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이이언&푸른새벽/한희정

 
  1935년 헝가리의 무명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는 ‘자살 성가’로 세상에 알려졌다. 발매 8주 만에 187명의 목숨을 끊은 이 기묘한 곡에 대해 당시 평론가들은 “곡에서는 슬픔 이상의 것이 느껴지며, 듣는 사람을 깊은 절망 속에 가두고 일말의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만든다”고 입을 모았다.
  글루미 선데이는 가라앉은 분위기의 음악들이 단지 슬픈 상황의 모사이자 간접 체험의 통로가 아니라, 듣는 이를 노래가 울려 퍼지는 무의식 저변의 기괴한 심연으로 끌어내릴 수 있음을 증명했다. 글루미 선데이의 파괴력에는 비할 수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푸른 새벽(한희정)과 못(이이언)의 비관은 듣는 이에게 어둡고 이끼가 낀 계단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하게 한다.
  자괴와 자살, 죽음을 비롯한 파멸, 소멸과 망각은 그들의 음악을 나타내는 키워드다. ‘내 몸은 하릴없이 하루하루를 견뎌내 goodbye, 날 없게 해(푸른 새벽-푸른 자살)’, ‘밤새 마당엔 새가 많이 죽었어, 난 종이돈 몇장을 쥐고 전화를 걸어 천국을 주문했어, 나는 재를 주워 담아 술과 얼음과 마셔버렸어, 오-미안,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지(못-Close)’는 비교적 정직한 죽음의 예고다.
 
  또한 지상과 작별한 영혼은 ‘어젠 존 레논을 봤어 오늘은 보트를 탔어 여긴 무서운 것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어 한숨도 눈물도 이별도 미움도 괴로움도 여긴 없지만, 난 그래도 다시 네게로 돌아갈래(못-Heaven Song)’라고 읊조린다. ‘너무 힘들어, 이러다가 죽을 지도 몰라’라고 울며 호소하는 수많은 노랫말들보다 이들이 더 무서운 건 이런 ‘엄청난 소리’를 너무도 담담하게 풀어낸다는 사실 때문이다. 귓가에서 거세게 휘몰아치는 타인의 감정들은 대부분 잠시 머문 뒤 쉽게 떠내려가지만, 이들은 그 반대다. 이로써 듣는 이를 가장 깊숙하고 축축한 곳으로 끌어당기는 알 수 없는 힘은 글루미 선데이와 두 아티스트의 교집합이 된다.
  한편, 가장 최근 발매된 이이언 솔로 앨범 대부분 곡들의 일렉트로닉 드럼 사운드는 프로그래밍으로 탄생했다. 수록곡 ‘세상이 끝나려고 해’에서는 디지털 장비나 통신 오류에서 발생하는 오작동 노이즈를 인공적으로 발생시켰다. 현실, 즉 아날로그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소리를 만들어 내는 디지털 작업들은 이이언만의 몽환, 무의식, 세상의 끝에서 부르는 노래들에 괴기한 힘을 싣는다. 이 앨범에 실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동명의 소설 작가인 김영하의 나레이션에 이이언이 소리를 입힌 곡이다. 그의 이런 실험들은 곡에 존재감과 생명력을 불어넣음은 물론, 목소리를 떠받치는 알 수 없는 울림으로 곡의 몽환적인 매력을 배가시킨다.
 
  푸른 새벽의 ‘사랑’은 필자가 알고 있는 노래 중 가장 섬세하게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곡이다. 이 곡의 화자는 사랑이란 이질적인 인물과 낯설고 비이성적인 감정이 나를 지배해 내가 오롯이 나일 권리를 빼앗기는 침입이자 침탈의 과정이며, 불안정한 심리는 나를 둘러싼 공간마저 왜곡한다고 보고 이를 실제로 겪는다. ‘한 그리움이 여길 지납니다, 이곳은 갑자기 수축하고 그 길 따라 휘어진걸요, 주위는 파랗게 웅크러드네요, 난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러서 내 안에 새기죠’라는 노랫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과 설렘의 표현과는 확연히 거리가 있다. 푸른 새벽이 이처럼 낯선 감정을 계기로 환상적인 체험에 다가선다면, ‘또 손목을 짚어도 내 심장은 무심히 카페인을 흘리우고 있었지, 늘 깨어 있고만 싶어 모든 중력을 거슬러 날 더 괴롭히고 싶어 더 많은 허전함을 내게(카페인)’, ‘날 움직이던 sugar and caffeine and some liquid cloud, 난 너의 어릿광대가 될 거야(SCLC)’에서 보여지듯이 이이언을 껍질째로 깨어 있게 하면서도 무의식 속을 거닐게 하는 매개는 카페인임을 눈치챌 수 있다.
  절망의 끝, 위태로운 곳에서 깊은 자기 연민에 빠진 그들의 독백은 역설적이게도 때때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암울한 상황에 처한 타인을 바라볼 때 우러나오는 동정과 인간 본연의 측은함의 감정, 그 이면에는 타인의 슬픔을 발판삼아 본인의 현실을 위안하려는 욕구가 깔려 있다고 한다. 비극이 끌어올리는 성찰과 고뇌로 가득한 그들의 음악은, 듣는 이들을 한 번쯤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뒤척이는 새벽으로 이끈다.
 

송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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