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택 회고전 [Earth, Wind and Fire]

 
  예술은 종종 뒤집혀야 한다. 거꾸로 들려 탈탈 털리고, 주객이 전도되고, 옷 입는 것을 잊고 캔버스를 뛰쳐나와 살색이 난무하는 유해물이 되거나 베일에 꽁꽁 싸매인 객체가 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예술인생 60여년 째 세상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단아가 있다. 한평생 일관되게 안티(Anti)정신으로 작품활동을 한 정과 망치를 든 모험가, 이승택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나는 모든 것을 거꾸로 보고, 거꾸로 듣고, 거꾸로 생각했다”는 그의 삶은 안티로 점철돼 있다.

  한국사의 아픔을 짊어지고
  한국전쟁과 냉전시대를 모두 겪은 이승택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의 산 증인이다. 한국사의 흐름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해 온 이승택 작가는 현대 미술에 대한 해석과 비판을 그의 작품에 녹여냈다. 함경남도 고원이 고향인 그에게 6·25전쟁은 고향을 뒤로하고 월남하게 했다. <6·25동족상쟁(1990)>에는 불 붙은 포탄이 날아오는 반대 방향에 양쪽 눈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박힌 해골, 피난가기 위해 꾸린 짐을 연상케 하는 밧줄로 꽁꽁 묶인 사람의 다리와 작가의 머리, 실제 피난 행렬 사진 등이 마구 엉켜져 있다. 5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에게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은 세상에 대한 회의와 의심에서 비롯된 파격적 행위들의 시발점이 됐다.
  한국전쟁 이후의 설치작품 <역사와 시간(1957)>은 석고 조형물을 가시철망으로 감은 것으로, 청색과 적색으로 동서진영을 각각 나눠 칠했다. 이는 당시 이념 대립이 첨예했던 냉전시대, 동과 서의 대립을 표현한 작품이다. 강대국들의 폭압적인 논리가 약소국들의 운명을 유린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했다. 이는 대학 졸업전에서 최초로 선보여진 설치작품이었으며, 혼란스러운 시대적 배경은 작가가 젊은 시절부터 아방가르디스트로서의 역량을 갖추도록 도왔다.
  또한 냉전시대, 우리의 주체적 정신을 잃어가며 서구적인 문명에 취한 현대미술계를 비판하고 거부한 그는 마침내 ‘(우리가 아닌) 제3국의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외치게 된다. 설치 미술품인 <결국, 예술은 쓰레기가 되었다(1997)>에서는 넓은 벽면에 ‘ART OF THE THIRD IS NOT ART, AT LAST ART HAS BEEN GARBAGE’라는 문구가 쓰여있고 그 위를 쥐떼가 밟고 지나가고 있다. 아닌 것은 고상하게 지적할 필요 없이 ‘그건 쓰레기다’라고 은유하면 될 일이다. 지극히 작가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는 전시회 곳곳의 이런 표현들은 관객에게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강대국의 문명만을 좇고 주체적인 고민의식 없이 사는 예술가들을 비판하는 이 작품의 의미가 예술가들에게만 적용되지는 않는다. 이는 성찰과 사색이 부족한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던지는 작가의 통렬한 경고일 것이다.

  파격과 직설의 저력
  작가의 아방가르디즘은 ‘그림을 거꾸로 돌려 보자’의 수위가 아니다. 그렇기에 전시장 곳곳에 독을 잔뜩 품고 도사리고 있는 작가가 ‘작정하고 꼰’ 작품들이 주는 충격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의 그것과 진배없다.
  전시품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인 <소불알(1957)>은 ‘오뉴월에 쇠불알 떨어지기만 기다린다’는 속담을 반영한 것이다. 나무를 소의 음낭모양으로 조각해 액자에 매달아 놓은 이 작품은 치열한 노력 없이 대세만 따라가려는 당시의 예술가들을 신랄하게 조롱했다. ‘이거나 드시게’라는 은유로는 비뚤어진 세상을 미처 다 욕할 수 없어, 그는 모두를 뜨끔하게 하는 직설 화법을 꺼내든다. <무제>는 ‘기업은 기업인이 망치고, 정치는 정치인이 망치고, 언론은 언론인이 망치고, 대학은 대학인이 망치고’, ‘1980 사회가 몽땅 조폭시대, 2000 결국 쓰레기 조폭들의 세상 되다’ 등의 메시지를 이불에 직접 적은 작품이다. 고발과 비판의 눈을 형형히 뜨고 예술가 특유의 레이더망을 켠 채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그의 신랄한 성토들은 마냥 ‘비뚤어진 자’의 왜곡된 사고구조에서 나온 오류 같지는 않다. 메시지들을 읽으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고 은연중에 수긍하게 되는 것은 직설이 가진 건강한 힘이리라.
  ‘미성년자 관람불가’ 딱지가 붙어 흰 장막 뒤에 자리해 있는 <비보이퍼포먼스>를 비롯한 다섯 작품들은 태초의 것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의 예술관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그는 이런 노골적이고 낯부끄러운 것들을 정공법으로 제시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거드름 피우고 점잔 떠는 것들에 아낌없는 야유를 보낸다.
  작가는 재료의 전환뿐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반전 사고를 제시한다. <오브제> 중 높은 돈방석 위에 앉아있는 석가모니와 예수는 작가의 부패한 종교계에 대한 비판의식을 엿보게 해 준다. 문짝에 벌거벗은 여자의 몸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어긋난 흰 그림자(1983)>는 검은 그림자를 흰 석고가루로 표현해 상식을 뒤집었다. 제시된 현상이 비틀리고 뒤집히면 새로운 개념을 낳는다는 것을 작가는 전위예술가로서 향유할 수 있는 모든 매개체를 통해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Earth, Wind and Fire
  그의 전위정신은 마침내 물질을 넘어서 비물질의 것, 우주의 에너지에까지 손길을 뻗는다. 그는 예술 인생의 초중반 즈음부터 불과 바람, 대지를 주축으로 한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벌판에 걸린 빨간 천들이 바람이 허공에 그린 한 획이 되는 <바람-민속놀이(1971)>, 그리고 절벽에 직접 폭포를 그리고 페인트로 강가에 새 물줄기를 만드는 <Antiartist(1980년대)> 작업은 자연과 환경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투영한다. 자연의 왕성하고 신비로운 에너지인 불과 부자연스러운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돌에 대한 작가의 관찰의식 역시 전시회 곳곳 돋보인다.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과는 거꾸로 가야 하기에 60여 년을 묵묵히 걸어 그는 가장 태초의, 가장 다듬어지지 않은 존재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으리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깨부수고 안주했던 것들을 걷어차며 전혀 예술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존재들을 당당히 캔버스와 프레임 안에 들이는 한국의 아방가르디스트 이승택. 그는 ‘세상을 역행하면 저절로 예술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만의 깐깐한 방식으로 세상을 꼬집은 지 60여년. 이제 대중이 그의 예술관에 매혹될 차례이다.

  송민진 기자 blossomydayz@cnu.ac.kr
  안수진 수습기자  luckysujin@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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