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야요이 특별전을 다녀오다


점에 대한 강박
Dots Obsession

   “어느 날 테이블 위의 붉은 꽃들이 수놓인 식탁보를 보았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천장으로 향했고, 거기엔, 도처에 붉은 꽃들의 형태들이 펼쳐졌다. 온 통 방안 가득, 나의 온 몸, 모든 우주가 꽃으로 가득할 것이다.”
일본의 현대예술가 쿠사마 야요이는 10살 무렵 온 사방과 몸이 꽃무늬로 뒤덮이는 꿈을 꿨다. 꿈을 꾼 이후 환각에 시달리지만 작가는 이를 원천으로 삼고 이내 편집적 강박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역동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폴카 점(polka dot)의 여왕, 쿠사마 야요이의 예술세계가 대구미술관에 펼쳐졌다.

   자신을 녹여내다
   어린 작가가 꿈에서 붉은 꽃으로 뒤덮인 환각을 경험했다면 전시를 찾은 이들은 먼저 붉은 풍선들로 들어찬 전시홀을 보게 될 것이다. <점에 대한 강박(2013)>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작업된 작품이다. 흰 점무늬가 반복해 찍혀있는 커다란 붉은 풍선이 전시장 초입을 가득 채우며 작가의 예술 세계로의 진입을 안내한다. 공중에 매달린 풍선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닥에 놓인 한 풍선의 구멍 안을 살펴보면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여 붉은 바탕과 흰 점무늬의 입체적인 공간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꽃피는 계절과의 만남
An encounterwith a flowering season

   홀을 벗어나 <나의 영원한 영혼(2012)> 시리즈 전시실로 들어서면 과거의 예술세계와는 달리 변화가 생긴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나의 영원한 영혼> 시리즈는 그림의 무늬가 스카프의 무늬처럼 사방으로 나있다. 작가가 휠체어에 앉아 책상 위에 캔버스를 놓고 작업할 때 손이 닿는 한 쪽 면을 그리고 캔버스를 돌려서 다시 그리는 식으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작가의 과거 작품이 거대한 캔버스를 그물구조와 패턴을 통해 환각에 빠진 듯 괴기스런 느낌으로 가득 채웠다면 다음 작품들은 사뭇 다르다. <꽃피는 계절과의 만남(2009)>은 따뜻한 느낌의 붉은 계통 색을 사용하고 직관적으로 형상을 표현했다. 이는 마음의 혼란스러움이 다소 완화됨을 보여준다.
   또한 붉은 배경에 푸른색 아크릴 물감으로 사람 얼굴 무늬를 사방에서 그린 <사랑은 그토록 화려하지만 세상은 늘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2010)>는 전쟁에 대한 작가의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2차 대전 막바지에 군수공장으로 끌려가 낙하산 재봉작업을 해야 했던 작가는 전쟁의 불안과 공포 속에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작가는 전쟁의 혼란스러움을 붉은색과 푸른색을 사용한 강렬한 색채대비를 통해 나타냈다.
 

어린시절 경험한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

혼란스러웠던 전쟁의 참상을 붉은색과 푸른색의 강렬한 색채대비를 통해 나타내

사랑은 그토록 화려하지만 세상은 늘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Lov is so glamorous, but the world is engaged in wars all the time

