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부문 가작

  칼굿

  1. 오후의 상념들

  사과나무 가지가 흔들린다. 봄이 왔다. 사과나무 가지는 봄을 탄듯 가지마다 여드름같은 꽃눈을 덕지덕지 달고 있었다. 바람은 그녀의 속옷처럼 내게 부드러움을 느끼게 한다. 하늘은 미간을 주름에 지게할 정도로 맑고 고왔다. 고향이 생각났다. 그녀도 생각났다. 그러다가 다시 잊었던 기억들이 뇌리 속에서 지렁이같이 꿈틀거렸다. 사과나무 가지가 부드러운 바람에도 흔들리듯 내 마음도 바람에 어이없이 흔들려 버린 것이다. 왜 나는 그녀만 생각하면 우울할까.
  나는 고개를 저어버린다. 밖에서 생선장수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크게 들려왔다. 생선 있어요. 싱싱한 오징어, 생태, 고등어 있어요. 생선장수의 목소리에서 나는 비릿내를 느꼈다. 뱃사람의 땀 냄새도 말아졌다. 생선 사라는 그의 목소리가 다시 고향을 생각나게 만든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다음에 검은 커텐을 쳤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싶어졌다. 만일 친구가 이대 전화를 했다면 같이 술이나 마시자 했을 것이다. 동내 아낙네들이 생선장수와 흥정하는지 아낙내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생선장수의 말소리가 들렸다 하는 식으로 번갈아 내 귀에 전해졌다. 나는 고향 생각과 그녀 생각에 그들의 소리를 흘려 버렸다. 정원의 사과나무는 조금 있으면 꽃을 피울 것이다. 꽃ㅇ 지고 삭이 나고 열매가 달릴 것이다. 그때면 나 역시 사과 열매만큼의 혹을 가슴에 달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무가지에 달린 모든 열매들의 무게만큼 가슴이 무거워질 것이다. 부통거리는 차의 엔진 소리가 나고 골목은 다시 조용해졌다. 눈물나도록 골목이 진짜 침묵하였다. 햇빛도 숨죽이듯 정원에 쏟아진다. 바람이 한참 후 다시 분다. 누가 골목길을 뛰어가는 발소리가 정적을 깨며 크게 들렸다가 사라졌다. 사과나무의 물오른 갖가 회초리감처럼 탱탱하게 보였다. 국민학교 5학년대 그녀를 위해 물오른 나무가지로 종아리 맞던 기억이 났다.
  사내 흉내를 내다가 열흘간 절뚝거린 생각하면 그때부터 나는 그녀를 많이 생각한 모양이었다. 종아리가 괜히 간질거린다. 햇살이 너무 좋다. 그걸 물처럼 마시고 싶다. 온몸에 적시고 싶다. 국민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참새떼처럼 골목을 지나간다. 무슨 얘기를 길가에서 열심히 하는지 몰라도 골목이 꽉찬듯 하다. 가끔 미약한 병아리 울음소리가 나기도 한다. 몇명의 학생들이 지나갔는지 모르지만 어수선한 골목이 다시 잠잠해졌다. 나는 병아리를 생각해본다. 그녀도 노란 병아리를 좋아했다. 나는 두 마리의 병아리를 학교 앞 길거리에서 산뒤 한 마리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그 병아리도 하루만에 죽이고는 봄을 슬프게 보냈다.
  나는 병아리의 이름이 왜 병아리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병을 잘 앓는다고 닭의 새끼를 병아리라고 불렀는지를.
  문득 벨소리가 들렸다. 옆집 재수생이 독서실에서 점심먹으로 온 것이다. 그는 내 마음보다 짙은 색의 얼굴로 산다. 오후에 단과반학원에서 공부하고 밤 10시부터 다음날 점심때까지 독서실에 있다고 한다. 잠은 언제 자고, 밥은 제대로 먹는지 모른다. 나는 옆집 재수생을 가끔 본 적이 있다. 구부정한 상체는 무거운 책가방에 눌렸고 그의 뒷모습을 따르는 그림자는 빛바랜 청바지처럼 희미하였다. 희미한 그림자 인생 그건 모두 느끼는 생각이리라.
  그러나 햇빛에 오래 노출된 흑백 사진같은 희미한 과거가 머리에 차곡히 싸인 나는 남보다 특별한 인생이라 여겼다. 그래 특별나지, 특별나고 말구. 목이 갑자기 꽉 막혀왔다. 그녀가 다시 보고 싶다. 그녀의 부드러운 몸뚱이를 간절히 껴안고 싶다. 정말 내가 재수를 하던 시절. 모든 고통의 탈출구였던 그녀의 몸뚱이. 아, 미칠것만 같다. 나는 다시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히 났다. 내가 늘 입을 삐죽거리면 담배 한대 꽂아주던 그녀의 길다란 손가락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할머니, 왜 당신은 나를 이렇게 만드셨나요? 커텐을 움켜 잡았다.
  할머니 당신은 신명났겠지만 나는 이게뭐요. 커텐을 잡아 당겼다. 할머니 나는 어릴적에 그토록 당신을 좋아했었죠. 사과나무 가지가 사라졌다. 할머니 굿판을 벌일적에 주셨던 사탕 부스러기가 지금 목구멍을 막아요. 봄이 커텐 뒤로 물러갔다. 할머니 술 취한채 가르쳐 주셨던 장고가락이 내 귀를 멀게 했어요. 바람이 내 방에서 갑자기 죽어 버렸다. 할머니 굽신주는 법을 왜 알려주셨죠? 하늘의 파란 빛깔이 커텐의 엷은 노란색으로 변절했다. 할머니 나에게 장난감이라고 방울과 대신칼을 왜 주셨나요? 그녀의 얼굴이 살짝 흔들리는 커텐 자락에 잘라지고 만다. 할머니 내가 팔사위를 따라 후졌는 걸 왜 말리지 않으셨죠? 내 몸을 떠다니는 우울함이 그늘에 검게 가려졌다. 할머니요. 내게 칼과 삼지창은 뭐하러 만지게 하였나요. 생선장수의 목소리와 비릿내가 커튼 생선장수의 목소리와 비릿내가 커튼 밖에서 빙빙 돌다가 꺼져갔다. 창(唱)소리는 왜 다라 부르게 하셨죠? 할머니 담배가 커피가 줄이 커텐에 녹아 버린다. 미처 손 쓸 사이도 없이. 정말 할머니 오방신장기를 둘둘 말아서 점치는 기술을 왜 보여주셨죠? 아낙의 목소리가 커텐 자락에 튕겨 나갔다. 이건 이해 할 수 없어요. 할머니 저에게 신령님, 용왕님, 칠성님의 함자를 왜 알려 주었어요? 사과 열매만한 혹이 커텐에 매달리지 못해 어두운 방바닥으로 추락한다. 할머니 비나리는 왜 불러보게 하셨나요? 차의 엔진 소리가 커텐 걸이에 걸려 부르르 떨다가 사그러진다. 할머니 왜 어린 여자 아이의 치마를 입고 양손으로 저고리를 잡아들고 춤추며 아기같이 목소리를 내면서 나를 쏘아 보았는지요? 국민학생 꼬마들의 재잘거림이. 병아리의 삐악거림이 커텐 들썩이는 장단에 흩어져 버렸다. 할머니는 늘 산딸들에게 욕하며서 같은 춤만 되풀이하여 내 앞에서 연습시켰나요? 재수생의 빛바랜 그림자가 커텐 틈을 살짝 비집고 들어온 미약한 햇빛 한 가닥에 토막나고 말았다.
  
