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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회 충대문학상 수필부문 가작낯선 곳으로 떠나는 이유 (정진욱,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3)
충대신문 | 승인 2017.06.05 15:17|(1128호)

  낯선 곳에서만큼 내 모습을, 온전히 나만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세상은 오직 낯선 곳에서의 바람, 사람들의 숨소리, 이따금 불어오는 벌써 푸근해진 선선한 바람을 통해서 넓어지고 내 안의 견고한 편견의 벽은 그 다채로운 바람에 모래 흩날리듯 조용히 바스러진다.
  홀로 이방인이 되기 위한 준비는 또 얼마나 설레는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방에 무엇을 챙겨갈지 넣었다 다시 빼고 바닥 한가득 헝클어 놓은 옷가지며 갖은 잡스러운 것을 덜어낼 때, 그 마음이 벌써 발만 동동 구르는 소리가 얼마나 경쾌한지 모른다. 한가득 담았던 욕심을 덜어내고 잠들고 싶은 마음이 잠들지 말라고 재촉하니 그 꼴이 우스워 절로 미소 짓게 된다.
  좌절감과 무력감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마치 내가 연료가 바람에 다 날아가 버려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자동차가 된 기분이었다. 한참을 그러던 중에 무언가에 떠밀려 나는 차에서 내려 갈아타듯 허겁지겁 기차에 올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곳에서 벗어나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났다. 차가운 바람을 등지고 떠난 아랫녘에서 푸근한 바람이 불어왔고 덩달아 사람들마저 푸근하게 다가왔다. 낯선 곳에서 움츠리고 꽁꽁 얼었던 마음이 조금씩 갈라졌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새벽까지 각자의 일터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무기력함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떠나온 곳에서라면 눈감고도 걸어갈 곳들을 지도를 찾아보며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나의 세계가 너무도 좁다는 것을 느꼈다. 젊은 사람이면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이면 나이 든 사람, 낯선 사투리 속에서 홀로 이방인이 된 기분이 느껴졌고, 늦은 밤 일터를 떠나는 사람들과 홀로 눈물짓는 사람을 보며 내 안의 연민이 느껴졌다. 익숙해질 듯 익숙해지지 않는 낯선 곳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여기저기 옮겼다.
  그 후, 얼마나 지났을까. 내 발길은 마지막으로 제주도로 향했고 정처 없이 떠돌던 이방인은 그제 서야 이름도 모르는 한 바닷가에 주저앉았다. 푸른 바다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도 세서 주변의 작은 소음들이 파묻혀 들어갔다. 이내 바람에 둘러싸였다. 이상하게도 조용해졌고, 나는 바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 좀 쉬어.”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이제 난 어딜 보고 가야 하지. 너무 두렵고 불안해. 망망대해를 나 홀로 표류하는 것 같아.”
긴 침묵이 흘렀다. 혼자 외로운 밤을 삭이며 누구에게도 말 못 했던 슬픔이 쏟아졌다. 나는 왜 그렇게 자신이 없었을까. 나는 왜 그렇게도 나 자신이 미워졌을까. 그럴 때 왜 내 곁에 아무도 없었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후두두 떨어졌다.
  “정말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그래, 잘하고 있어.”
  거센 바닷바람은 지친 이방인을 더욱 혼자이게 만들어준다. 바람은 주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을 품고, 그 가슴에 안겨 눈치 보지 않고 포효할 수 있게 한다. 그 가슴은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위로였다.
  얼굴을 마주 보던 바람이 등을 두들기며 바다 저편으로 돌아갔다. 어둠이 외로운 섬 가득 내려앉았다.
  그렇게 나는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바다와 바람으로부터, 별과 밤하늘로부터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그제야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런 것이 혼자 떠나는 여행이 주는 가르침이자 유일한 낙이 아닌가 생각했다. 시끄러운 마음의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히 자기 자신에게 내 부끄러움과 마음속 깊은 상처들을 고백하는 고해성사 같은 경험이었다. 끄집어내기 두려운 것이지만 막상 토해내고 나면 그렇게 속이 후련할 수 없다. 내 곁에 등을 토닥이는 위로가 너무도 절실하다면 나는 언제든 떠날 것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 자신을 홀로 마주하기 위해 떠난 경험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삶의 이유를 찾고 나 자신을 진실 되게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얻었다.
  갖은 옷가지가 아닌 필기구와 책들을 더 작은 가방에 넣는다. 지도 대신 수업 시간표를 들여다보며 나는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잠자리에 든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시각을 갖고 많은 것을 발견하는 삶을 살고 싶다. 누군가의 눈물에 같이 마음 아파할 수도, 새로 발견한 책 속의 문장에 마음이 벅찰 수도, 처음 만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가 아닌 또 다른 어딘가를 생각하며 달콤한 상상에 빠지며 또 다른 여행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다시 한번 찾아오겠지. 이렇게나 행복한 기다림이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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