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정말 공정한가요?

 
  ‘제3세계 생산자와 공정한 거래를 약속합니다.’ 공정무역으로 거래된 상품에는 늘 앞선 문구가 적힌 로고가 붙는다. 소비자들은 공정무역 로고가 붙은 상품을 보면서 그때부터 고민에 휩싸일 것이다. ‘가격이 조금 비싸도 이걸 살까?’ 고민을 끝내고 공정무역 상품을 집은 이들은 자신이 가난한 제3세계 생산자를 돕는 ‘착한 소비’를 했다는 사실에 뿌듯해한다. 하지만 공정무역이 정말로 제3세계 생산자들을 돕고 있는 걸까. 

  제3세계 생산자들을 돕기 위해 시작된 공정무역
  1990년대부터 시작된 공정무역은 기존의 자유무역 질서로는 세계의 구조적인 가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공정무역의 목적은 소비자가 제3세계 생산자들이 만들어낸 친환경적인 상품을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직거래함으로써 그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여 경제적 자립을 돕자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공정무역은 유럽을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다운 가게, YMCA 등의 단체에서 공정무역을 도입했다. 제3세계 생산자들의 경제적 자립, 노동환경의 개선 등 긍정적인 측면만이 알려져 있던 공정무역에 최근 여러 비판과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무역은 정말로 제3세계 생산자들을 돕는 수단이 되는가?
  지난 5월 28일 영국의 <가디언>은 영국의 대표적인 기업형 슈퍼마켓인 막스앤스펜서, 세인즈버리 등이 도미니카 공화국의 바나나 농가 60%를 공정무역 업체로 지정해 거래하고 있는 실태를 분석하면서 “공정무역이 제3세계 생산자들의 상황을 크게 나아지게 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들 업체가 수입하는 도미니카 산 바나나는 영국이 수입하는 전체 바나나 비율의 50%에 육박하지만 이들이 지급하는 공정무역의 거래가격은 판매금의 10% 정도로 터무니없이 낮다. 바나나 농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루 11시간씩 힘겨운 육체노동에 시달리지만 하루에 우리나라 돈으로 겨우 7300원 정도의 일당을 받는 셈이다. 이 돈으로는 하루 세 끼의 식사를 하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천규석 대구한살림 이사는 “지금 공정무역을 하는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방문해 보면 공정무역이 준 도움은 고작 우물 몇 개와 일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 전부인데, 이는 그들의 뿌리 깊은 빈곤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공정무역 제품을 이용하기 위해 일반제품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지만, 정작 생산자들은 그 수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파이낸셜 타임스>의 수석 칼럼니스트인 팀 하포드는 “소비자들이 공정무역 마크가 찍힌 제품을 더 비싼 가격에 구입하면서 자신들이 지불한 돈이 가난한 국가의 생산자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90% 이상 중간에서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천규석 이사는 이를 ‘착취의 다른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공정무역,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
  착취의 다른 모습이 성행하는 이유는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공정무역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인 S기업의 경우 공정무역에 앞장서는 것으로 선전되어 왔지만 S기업이 취급하는 원두 중 겨우 5%만이 공정무역으로 거래된다. 그러나 이 5%의 원두 구입은 단숨에 S기업의 이미지를, 빈곤국 노동자를 착취하여 이득을 얻는 나쁜 기업에서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기업으로 바꿔놓았다. 공정무역이라는 흐름에 살짝 발을 들이밀기만 해도 ‘윤리적인 기업’이라는 긍정적인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봉현 한겨레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소비자들이 호응을 보내기 시작하자 많은 대기업들이 공정무역을 표방하여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사실은 제대로 된 공정무역을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은 이런 상황을 모른 채, 값이 다소 비싸더라도 공정무역에 동참하고자 한다. <매일경제>가 실시한 공정무역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소비자들의 75.3%가 ‘비록 공정무역 제품이 동일한 다른 제품보다 10% 더 비싸더라도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이 제3세계 생산자들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제품 값을 올려도 소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무역 제품의 값이 비싼 이유는 기업이 소비자들을 기만하기 때문이다. 공정무역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를 원칙으로 하여 중간상인에게 들어가는 마진을 줄이고 이를 이용해 제3세계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따라서 제3세계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다고 해서 기업이 제품의 가격을 올릴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기업들은 제3세계 생산자들을 돕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착한 소비심리를 이용하여 제품의 가격을 올리고 있다. 공정무역의 대표 물품인 커피를 예로 들면, S기업을 포함한 다국적 대기업은 그동안 빈곤국의 커피 농장에서 원두 1킬로그램을 300원에 사서 25만원에 팔았다. 물류비용과 로스팅, 인건비, 매장 설치 등의 비용이 들어갔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은 그동안 커피를 마시는 데 자그마치 원가의 830배가 넘는 돈을 지불했던 것이다.
  또한 기업들이 정말로 공정무역을 통해 거래된 원료로 제품을 생산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 L기업의 모 커피는 출시 당시 ‘공정무역을 통한 최고급 원두 100%’라고 광고했다. 당시의 보도자료에는 ‘캔커피로서는 국내 최초로 세계공정무역인증기구 인증 공정무역 원두 100%를 사용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정작 이 제품에는 국제공정무역인증기관에서 공정무역제품에 붙여주는 FLO 로고가 없었다. 로고인증이 없다면 기업이 정말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사에서는 “인증을 받기 번거로워 로고인증을 받지 않았지만 공정무역 원두를 사용한 것은 맞다”고 해명할 뿐이었다.

  이처럼 공정무역이 악용되는 현실에 대해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공정무역으로 본래의 취지를 되살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봉현 연구위원은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공정무역의 취지는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름다운 가게, YMCA 등 몇몇 단체가 제대로 된 원칙을 지켜 공정무역을 하고 있다. 공정무역에 대한 비판은 일면의 진실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공정무역을 그만둘 이유는 되지 않는다. 공정무역의 문제점들은 계속해서 개선시켜 나간다는 전제조건 하에 공정무역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소비자들이, 기업이 공정무역제품이라고 광고한 물건을 더 비싼 값에 산다고 해서 제3세계 생산자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정무역이 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 전락하지 않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할 때 FLO 마크를 확인하고 지속적으로 기업을 감시하는 등 소비자들의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  
 

송송이 기자
song00130@cnu.ac.kr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