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FACT+소리헤다

 
  “재즈에 명곡은 없다. 명연주가 있을 뿐이다”라는 오래된 인용구는, 즉흥적인 악기의 흐름과 스윙이 생명인 재즈를 대변한다. 백년의 역사를 가진 고독한 색소폰의 울림과 재즈 피아노의 선율이 부지런히 시대를 흘러 힙합과 조우하게 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젊은 층에게 비교적 낯선 장르였던 재즈는, 대중성의 배가에 대한 보답으로 힙합에게 편안한 세련미를 선물했다. 재즈랩, 즉 재즈힙합은 미국과 일본을 거쳐 이윽고 국내에 자리잡았고, 어느덧 ‘한 번쯤은 들어본 멜로디’로서 한국의 대중들과 성공적인 통성명을 마쳤다.
  한국에서 재즈힙합을 논할 때 가장 먼저 화두에 오르는 아티스트는 재지팩트(Jazzyfact)다. 이미 언더에서 정상에 자리매김한 실력파 랩퍼 빈지노(Beenzino)와 프로듀서 시미 트와이스(Shimmy Twice)의 재즈힙합 프로젝트는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윽고 그들은 2010년 최고의 신인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몽환적인 흑백의 느낌이 주된 대다수의 재즈힙합과 달리 감성적이고 컬러풀하며, 발랄한 재즈힙합을 표방한 그들의 세계는 말랑말랑한 감성 힙합 코드와 맞아떨어지며 기존 힙합 리스너들 외에도 넓은 팬층을 형성했다. 샘플링이 장기인 시미 트와이스는 곡의 적재적소에 재즈의 풍미를 얹었고, 빈지노의 ‘꾸러기’ 랩핑은 재즈의 그루브와 함께 양쪽에서 음계를 밀고 당기며, 비우고 채우는 멋들어진 플로우(Flow)를 꾸린다. 
 
  재지팩트의 1집 「Lifes Like」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Close To You>는 재지팩트의 재즈힙합 스타일을 가장 완벽하고 알차게 담아낸 곡이다. 곡 초반부와 후렴구에 깔리는 재지한 여성 보컬, 재즈피아노 선율과 함께 멜로디를 이루는 리드미컬한 당김음은 재지팩트가 이루어 낸 재즈와 힙합의 훌륭한 결합에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도덕, 사랑에 그런 게 어딨어? 환승하는 게 피곤하긴 하다만, 목적지로 곧장 못 가는 걸 어떡하겠어. 내게 버.카(버스카드)를 대 봐’라는 장난기 넘치는 빈지노의 ‘찌르기’는 재즈 선율과 만나 한층 로맨틱해진다.
  허심탄회하고 일상적인, 하지만 결코 텅 비거나 허무하지 않은 빈지노의 작사 능력은 그의 솔로 앨범에서 역시 그렇듯 재지팩트 앨범에서도 빛을 발했다. ‘문제를 찾기보단 답을 찾는게 숙제, 특별한 건 없어 그 청춘의 벼랑끝엔 걱정 마, 세상이 만만친 않지만 결코 뺏지 않아’ (Take A Little Time), ‘그게 지금의 우리 가족이야, 주말보다는 화목이야, 이 도시를 봐 죄다 산적이야, 난 퇴근한 어머니의 산토끼야’ (Vibra). 젊음이라면 겪는 일상의 고민과 자기 위로, 그리고 여자친구와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에 대한 청년의 세레나데는 재즈를 만나 마냥 감상적인 틀에서 빠져나와 한번 더 스타일리시해진다. 한편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Smoking Dreams>는, 총천연색의 실험을 잠시 뒤로하고 비교적 몽환적이고 음울한 재즈 사운드를 샘플링했다. 이 곡은 시미 트와이스가 일본 재즈힙합의 거장 Nujabes의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한 뒤 그를 추모하며 만든 곡이다. 
 
  또다른 국내 재즈힙합 유망주, ‘소리의 장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프로듀서 소리헤다는 놀라운 재즈의 감성 속에 아티스트들의 랩핑을 끼워 맞춘다. 별을 하나 둘 헤듯, ‘소리를 헤아린다’는 뜻의 이름처럼 한 음, 두 음 섬세한 꾸밈으로 가득찬 그의 첫 앨범은 작년 초 발매와 함께 언더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재지팩트의 비교적 통통 튀는 재즈 선율에 한 움큼의 차분한 곡조를 가미하면, 소리헤다의 정통 재즈에 가까운 세련된 인트로가 완성된다. 작업에 참여한 라임어택과 매트 클라운 등 손꼽히는 힙합 뮤지션들의 목소리를 재즈 선율과 함께 만나는 색다른 즐거움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소리헤다의 1집 앨범 중간중간에는 2분 남짓의 재즈 연주곡들이 끼어 있다. <At the Cafe>, <봄, 봄, 봄>, <문득> 은 모두 재즈 카페에서 연주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는 지난 주 곧 발매될 2집 앨범의 트랙리스트를 공개했다. 새로운 앨범은 1집 앨범에서의 ‘시간의 흐름’을 지나 ‘생각과 상상, 감정의 들쭉날쭉함’에 시선을 뒀다는 그의 예고는 재즈힙합 팬들을 다시금 설레게 하고 있다.
  때로 정통 재즈를 아끼는 대중들은 대중음악과의 결합 속에서 재즈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그들은 단지 색소폰의 등장만으로 ‘퓨전 재즈’라고 불리는 음악들을 비판하고, 이런 풍조가 정통 재즈의 영역까지 침범할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나, 1과 1의 결합으로 2 이상의 것이 탄생하는 시너지의 과정에서 1의 무게와 진정성에 대한 논의는 별로 중요치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적 흐름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대중음악에서의 파격적인 시도는 단순히 ‘틀을 없애는 작업’ 을 넘어서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만드는’ 성공적인 조화가 있을 때 빛을 발한다. 아티스트들의 재기발랄한 시도가 낳은 새로운 흐름, 재즈힙합. 그 어느 곳에서도 과거와 현재의 만남은 이보다 이상적일 수는 없다.
 

송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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