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하는 거야

   집에 앉아 아버지와 TV뉴스를 보고 있었다. 뉴스는 지자제에 관한 이야기로 이 지방은 어떻고, 저 지방은 어떻고 계속 떠들어 대고 있다.
  『여보! 이번에 누구를 찍지요?』
  『글쎄? 요즈음 모두 도둑놈뿐이라ㆍㆍㆍ. 수서지구도 여당놈, 야당놈 같이 해먹었잖아.』
  옆에서 이 말을 듣고있던 매형이 아버지에게 말한다.
  『그래도 좋은 사람 골라서 찍어야지요. 함부로 찍어서야 되겠습니까?』
  이에 아버지는 말한다.
  대통령선거를 봐라. 그렇게 노태우 죽일놈 살릴놈 했어도 당선되지 않더냐, 총선해서 기껏 여소야대 해놨더니 나중에 자기 이익에 따라 합당하지 않더냐. 선거고 뭐고 다 필요없는 짓이다. 신경쓸것 없고 도둑놈들 조금만 훔쳐가기 바라고 살아라.
  이에 매형은 대답한다.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것이 절대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것이 아니다. 그 정도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된것이다. 또 국민에 신의를 저버리고 자기이익을 찾아간 놈들이 나쁘지 선거한 우리의 잘못은 아니다.
  이렇게 결론 지을 수 있는 이야기로 항상 두분은 싸운다. 아버지는 옛경험을 덧붙여서, 매형은 요즘은 새로운 주장을 덧붙여 이야기 한다. 두분의 이야기는 길어지고 계속 돌고 돈다. 이것을 예전에 알아버린 나는, 나까지 끼어들게 될까봐 얼른 방을 나왔다.
  사실 밖에서 이야기 하다보면 아버지의 정치환멸감과 무관심을 수긍하게 된다. 선배들이 87년 민주화를 외치며 일어나 민주화를 조금이나마 이룩했다지만, 별로 달라진건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구멍가게에 앉아 소주를 나누는 동네 아저씨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것들이 대가리만 커져서 대드는 것만 바뀌었지 똑같다고 한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 정치이야기를 하면 골치아프고 술맛 떨어진다고 면박당한다.
  세상은 나만의 힘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을때 얼마전 청소부(이제 환경미화원 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말이 왠지 더 친근감이 있어 좋다)아저씨와의 재회는 특별한 것이었다.
  고등학교때 야간 타율(?)학습을 마치고 새벽 한시에 터덜터덜 귀가 할때쯤 그아저씨는 우리집앞 골목안에 항상 있었다. 우리집 바로 앞에 있는가 하면, 골목끝에도 있었고, 골목의 첫머리에도 있었다. 나는 그 아저씨를 위해 쓰레기를 앞뒤의 몇집은 항상 모아놓았다. 아저씨는 『고마와요. 학생』하며 쓰레기를 담아갔다. 그리고 우리집 쓰레기는 특별히 깨끗이 치워 주었다.
  그후 대학에 가고 저녁늦게 귀가 하는일이 없어지고 쓰레기 만지는것도 싫어서 모아놓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아저씨와 나의 교류는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얼마전 아저씨들 10시쯤 만나게 되었다. 우리집 골목앞을 지나가는데 가로등 아래서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반가와서 인사를 했더니 아저씨는 깜짝놀라며 조금후에 알아보고 이사간 줄 알았다고 말한다.
  어떻게 지금 일하냐고 하니, 요즈음 일의 양이 늘어나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간후 늦게 다니지 않아 그간 못뵌것 같다고 했더니, 학교 생활은 재미있느냐고 한다. 그저 그렇다고 말했다.
  『아저씨! 세상은 변하지 않는것 같다는 대요. 예나 지금이나 똑같대요. 아저씨도 그렇지 항상 다음날 똑같이 쌓여있는 쓰레기를 보면 그런 생각안드세요』『무슨 소리여! 내가 일 안혀봐! 이 쓰레기가 없어지나. 내가 일을 해놓으니까 항상 이만한겨』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되었다. 세상이 최소 자금을 유지하고, 변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이 변한것 같지 않을때 자신의 힘으로 세상이 유지되는 것을 느끼는 아저씨와 같은 분의 절망없는 노동에 기반을 두는 것 같다. 예전에 아저씨가 해준 말이 생각이 난다. 도로를 청소할때 앞길에 길게 쌓인 낙엽이 나를 그만 두고 싶게 하였고, 밑만보고 계속 쓸다 문득 돌아본 뒷길이 나를 계속 일하게 했다고 한말이다.
  앞길에 아무리 더러운 오물들이 쌓여있어도 그것을 치우면서 품는 회의감을 우리는 항상 떨쳐버릴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 회의감에 파묻혀 그냥 주저 앉기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랴! 담배 한대를 피워물고 조금 쉬고 다시 시작하자 그리고 정성껏 쓸어 간다면 오물은 천천히 치워진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서 내가 이룩한 성과물을 한번 뒤돌아 보면서 다시 앞으로 나가는 활력을 얻어보자.
  지자제법안을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열심히 다툰다. 공천을 따내려고 이 당사, 저 당시 바비 움직인다고 한다.
  마치 나와는 관계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린 지자제를 맞이하였다.
  여러종류의 제도로 전국의 오물을 쓸게되었다. 정성껏 깨끗이 쓸도록하자. 그 빗자루가 원래 작아서 잘 쓸어낼 수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빗자루가 쓰는 사람의 무능으로 물을 깨끗이 치우지 못한다면 정말 안될말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역사발전의 주체가 되도록 노력하는 나는 주체다』라고 무기력이 사라진다. 아저씨도 이제는 담배를 끄고 일어선다. 『이제 선거가 오면 선전 인쇄무로 고생하겄어』
  『아저씨! 누구를 찍으실래요』
  『잘난 녀석보다 착한놈 찍을겨』
  『누가 착한줄 알고요』
  『그거 알면 내가 청소부혀? 관상쟁이 허지』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 앞으로는 쓰레기 모아 드릴게요』
  『일읍서! 대학생이랑께 공부나 열심히 혀고 데모나 허지말어. 난 내 쓰레기 열심히 치울 테니께』
  손수레를 끌며가시는 아저씨에게 할말이 있었지만 그만 두었다. 이제는 아저씨 일로도 바쁠테니까.
  하지만 아저씨! 아저씨는 자랑스러운 분입니다.
 
  송재욱(무역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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