지 않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이는 경쾌한 에세이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