  2. 그녀를 향해 쓴 편지

  한참 문방구 안에서 서성거리며 편지지를 골라댔다. 그녀에게 어떤 편지지로 편지를 써야할지 괜한 고민이 심각하지 않으면서 심각하게 생기는 것이었다. 맨처음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을때는 일반 편지용지였다. 검정 밑줄이 그어진 하얀 백지에 연필로 서롭게 쓴 내용은 여중학교로 가는 그녀에게 늘 잊지말고 지내자는 약속이 전부이었다. 국민학교 6년간 배운 온갖 미사어구와 연애소설과 연애 시집속에 담겨진 내용들을 본다서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 아니 성숙한 모습을 보려주려고 무진장 애쓴 기억이 난다. 하여간 그녀는 가끔 예쁜 꽃편지지로 답장을 해주었다. 그래서 나도 차츰 그녀의 꽃편지지에 대응할 예쁜 편지지와 봉투를 골라야하는 일을 해내야 했다. 내 책상 밑에는 직사면체의 큰 종이 상자가 있는데 그것의 용도는 나에게 오는 편지들과 사진들을 전부 모아 두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종이 상자안에 차곡하게 채워지는 사연들과 추억들을 위해 더욱 편지를 써 보냈고 사진을 찍어댔었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편지쓰기를 단념한 것은 대학 2학년때였다.

  -새벽이 오는구나. 밤새 슬픈 팝송만 조용히 듣고있다.
  어둠이 지금 엷어지고 새벽 별이 서편으로 몰려있을 때 나는 너를 그리워하다가 또 이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잘 있었지?
  나는 너를 가만히 생각하며 이 밤을 보내고 있다.
  무척 마음이 아픈 시간이 형광등 불빛 아래서 녹아 없어졌지.

