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별&야광토끼

 

 

  포털에서 검색하면 ‘진짜웃긴영화’라는 정직한 연관검색어가 뜨는 영화 <화이트 칙스>에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종일 전화하고 싶어지고, 날 생각하는지 궁금해지잖아. 그를 위해 옷도 사 입고,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남자들은 몰라주지만, 남자들이 여자가 돼 보면 우리 심정을 잘 알 텐데”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영화 내내 금발 여장남자들의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에 폭소하던 여성 관객들은 이 부분에서 웃음을 거두고 조금은 숙연해졌을 것이다. 대사에서 말하듯, 사랑으로 인해 변하는 여자의 모습은 누구와 어떤 사랑에 빠졌건 간에 놀랍도록 비슷하다.
  한편 여성들은 오랜 시간 ‘내 얘기같은 사랑 노래’에 웃고, 울고, 위로받아 왔다. 상대적으로 발달했다는 공감능력 때문인지, 예나 지금이나 ‘사랑에 빠지면 난 이렇더라, 너도 그렇지 않니’라는 레퍼토리의 노래들에 하루종일 설렐 이유를 찾게 된 경험은 누구나 있을 테다.

 

  박새별과 야광토끼는 사랑을 각자의 깊이로 노래하는 여성 보컬들이다. 뚜렷이 다른 음악을 추구하는 두 보컬은 ‘기타와 함께 어린 목소리로 조근조근 노래하는’ 음악들이 오래도록 유행했던 인디 여성 보컬계에 등장만으로도 신선한 전환점이 됐다. 그녀들은 똑같이 설렘의 문턱에 서 있거나, 혼자 바라만 보는 중이거나, 이미 사랑에 푹 빠졌거나, 이별을 막 끝낸 시점에 서 있다. 하지만 각자의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내는 사랑에 대한 상반되는 자세는 두 보컬의 개성과 어우러져 빛을 발한다.
  박새별은 지극히 여자다운 목소리를 어쿠스틱 멜로디에 얹는 감성보컬이다.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오는 사랑에 저항하지도, 두근거림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그저 순수하게 설레고, 뜨겁게 앓으며 사랑의 깊은 심연 아래로 가라앉는다. 지극히 지고지순하고 감성적인 가사는 이십 대의 로맨스 소설 한 권을 읽는 듯하다. ‘지금껏 불안한 아이처럼 비틀비틀 나 걸어왔는데, 세상이 참 아름다워 보여(참 아름다워)’, ‘그대도 나처럼 하루하루가 감사한가요, 우리 함께 숨쉬는 오늘과 다가올 내일 그 모든 것이 그대와 함께 빛나는 것을 아나요(사랑인가요)’. 행복한 사랑 중일지라도 벅차오르는 감정에 왠지 눈물날 것 같은, 나를 찾아온 이 운명에 마냥 감사해하는 게 그녀의 사랑 방식이다.
  박새별이 마음을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둔다면, 야광토끼는 고민하고, 낮설어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퉁명스럽게 ‘너에게 쉽게 빠지고 싶지 않아, 그렇게 환하게 날 보면서 웃지마, 자꾸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되잖아(Falling)’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훨씬 더 ‘덜 고분고분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소녀다. 야광토끼의 음악은 화려한 신디사이저 연주와 일렉 사운드를 배경으로 사랑에 빠진, 혹은 사랑을 바라보는 여자의 시선을 훨씬 넓은 스펙트럼에서 표현하고 있다. ‘좀 더 비싸면 좋겠어요, 내가 뻔한 걸 정말 몰랐나요, 그래요 내마음은 너무도 쉽게 언제든 살 수도 버릴 수도 있어요(Plastic Heart)’, ‘니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집안인지도 관심이 없어, 그렇게 자랑스러우면 얼굴에 문신으로 새기지 그래, 왕자님, 혹시 석유 재벌이신가요?(왕자님)’. 강렬한 비트 위에 야광토끼 특유의 꿈꾸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로 실리는 파격적인 가사는 사랑의 면면을 날카롭게 헤집는 시도다.

 

  두 여자의 다른 사랑방식은 다름 아닌 짝사랑 중에 더욱 두드러진다. 박새별은 참 그답게도 ‘사실 말야 흘러가는 계절 너머로 울고 웃던 너와 나, 그 많은 시간 속에 나의 바램과 기대와 눈물이 함께 서려 있어, 그대는 아는지(그대는 아는지)’라며, ‘나는 짧은 통화 뒤에도 하루 종일 당신의 생각을 하지만 당신은 이런 나를 모르겠지’ 라는 독백으로 외사랑의 넋두리를 마무리한다. 반면, 야광토끼는 ‘니 손에는 반짝이는 반지가 있다는 걸 알아도 계속 니 생각이 나, 한번쯤 뒤돌아보지 않을까 기대를 해봐 니 귓가에 속삭이는 그녀가 있다는 걸 알아도, 만약에 내가 너를 그녀보다 먼저 알았더라면(Can’t Stop Thinking About You)’이라며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에 대한 ‘발칙한 개척 의식’을 곳곳에 내보인다.
  그들의 차이를 단지 적극성의 유무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세상의 셀 수 없는 사랑의 방식들을 어찌 용감하고, 덜 용감함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두 보컬의 사랑 노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종류의,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펼치고 있는 여자들에게 선사하는, 내일 아침에도 힘차게 일어나 화장을 하고 옷을 고르게 하는 파이팅의 메시지일 테다.
 

송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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