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미도>의 배경 실미도에 가다

  지금이야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흔하지만, 예전에는 관객 수 천만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지금부터 딱 십년 전 ‘천만 관객 돌파’의 기폭제를 터뜨린 영화가 있었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베일에 싸여 있던 ‘684 부대’를 스크린에 담아 천만 관객의 마음을 훔쳤다.  영화의 기록적인 흥행 후 실재했던 ‘684 특수부대’는 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났고, 부대원들이 혹독한 훈련을 받았던 섬인 실미도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썰물 때만 열리는 실미 모세길
  섬 속의 섬이라고 불리는 실미도는 무의도 해수욕장과 이어져 있다. 실미도는 하루에 단 두 번 바다가 허락한 시간에만 들어갈 수 있다. 넘실거리던 바닷물이 빠지고 숨어 있던 실미 모세길이 드러나면 그제서야 실미도에 도착할 수 있다. 세상의 사각지대에서 아무도 모르게 비밀병기로 훈련된 684 부대처럼, 실미도는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실미도를 가려면 먼저 무의도 해수욕장으로 향해야 한다. 무의도의 모래사장으로 들어서니 짭조름한 냄새가 바다에 왔음을 알린다. 해수욕장은 부드러운 모래가 반, 파도에 쓸리고 깎인 조개껍데기가 반이다. 철썩거리는 파도는 발치를 맴돌며 약 올리지만 썰물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리서 수평선의 역할만 할 뿐이다. 물이 빠지고 나타난 실미 모세길을 따라 가면 684 부대원들의 땀과 한이 서려있는 실미도에 도착한다.
  1968년 사형수나 수감된 범죄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실미도로 끌려온다. 모래사장 어딘가에서 최재현 중위(안성기)는 그들에게 “우리의 목표는 평양에 침투하여 김일성의 목을 따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 밑바닥 인간 쓰레기’에서 ‘대한민국 684 특수부대원’이 된 그들은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는 실미도에서 실제보다도 잔혹한 훈련을 받게 된다. 영화 <실미도>의 촬영 세트장은 없어졌지만, 실미도를 걷다 보면 영화에서 보았던 배경들을 고스란히 만나게 된다. 실미도 앞의 갯벌은 가시가 달린 철조망 밑에서 기어가던 부대원들을 떠오르게 한다. 진흙칠을 한 채 갯벌을 온 몸으로 기어가던 부대원들을 발로 밟으며 재촉하던 조 중사(허준호)가 떠올라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부대원들이 뛰어 넘었던 산
  섬의 한가운데는 부대원들이 뛰어다녔던 작은 산이 있다. 생각보다 가파른 경사였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뛰어 올라가야만 할 것 같아 덩달아 카메라를 들고 뛰어 올라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올랐는지 길이 다져져 있었다. 이런 곳을 어떻게 뛰었나 싶은 산을 넘어 반대편 바다에 가면 또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파도의 세기와 높이가 앞바다보다 월등하고 단단한 바위에 부딪히는 물결의 소리는 웅장하게 섬을 채웠다. 이곳에 펼쳐진 모래사장 어딘가에서는 뜨거운 인두로 등을 지져 그들의 정신력을 실험했다. 유난히 거센 이 바다는 부대원들이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기합을 받던 곳이 틀림없다. 영화 <실미도> 속 잔혹한 훈련이 어울리는 장소였다.
부대원들이 훈련했던 바위
  섬의 가장자리에는 위협적인 바위들이 자리 잡고 있다. 동료 한명이 삐죽삐죽한 바위 위로 떨어져 그 자리에서 죽었을 때, 강인찬(설경구)은 동료를 잃은 비탄과 살리지 못한 안타까움, 그럼에도 훈련을 멈출 수 없는 야속함으로 인상을 구긴다. 최재현 중위는 “한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지체했다면 나머지 모두의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앞으로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오늘과 똑같은 결정을 하라”고 지시한다. 높게 쌓인 바위 어딘가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외줄 하나로 허공을 건넜을 것이다. 섬에는 특히 바위가 많았는데, 실미도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는 이 험한 바위들이 완성시키는 것 같았다.
  그동안의 훈련으로 684 부대는 최정예 부대로 거듭났다. 오로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3년이 넘는 세월을 숨죽여 지낸 684부대는 해체를 명령받는다. 자신들이 비참하게 사라져야 하는 것을 알고 반항을 하지만 결국엔 무장폭도로 불리며 진압되고 결국엔 자살하고 만다. ‘날 쏘고 가라’던 최재현 중위와 ‘비겁한 변명’이라며 총탄을 휘갈기던 강인찬은 역사의 귀퉁이로 들어갈 뿐이다. 어느 부서 과장님 결재서류에 도장이 찍히는 순간 이들의 흔적은 사라진다.
  실미도로 가는 유일한 길인 실미 모세길은 바닷물이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춘다. 물이 꽉 차면 썰물이 되기 전까지 실미도는 다시 바다위에 떠서 관망하고 있다. 오로지 목표만을 갖고 군의 명령만을 기다리다가 스스로를 불태워버린 684부대와, 때가되면 유일한 통로를 숨겨 소통을 끊는 실미도는 우연히도 닮아있었다. 물이 들어와 실미도에 갇히기 전에 서둘러 빠져나오면서 684부대가 실미도에서 훈련한 것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글/사진 안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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