  네가 네가 나에게 이제부터 답장을 안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너의 답장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보낸 것을 너는 알고 있었니?
  빈 우편함을 더듬으며 단 한장의 너의 목소리를 찾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니?
  우리 국민학생적부터 지금까지 항시 헤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네가 나를 미워하는 것을 떠나 우리 할머니를 싫어하고 회피하고 두려워하기 조차한다는 것에 많은 절망감을 느낀다. 네가 나를 진정 사랑한다면 할머니가 어떤 분이시든지 상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부모없는 나를 지금껏 키워주신 할머니를 나는 가장 하고 있어. 극단적으로 말할까? 지난번 네가 요구한 질문에 대하여 미루었던 답변을 지금 해주겠다. 난 할머니가 어떤 분이시든 돌아가실 때까지 모셔야 한다. 설령 할머니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 한다고해도 그건 변치않는 사실이다. 더이상 괴로워서 이 글을 쓸 수 없구나.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그녀의 답장이 끊어지고부터 나는 편지지를 사지 않았다. 그대신 술을 마시고 담배피를 피는 일이 유일한 즐거움으로 돼버렸다. 어떤 날에는 재수생 시절 나를 위해 몸을 주던 그녀 생각에 미칠 것같아 미아리로 달려가곤 했었다. 같은 여자이면서도 그녀와 창녀는 달랐다. 나는 그 다름을 극복하려고 창녀를 보며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거나 아예 그녀의 이르을 소리쳐 부르며 몸을 거세게 놀리기도 했다. 젠장, 그러나 언제나 무거운 마음의 혹만 더 키워놓고 돌아서는 짓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그녀도 남자품에 안기면 내 얼굴을 떠올리고 내 이름을 소리칠까? 웬지 내가 비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는 평소에 남들이 아무리 천하게 보아도 굿판이 열리면 천하의 모든 사람을 호령하기도 하는데 나는 남들에게 천대받지 않았어도 늘 그늘에 숨어산다. 내 자신이 쳐놓은 커텐 자락뒤에서 창 밖의 사물을 막아버리거나 변질시켜 버리는 것이다. 오! 죄송합니다. 할머니 당신이 나는 위해 베푸셨던 만복기원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군요.
  당신은 쌀점을 쳐서 나에게 쌀 몇 알을 삼키게 하고 늘 재복, 여복, 출세운이 많다고 하셨죠. 나에게 지금 있는 재복은 할머니가 여기 서울 변두에 마련 준 전세방이 전부입니다. 여복은 그녀가 떠난 후 생각할수도 없습니다.
  출새운이요?그건 작년 6월 항쟁때 굿당에도 사복경찰 두세명이 들락거림으로 끝났다고 봅니다. 할머니 다시 한번 나를 위해 굿판을 벌려 주세요.
  천하의 모든 산 신령님, 애기 장수님 또 하여간 무수한 신령들을 죄다 불러다가 굿을 해주세요. 내가 가진 이 작은 방과 더러운   육신을 팔아서라도 굿을 하고 싶습니다. 오방 신장기에서 붉은색 기발을 봅아들어 휘두르고 칼점을 치면 칼들의 펄쩍펄쩍 뜅 가다가 운수대통의 점괘가 날 것입니다.
  너의 그런 모습이 너무 두려웠어.
  너는 할머니를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것이 아니야.
  할머니의 영향권에서 순응하려는 너의 자세는 가식이라고 보인다. 너는 할머니의 굿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굿판에 뛰어들었어. 그걸 지금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구나. 너의 고민과 갈등은 신령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행위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나는 그런 너를 이해하려고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 보니 나를 소유하고도 너는 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단순히 나를 통한 쾌락으로 그것을 해결한다기 보다는 회피한다고 생각한다. 너는 이제 할머니 품속으로 자꾸파고들면서 그대마다 수반되는 고통을 풀려고 나를 이용한다고 여겨진다. 이제 너는 그전에 생각했던 나를 찾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면서 너를 떠나려고 한다.
  그녀가 나에게 몸을 주었던 마지막 밤은 허무하게 지나갔었다. 내가 새벽까지 그녀의 몸을 탐하고 잠에 빠진 사이였다. 그녀는 밤새 시달려 몸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눈뜨기 전에 사라졌다. 책상 위에 그녀가 남긴 쪽지만 그녀의 사라짐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담배 포장지에 깨알같이 쓴 그녀의 사연이 마지막이었다. 그게 벌써 2년을 넘어서고 있다. 오늘 나는 오랫만에 문방구에서 편지지를 골라가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담배 포장지로 쓰이는 은박지에 비춰지는 내 모습처럼 지난날들이 어둡게 스쳐지나간다. 아니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희미하게 지나가버린다. 나는 편지지 고르기를 단념하고 일반 편지용지를 한 권 산 뒤에 집에 갔다. 책상에 앉아 편지지를 펼쳐드니 검정색  밑줄들이 하얀 백지위에 그어진 채 떨리는 내손에 잡힌 불펜촉을 일제히 바라보는 것 같았다.

