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완주 삼례문화마을

  

▲ ①삼례예술촌 입구를 장식한 삼삼예예미미 담 너머로 보이는 관람안내소 풍경

   주변을 둘러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며 점차 원래의 모습과 의미를 잃어가는 폐공간들이 흉한 골조를 드러내고 있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간 활용이 한계치에 다다라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폐공간은 과거에 건물이었다는 자취만을 간직한 채 쓸쓸하게 방치돼 있다. 그러나 흉물스러운 외관으로 사람들에게 외면 받던 폐공간들이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원래 화력발전소였던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 미술관 영국 테이트 모던, 기차역으로 사용됐던 프랑스의 오르세 박물관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유럽에서 시작된 ‘폐공간 재활용’ 운동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문화예술 공간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위치한 삼례역에서 약 3분가량 좁다란 시골길을 걷다보면 한적한 시골역인 삼례역 주변과는 다소 이질적인 공간이 나타난다. 1920년대 일제가 만경평야에서 생산된 곡식을 수탈하면서 세운 삼례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삼례문화예술촌 ‘삼삼예예미미’가 바로 그 곳이다. 완주군 마을 재생사업의 일환인 이곳은 1920년대에 수탈 목적으로 지어진 양곡 창고 5동과 1970~80년대에 지은 2동을 갤러리, 문화 카페, 디자인박물관, 목공소, 북 아트센터, 책 박물관 등으로 구성했다. 이렇게 건물의 외관은 보존한 채 내부를 새롭게 단장해 올해 6월 문화예술촌의 문을 열었다.

갤러리부터 박물관까지, 다양한 볼거리
   ‘삼삼예예미미’라고 적혀있는 아기자기한 담을 지나면 녹슬고 칠이 벗겨진 양곡창고의 외관이 눈에 들어온다. 그 생경함에 놀라 주변을 둘러보면 양곡창고들 사이 광장에 민들레 홀씨 조형물이나 삼례예술촌의 붉은 이니셜 조형물이 관광객을 반기고 있다. 살포시 자리잡은 조형물들은 이곳이 예술 공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예술촌의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비쥬얼 미디어아트미술관(VM 아트갤러리)>은 즐거운, 상상하는, 창조하는, 공유하는 미술관이라는 4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비쥬얼 미디어아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현재 미술관에서는 삼례의 빛(자연과 과학의 빛-융합) 기획전을 관람할 수 있다. 프로젝터 빔을 이용한 영상물, 센서가 달린 조명의 변화하는 빛, 아크릴과 크리스탈을 사용해 반짝거리는 질감을 나타낸 그림, 틈새로 빛이 새어나오는 바위 조형물 등 시각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미디어 예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비쥬얼 미디어아트미술관의 맞은편에는 <문화카페 오스>가 자리 잡고 있다. 오스는 단순히 식음료만 판매하는 카페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지역민들과 일반인들에게 커피 로스팅부터 각종 추출과정에 대한 바리스타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한 커피관련 대회도 개최하고 커피 제조부터 카페창업교육까지 실시해 결과물을 상업화할 수 있는 커피 빌리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 ②유럽식 공방을 재현해 전통방식으로 책을 만들어볼 수 있는 책공방북아트센터


   <책공방북아트센터>는 유럽식 북아트공방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해 책 만드는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게 했다. 이곳의 내부는 유럽 책공방 장인의 작업 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듯 나무 인쇄 기계, 문장 인쇄 기계, 활판 인쇄 기계와 한 쪽 벽면을 손톱만한 활자들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기계들은 관상용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되기 때문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나만의 책도 만들 수 있다.
   건물의 벽에 큼지막한 글씨로 ‘협동생산 공동판매 삼례농협창고’라고 쓰여진 건물은 <디자인 박물관>이다. 이곳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핀업 디자인 어워즈(Pinup Design Awards) 입상작품 중 위원회에서 선정된 작품을 전시한 곳이다. 작품은 모두 기증된 것으로 지속 영구 전시가 기본 원칙이다. 핀업 디자인 어워즈에서 수상한 TV, 자전거, 전자레인지, 핸드폰, 의자, 타이어 등 우리가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디자인 박물관 옆 <김상림 목공소>는 건물의 초입부터 온갖 목자재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이곳은 오랫동안 지리산에 머물며 전통 가구를 만들었던 목공의 공방이다. 유려한 결이 살아있는 여러 가지 목가구와 목공 연장이 고스란히 전시돼 있다. 공방에서는 전통 목가구 및 생활가구, 액자, 책과 관련된 가구를 제작한다. 또한 목공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는 목수학교가 운영될 계획이다.
   <책 박물관>은 ‘책의 꿈 종이의 멋’외 2개의 프로젝트를 상설 전시하고 있다. 현재는 상설 전시 외에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한국 북디자인 100년 展’을 특별기획전시하고 있다. 이 전시회는 우리나라에 서양 활판인쇄술이 도입된 1883년 박문국 설립이후 1983년까지 책 디자인의 변천과정을 담아낸 전시이다. 전시된 350여 점의 책을 통해 100년 동안 우리나라 북디자인 역사 100년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책 박물관입구 옆에는 눈에 띄는 조그마한 서점도 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무인서점 ‘정직한 서점’이다. 이 서점에서는 기증받은 소설에서부터 요리책까지 다양한 헌 책들을 읽어볼 수 있고 양심껏 돈을 지불하고 가져올 수도 있다.

문화와 역사가 함께 숨쉬는 공간
   비록 지금은 아기자기한 디자인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삼례문화예술촌은 아픈 역사를 수반하고 있는 공간이다. 문화예술촌으로 새롭게 문 열기 전 삼례문화예술촌은 일제강점기 수탈되던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내기 전 보관하던 곳이었다. 1970년대까지도 관내 양곡창고로 활용됐으나 이후 삼례역이 전라선 복선화 사업으로 이동하며 그나마 양곡창고로써의 기능도 잃은 채 고스란히 세월 앞에 방치돼 있었다. 완주군청 문화관광과 김미경 담당자는 “제 기능을 잃고 도시 미관을 해치던 양곡창고를 없애려고 했지만 후손들이 양곡창고를 보며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문화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며 폐공간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배경을 설명했다. 또 김 담당자는 “삼례문화예술촌은 폐공간을 재활용해 문화예술 공간을 새로 조성하는 것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며 “문화예술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조성해 완주군민들에게 문화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과거 양곡창고였던 외관을 고스란히 보존해 건물을 볼 때마다 역사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등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삼례문화예술촌 삼삼예예미미는 허물어져 가던 폐공간을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다시 살려냈다는 점에서 기존의 인식을 뒤엎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옛 건물만이 지닐 수 있는 흥취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 주변의 폐공간은, 현대의 신식건물은 지니지 못하는 나름의 깊은 매력으로 역사의 위용을 이어오고 있다.
 

글/사진 유정현 기자
yjh13@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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