   빨려 들어가는 환각의 세계
   쿠사마 야요이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어디서도 보지 못한 낯선 곳을 마주하는 듯하다. 이런 궁극의 낯섦으로 무장한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난 느낌이다. <천국으로 가는 사다리(2012)>는 어둠속에 빛나는 사다리의 아래위로 거울을 설치해 반사, 굴절에 의해 끝없이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구조물이다. 사다리를 어둠 속에 설치한 이유는 사다리를 설치한 지점부터 작가의 영혼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귀신에 홀린 듯 사다리가 있는 통로를 지나고 나면 <무한 거울방-영혼의 광채(2008)>가 나온다. 천장과 벽이 거울로 둘러싸이고 백여 개의 전구들이 제각기 색을 빛내며 바닥의 수면에 비춰 일렁이고 있다. 이렇게 무한 거울방에 들어서는 순간 바깥의 현실세계와 차단되며 작가의 환각세계에 스며든다. 작가는 점무늬의 반복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거울을 소재로 선택했다. 거울은 현실과 환영의 경계라는 특수한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매체로 회화와 조각을 하나의 설치작품으로 만들어 이차원과 삼차원 사이의 교류를 만들어냈다.
   무한 거울방에서 나오면 작가가 자신의 자작시를 읊어주는 영상 <맨하탄 자살 중독(2010)>이 나온다. 영상 역시 양 옆에 거울을 설치해 벽면 전체에 영상이 비춰진다. 눈이 아플 정도로 붉은 색의 머리와 흰 점무늬의 붉은 옷을 입고 낮게 시를 읊조리는 작가의 모습이 벽면을 가득 채운다. 이런 작가의 모습은 기이하게도 어느새 보는 이를 환각에 빠지게 한다.
   실크스크린 <영원히 사랑하리(2004)> 시리즈 작품 50점은 캔버스 가득 그물, 점, 식물, 사람의 옆모습 형상 등을 평면 위에 반복, 연속시켰다. 마치 세포가 증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모든 사물을 통합하는 형태이자 끊임없는 변형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무의식 속에 억압돼 있던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현한 <영원히 사랑하리> 시리즈를 통해 내면의 환각세계를 드러낸다.

   삶을 예술로 승화
   2층으로 올라가면 세 개의 점무늬 호박 모형이 자리 잡고 있다. <호박, 거대한 호박, 호박(2013)>이라고 세 개의 호박에 이름을 따로 붙여줄 만큼 호박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대단했다. 호박은 작가의 또 다른 자아라고 불린다.

반복적 비전, 남근보트
epetitive-vision, Phallus-Boat

   무심한 성격이었던 작가의 아버지는 아내와 여러 차례 다투는 모습을 보였으며, 결국 어린 작가와 작가의 형제들을 두고 집을 나가버린다. 작가는 이러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으로 남성에 대한 거부와 혐오감을 갖게 된다. <영적 재생의 순간(2004)>은 남성 성기에 자신에게 친근한 도트를 적용해 남성에 대한 혐오감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노력한 작가의 작품이다. <반복적 비전, 남근보트(2000)> 또한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인 남근적 형상을 과도하게 반복해 작가 자신의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가볍게 만들었다. 남근 모양의 오브제들로 이루어진 보트와 보트가 있는 공간 전체를 보트의 형태가 담긴 사진으로 모조리 도배한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환각적인 느낌과도 어우러진다.
   지름 30cm의 스테인레스 거울공 1500개를 늘어놓은 작품인 <나르시스 가든(2013)>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사용해 온 소재인 점과 거울을 이용했다. 이 작품은 작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작가는 1966년 33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정식으로 초청받지 않았음에도 베니스 비엔날레 현장 야외에서 1500개의 거울공을 개당 2달러에 팔아 화제가 됐다. 비록 주최 측에 의해 도중에 중단됐지만 작가는 거울공을 2달러에 파는 것을 통해 예술작품도 가볍게 사고 팔수 있는 행위라는 것을 재치 있게 드러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주목받게 된 후 작가는 27년 후 4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정식 일본대표로 초청 받게 된다.

맨하탄 자살 중독
Manhattan Suicide Addict

   쿠사마 야요이는 평생 자신을 옥죄어온 환각, 환영, 강박증을 떨쳐내기 위해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현재 80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작품 활동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점, 그물, 사람 등 형상의 반복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거울을 통해 무한한 세계를 갈망한다. 당신의 꿈을 빛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예술을 향한 쿠사마의 지치지 않는 열정은 그의 꿈  세계를 한층 더 빛나게 만든다.
 

글 / 사진 유정현 기자
yjh13@cnu.ac.kr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