  네가 좋아했던 꽃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한지를 오려서 만든 종이 꽃들만 내 머리에 가득 맴돈다. 네가 무슨 색의 옷을 즐겨 입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굿할 때만 입던 적색 청색 흰색 흑새등의 옷들이 네가 입었던 옷이 무슨 색인지 알 수 없게 한다. 그러나 할머니와 신딸들이 굿판을 벌이기 전에 하곤하던 목욕을 훔쳐보았던 내가 지금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여체는 너의 포근한 몸 뿐이구나. 그것이 나를 떠난 너의 이유라고 말할 수 있겠지. 그래 난 너의 지적대로 너를 사랑하기 보다는 고통을 잊어보려는 수단으로 너를 소유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에게 지금 말해주고 싶은 것은 미치도록 네가 보고 싶다는 것 뿐이다.

  갑자기 볼펜을 던져버렸다. 이걸 써서 어찌할 것인가? 그녀에게 보낼 수 있으까? 그녀는 이 편지를 받아 볼까? 할머니가 삼지창과 칼을 들고 빙빙 돌며 춤추는 모습이 쓰다만 편지지에 아른거린다.

  3. 이제 나는 칼굿을 하련다.

  계단에 바람이 불었다. 시루떡판에 꽂힌 종이 꽃이 심하게 흔들렸다. 할머니는 흰 고깔을 쓰고 흰 장삼에 입은채 붉은색 외가사를 비스듬히 가슴에 걸치고 나왔다. 제상 오른 편에는 돗자리를 깔고 앉은 잽이들이 장구, 꽹가리, 징, 바라 북을 친다. 할머니는 제상을 향해 정중히 절을 올렸다. 뒤에 서있는 무당 각시들도 따라 삼배를 올렸다. 절을 올린 할머니는 만신이 되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장단에 맞추어 서서히 팔을 들어 움직이는 할머니는 매일 신경통에 시달리는 할머니가 아니었다. 굿판을 여는 할머니의 춤은 장단을 탔다. 풍물 잽이들의 어개가 심하게 들썩거렸다. 손놀림도 빨라진다. 할머니의 몸이 상하로 심하게 움직였다. 드디어 몸이 당에서 떨어졌다. 뒤질하는 할머니의 몸은 신령님의 들림으로 점점 가벼워졌다. 할머니의 눈 빛이 갑자기 내 눈동자에 닿았다. 눈동자가 멀어버릴 것 같았다. 질끈 눈을 감았지만 화끈거리는 아픔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사며 뒹굴고 말았다. 할머니는 수십개의 방울을 요란하게 흔들어댔다.
  이 나라가 부하도록 소원성취 하도록 나라가 탈없도록 잡귀 잡신이 범접 못하도록 부디 거두어 주사이다.
  할머니의 입에서 흐르는 비나리가 장단 가락에 뒤섞여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픈 눈을 손으로 비벼서 달랜 뒤 겨우 눈을 떴다. 할머니가 갑자기 무섭게 보였다.
  -이해할 수 있겠니?
  -전혀 못하겠어.
  -왜?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
  -무엇이?
  -너는 바보처럼 끌려다닐 뿐이야.
  -내가?
  -그래 네 할머니의 신령이 어느새 너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몰라.
  -후후.
  -웃지마. 넌 그걸 나에게 이해시키려는데...
  -잠깐 말하지마. 더 중요한게 있어.
  -뭐.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가득 배인 내 입술이 말하고 있던 그녀의 얇고 작은 입술을 순식간에 덥쳤다. 그것만이 말이 설명할 수 없는 내 심정의 진실된 대답이었다. 왜 나는 이런 식의 대답 밖에 하지 못할까? 그녀가 이런 식의 의사 전달을 제대로 이해할까? 젠장. 나는 염병할 놈이다. 할머니의 삼지창에 찔려서 죽어 마당한 놈이다. 할머니는 굿을 하기 전에 언제나 금욕과 청결을 지켜 굿의 신성함을 지켜야 된다고 했는데 그전날 손자놈은 이렇게 여자 하나를 이해시키지 못해 몸뚱이를 함부로 놀렸으니. 할머니의 손에 돌린 장군 칼이 더욱 날카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뒷걸음질로 서너발 물러나고 말았다.
 
