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서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는 대학생들

 

   1977년 제1회를 시작으로 36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MBC 대학가요제>가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올해 폐지됐다. 반면 MBC 무한도전의 <2013 무도가요제>는 역대 무도 가요제 중 최다 관객인 3만 5천여 명을 동원하며 뜨거운 인기를 입증했다. 수많은 명곡과 스타들을 탄생시키며 대학문화의 상징처럼 군림해오던 대학가요제의 폐지는 무도가요제의 성황과 대조되며 씁쓸함을 더했다. 대학가요제가 폐지되자 대학생들만의 고유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근심과 우려의 목소리 또한 커졌다.
   이러한 근심과 우려 속에서도 대학생들의 문화는 이전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과거 문화의 불모지라고 불리던 대전은 오히려 대학생들의 주도로 인해 문화도시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즐길 줄 아는 당신이 진정한 문화 그 자체
   지난 9월 27일부터 이틀 동안 갑천 호수공원에서 ‘힙합코어 페스티벌 in 대전’이 열렸다. 기존의 지방 힙합공연과 달리 탄탄한 실력과 인지도를 자랑하는 힙합가수들의 무대는 서울에 비해 저렴한 티켓 가격을 뽐내며 양일간 페스티벌에 참여한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초대했다. 이 뜨거운 축제를 만든 이들은 놀랍게도 대학생들이었다. 문화기획단 ‘정상인’은 힙합코어 페스티벌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기며 대전 젊은이들의 내면에 내재돼 있는 뜨거운 열기를 밖으로 이끌어냈다. 축제를 주관한 정상인은 ‘정열, 상상력, 인간미를 갖춘 사람들이 모인 집합체’라는 뜻으로 대학생들이 주축을 이룬 문화기획단이다.
   정상인은 작년 제1회 호락호락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올해 제2회 호락호락 페스티벌, 힙합코어 페스티벌까지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지역축제의 한계를 하나둘씩 허물어가고 있다. 정상인을 조직해 이끌어가고 있는 한순중 총감독은 “처음 축제기획단계에서 주변 사람들 모두 대전에서는 락이나 힙합공연이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판을 벌여 놓으니 반응이 뜨거워 대전 젊은이들이 다른 지역보다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감독은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전에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펼칠만한 문화적인 공간과 여건을 조성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가장 손쉽게, 친근하게 접하고 소비하는 문화는 음악이라고 생각해 정상인의 첫 기획으로 락 페스티벌을 구상했다는 그는 “제1회 호락호락 페스티벌의 강령은 ‘지하에서 지상으로’였다”고 말했다. 문화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친근해야 한다고 생각해 음지문화를 양지로 끌어오려 노력한 것이다.
   축제가 성황리에 이뤄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대전지역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서포터즈 활동이었다. 축제 구상부터 기획, 홍보, 마무리까지 서포터즈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과정은 단 하나도 없다. 축제를 통해 남기는 수익금은 거의 없다. 애초 목적이 이익 창출이 아닌 대전 지역의 젊은이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축제는 끝났지만 서포터즈들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대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즐기고 싶은 축제나 도전해보고 싶은 문화기획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한다.

 

   관심을 기다리는 대전의 문화 공간
   서울 소재 대학의 대학생들에게 서울의 대학생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을 묻는다면 대부분 홍대라고 대답할 것이다. 대전 대학생들에게도 대전의 대학생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대흥동 문화거리와 궁동의 욧골공원, 목원대 근처의 목밤길 등이 바로 그 곳이다.
   과거 대전의 원도심이었던 대흥동은 본래의 기능을 벗고 예술인들을 위한 문화거리로 탈바꿈했다. 60~70년대의 아날로그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현대의 세련된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한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는 대흥동 문화거리는 과거의 고즈넉함은 물론 재미있는 벽화 등의 감각적이고 젊은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목밤길은 ‘대학생이 직접 대학로를 조성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목원대 대학로 조성 단체이다. 매달 둘째 주와 넷째 주 목요일 목원대 앞 모카광장에서 공연 및 벼룩시장을 열고 컨셉이나 테마를 다양하게 선정해, 재밌고 풍부한 대전의 대학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학교 주변의 궁동 욧골공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이곳은 대학로로써 문화공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문화기획사 조선그루브가 주최하는 대학로 문화 활성화 프로젝트인 즐길거리를 통해 욧골공원에서 거리공연을 진행하고 궁동의 복합예술마을축제인 궁민대잔치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며 대학생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변하는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대학생문화가 점차 사라진다고 현실을 마냥 아쉬워하는 것은 성급한 생각일 수도 있다. 대전 대학생문화기획단 운영팀장을 맡고 있는 한대철(무역·3) 학우는 “문화는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문화도 변해간다”며 “대학생문화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을 문화도시로 만들고자 대전지역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대전 대학생문화기획단은 변해가는 대학 문화에 발맞춰 다양한 행사를 준비한다. 돗자리 콘서트라는 공연문화 이외에도 세대 이해 박람회, 취업 오디션 등 대학생들을 위한 현실적인 문화기획도 진행하고 있다. 대전 대학생문화기획단 박길태(자치행정·3) 학우는 “대전의 문화는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이 기대되는 백지와 같은 상태”라며 “대학가요제가 사라지는 것 또한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대학생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생문화가 점차 사라진다는 우려는 오히려 사라져가는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촉진제 역할을 하며 또 다른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 꿈과 낭만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입시라는 산을 넘어 대학에 왔지만 취업이라는 더 큰 산을 넘기 위해서 학점은 물론이요, 스펙을 쌓기 위한 자격증 공부, 대외활동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지금 대학생들의 현실이다. 

 

   잔디밭에 둥글게 모여 앉아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보다는 도서관으로 종종걸음 치는 학생들의 모습이 익숙해진 캠퍼스의 모습에 걸맞게 문화도 변하고 있다. 문화가 융성하기 위해서는 문화의 소비자들이 주체가 돼야 한다. 문화의 소비자인 대학생들이 방관보다는 참여의 자세로 자신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문화의 싹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대전 문화의 미래는 밝다. 이러한 움직임을 단발적인 현상이 아닌 지속적인 현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입지가 약한 소규모의 문화단체들은 교류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한다. 여기에 대학생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더해진다면 대전 문화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유정현 기자 yjh13@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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