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아닌, 미묘한 남성 간의 우정 브로맨스

 

   “아무리 그래도 넌 그냥 있었어야지. 나한테 축구 말고는 너 밖에 없었는데, 축구 날리고 죽고 싶었을 때 너라도 있었어야지.” 올해 초 종영한 KBS2 드라마 「학교 2013」의 대사다. 흥수와 남순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 대한 그동안의 오해를 털어내는 이 장면은 이 드라마의 애청자라면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흥수와 남순이 단순한 친구 이상의 사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여지도 다분하다.
   흥수와 남순의 관계처럼 두 남성 간의 매우 끈끈하고 친밀한 관계를 지칭하는 ‘브로맨스(Bromance)’가 브라운관, 스크린을 넘나들며 종횡무진하고 있다.

   사랑과 우정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브로맨스는 형제(Brother)와 로맨스(Romance)의 합성어로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동성애와는 다르다. 우정이라기엔 조금 과한, 그러나 사랑이라고 하기엔 다소 부족한 남성 간의 관계를 이르는 말로 2010년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신조어로 등재됐다.
   브로맨스는 이미 예전부터 영화나 드라마에 간간히 재미를 더해주는 감초역할을 해왔다. 2010년 KBS2에서 방영된 드라마「성균관 스캔들」에서는 늘상 티격태격하면서도 은근히 서로를 걱정해주던 걸오(유아인)와 여림(송중기)이 드라마의 주된 커플 못지않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걸오와 여림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일명 ‘걸림 커플’은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수많은 패러디물을 양산해내며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에서는 베스트 커플상까지 거머쥐는 영광을 안았다.
   이처럼 극중에서 그저 흥미를 끌만한 요소로 사용됐던 브로맨스의 위치는 어느덧 극의 언저리에서 중심으로 옮겨왔다. 브로맨스는 브라운관뿐만 아니라 스크린까지 장악했다. 올해 6월 개봉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영화 말미에 원류환(김수현)과 함께 페건물 아래로 추락한 리해진(이현우)은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한 나라의 평범한 집에 태어난 원류환의 옆집에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원류환에 대한 리해진의 동경을 넘어선 미묘한 어떤 무언가는 브로맨스에 열광하는 관객들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당겼다.

   영화·드라마 점령한 브로맨스 인기 비결 
   스크린, 브라운관을 막론하고 브로맨스가 흥행 보증 수표로 자리 잡은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남성 관객은 브로맨스 커플을 보며 평소 선망하던 남자들 간의 진한 우정과 의리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여성 관객에게는 남성 지향적인 세계관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한다. 이러한 대중들의 기대와 호기심을 충족하는 브로맨스 작품들이 하나둘 나오다보니 어느새 스크린과 브라운관은 브로맨스에 물들었다.
   브로맨스가 가미된 내용의 영화나 드라마들은 남녀 커플의 진부한 사랑 이야기 일색이었던 기존 영화나 드라마와 다르다. 매력적인 남성들의 뜨거운 우정과 사랑 사이의 미묘함을 다루는 신선한 커플조합은 호기심을 자극하며 대중들을 매료시킨다. 덕분에 극의 전개와 전혀 관련 없는 러브라인을 집어넣어 몰입을 방해하던 영화나 드라마도 줄어드는 추세다. 또한 장르에 따라 불필요한 러브라인 대신 브로맨스를 이용해 전체적인 극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도 상당수다. 특히 올해 2월에 개봉한 영화 「신세계」는 브로맨스 소재를 이용해 극의 완성도를 높여 톡톡한 효과를 보았다. 범죄, 폭력세계 등 거친 내용을 다루는 느와르 장르의 특성을 브로맨스와 결합시켜 남녀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얻었다. 정청(황정민)은 폭력 조직에 위장 잠입한 경찰인 이자성(이정재)의 정체를 눈치 챘음에도 그를 보호하기 위해 끝내 이를 발설하지 않는다. 정청과 이자성의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진한 형제애는 영화의 장르적 특성과 맞물려 강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문화로 자리잡을 것인가,? 상술로 전락할 것인가?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남자끼리 손을 잡거나 서로 안아주는 등의 행위는 무척 낯 뜨거운 일이라고 치부됐다. 여자끼리는 서슴없이 팔짱을 끼거나 안아도 괜찮고 남자끼리는 안 된다는 시선이 사회적 통념이었다. 정석희 문화 평론가는 최근 브로맨스가 영화나 드라마 작품마다 단골소재로 등장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열린 문화 쪽으로 가면서 어떤 관계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브로맨스적인 느낌도 대중이 잘 받아들이는 것”이라 말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뀐 대중들의 의식이 브로맨스 또한 하나의 문화로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브로맨스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행을 타고 있다. 영국 BBC에서 2010년부터 시리즈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셜록」은 이미 국내에서도 유명한 브로맨스 드라마다. 열성적인 우리나라의 시청자들이 셜록 홈즈(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존 왓슨(마틴 프리먼)의 브로맨스적인 요소를 편집해 만든 오프닝 영상은 영국 현지 팬들에게도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브로맨스가 국경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브로맨스의 지나친 남발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브로맨스가 동성애에 열광하는 20대 초·중반의 여성들을 겨냥한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브로맨스는 굉장히 주관적이다. 연출자의 의도나 대중들의 해석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이러한 점을 노려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을 위해 작품에 브로맨스를 억지로 끼워맞추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브로맨스를 이용해 만들어진 지나치게 퀴어적이고 자극적인 패러디물이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맨스로 인해 영화나 드라마가 가지는 장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고, 대중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의 폭이 넓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넘치는 것이 오히려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 브로맨스를 퀴어적인 요소가 아닌, 우정을 넘어선 끈끈한 인간관계의 한 종류로 인식한다면 브로맨스는 상술이 빚어낸 한 때의 유행이 아닌 하나의 장르로 스며들 것이다.


유정현 수습기자
 yjh13@cnu.ac.kr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