  할머니는 신딸에게 붉은색 무복을 입혔다. 무당이 된 신딸은 창을 하고 옆에 서있는 무당 각시들이 창을 따라 불렸다.
 
  천지건곤 일원동남 일월동남에
  하웨받아
  아~헤~헤~헤 일월동남에 하웨받아
  사바세계 남선부주 해동국은
  조선국에
  아~해~해~해 해동국은 조선
  국에
  황해도는 삼십삼관 경기도는
  삼십구나
  아~헤~헤~헤 경기도는 삼십
  구나

  무당은 왼손에 부채를 들고 오른손에 방울과 바라를 들고 제자리에서 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라를 내려놓고 부채를 오른손으로 바뀌잡은채 무당 각시가 갖다주는 지전 막대를 양손에 각각 들고 그것을 휘두르며 춤을 추었다. 자전들이 흩날릴 때마다 나는 머릿속의 상년들이 헝클어졌다가 풀리곤 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도 현실에 대한 증오도 내 자신의 운명도 지전 막대가 서로 교차될 때 한꺼번에 뭉쳐져 내 가슴에 난 흑덩이를 키우다가 다시 지전 막대가 떨어져 좌우에서 각기 지전 조각을 펄럭일 때 그녀는 내 마음에 현실에서 자라는 혹의 생장을 멈추게 하였다.
  -할머니 내 가슴에 맺힌 혹은 왜 풀리지 않죠?
  -풀릴게야
  -아무리 굿을 해도 안풀려요. 점을 쳐도 그런 얘기는 없어요.
  -네 혹은 네가 풀지, 할매가 풀어주는게 아니란다.
  -내가 어떻게?
  -넌 풀 수 있어. 스스로 그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단다.
  -할머니?
  -쉿 칠성님게서 날 보자고 하시는 구나.

  할머니 제발 이런 굿판을 그만 두세요. 나는 잽이들 옆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신딸이 하는 푸닥거리에 열중하여 지켜보는 할머니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고조를 띄면서 단순한 장단이 격렬하게 울려퍼져 내 목소리는 죽어버렸다. 무당은 어느새 작두날을 겹쳐서 양손에 들고 그것을 부딪쳐 소리를 내며 빙글돌면서 춤을 빠르게 추었다. 그런 뒤에 작두날을 제단 앞에 내려놓고 대신칼을 잡고 사방을 난도질할듯 휘저으며 춤을 추었다. 할머니 도전히 내 가슴에 맺힌 혹이 풀리지 않는 군요. 할머니 알아요? 나는 무당이 칼을 허리에 차고 빙빙 서너바퀴 돌아갈 때 굿판을 뛰쳐나가고 말았다. 정신없이 서울로 올라온 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자취방으로 와 줄래? 난 내가 가슴속에 키운 혹덩이를 오늘 도려내려고해. 무슨 말이야? 혹동이를 칼로 잘라내겠어 도와줘. 그건 의사가 할 일이야 그러지말고 병원으로 가자. 안돼 이것은 의사가 고칠 수 없어. 오직 너와 나만이 풀 수 있어. 그,그래 알았어. 그녀는 긴장한 목소리로 2년만에 처음 나와 통화한 뒤 예상시간보다 빨리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발가벗은 채 온몸에 적, 황, 흑, 백, 연두, 청의 색들을 칠한 모습으로 양손에 대신칼을 들고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의 놀란 눈과 굳어진 표정을 바라보던 나는 대신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명 타러 가잔다
  복 타러 가잔다
  칠성님 전으로 명타러 가잔다
  지화자 정기 좋아

  그녀가 순간 쓰러졌다. 나는 미친듯이 웃으며 대신칼을 창문에 향해 던져버렸다. 커튼이 칼에 맞아 푹들어가면서 유리창이 박살났다. 유리가 깨지는 소음에 밤이 어둠을 땅에 깔고 올 때 이미 나는 그녀를 나와 같이 알몸뚱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녀의 부드러운 젖가슴에 내 가슴을 사정없이 부벼대며 나는 굿을 했다. 혹 들어간다. 가슴에 맺힌 혹이 사그러진다. 지회자 정기 좋다. 그녀의 몸을 타고 거칠게 몸을 들썩거리며 나는 할머니처럼 작두날 위에서 서 한바탕 신명을 푸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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