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대문학상 소설부문 가작

  새 별이 왔다
  이은경(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2)

 

  1

  다들 숨을 죽인 채 누워 있었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천장에 붙인 야광별을 쳐다봤다. 침대 바로 위에 나 있는 작은 창문에서 차 소리와 함께 불빛이 방 안에 가득 들어왔다. 야광별이, 그 빛에, 빛을 잃었다.
머리 바로 옆에 놓인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내 눈은 천장을 보고 있으면서도 시야 끝에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휴대폰에 온 감각이 집중되었다. 가슴에 모은 두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가슴 위에 올려 진 손은 심장박동에 맞춰 위, 아래로 심하게 움직였다. 
  바닥에 누워있던 어머니는 일어나 조심스레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기도하듯 가슴 앞에 마주잡은 두 손에 힘이 탁 풀려 버렸다. 문틈 사이로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눈치를 보고 있던 동생은 결국 방문을 열고 어머니에게 뛰쳐나갔다. 나는 두 귀를 막았다. 벽 쪽으로 돌아누워 누렇게 변해버린 벽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끝내, 두 눈을 감아 버렸다.

  나는 의자에 앉아 떨리는 두 주먹을 꽉 쥔 채로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의사는 차트를 쓰다가 나의 떨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의사의 시선이 느껴지자 손에 이어 이젠 머리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보며 헛기침을 한 후, 안경을 다시 고쳐 썼다. 책상 위에 있는 나에 대한 수많은 과거자료와 방금 직접 펜글씨로 쓴 종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일어나 자연스레 책상 옆에 있는 큰 책장으로 걸어갔다. 그 속에서 많은 파일 중 내 이름이 적힌 두꺼운 검은색 파일을 찾아 꺼냈다. 책상 위에 널브러진 문서들을 파일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봐요. 약은 잘 챙겨 먹고 있죠? 꼭 먹어야 합니다.”
  그는 재차 강조했다. 책상 위에 녹음기를 이제야 발견한 듯 급히 정지 버튼을 눌렀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책상을 지나 나에게 다가왔다. 떠는 어깨를 붙잡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친 나는 더욱더 크게 떨고 있었다. 내 의식과는 상관없이. 나는 입술을 꼭 깨문 채로 마음속으로 울부짖듯 외쳤다. 저는요, 저는……. 그 눈빛이 싫어요! 마치 나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안다는 듯한 당신의 그 눈빛이.
  내가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된 것은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알 수 없는 분노가 극에 달할 때면 온몸에 경련 증상이 일어났다. 정신과 의사는 나에게 항우울증 처방 약 대신 흥분진정제를 처방해 주었다. 그 약을 먹으면 온몸에 힘이 스르르 풀리면서 멍해졌다. 뇌사상태에 빠진 식물인간처럼 아무 감각도 없이 무표정해진 채로 축 늘어져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이젠 약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이 오래된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약이 없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젠 약봉지에 약이 남아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면서 이 몽롱함을 즐기고 있을 때 즈음,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복도에 마주한 벽 너머로 구두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구두 소리가 그쳤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자동현관문이 열렸다 다시 닫혔다. 어머니였다. 긴장이 풀렸는지 스르륵 잠이 오기 시작했다. 약에 취해 의식이 한순간 정전처럼 캄캄해지는 시점이 온 것이었다.
  약은 시간을 포함한 나의 모든 것을 중지시켰다. 눈의 움직임부터 시작해서 팔, 다리까지 그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약은 또한 내 정신까지 잠식했다. 그대로 잠을 잘 수밖에 없게 만들어진 약이었다. 서랍 위에 놓인 시계를 보려 고개를 돌리니 머리가 울리며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어지러웠다. 눈의 움직임까지 둔해진 상태였다. 시계를 보는 것을 포기하고 뿌옇게 흐려진 천장을 바라봤다.  
  흰 천장엔 어머니가 아기인 나를 안고 웃는 모습이 그려졌다. 마치 물에 번진 그림처럼 흐릿했지만…….     분명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눈을 뜨자, 아까 봤던 모습이 선명해졌다. 다만, 다른 점은 어머니가 내가 아닌 아주 작은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는 것. 그거 하나였다. 어머니는 웃는 얼굴로 나를 깨우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강아지라니. 픽하고 웃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어디서 따뜻한 온기가 얼굴에 전해졌다. 강아지가 얼굴을 핥고 있었다.
  “네가 강아지 키우고 싶어 했잖아.”

  현관문을 열자 차가운 새벽바람이 나의 몸을 스쳤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후, 얼굴을 다 가릴 정도로 감싼 두꺼운 목도리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 버튼을 누르자 바로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찬 기운이 돌았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일층 버튼을 눌렀다. 자연스레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로 고개를 돌렸다. 그 속에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가방을 품에 꼭 감싸 안고 혹시나 찬바람이라도 들어갈까 가방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모습이었다. 주머니에 넣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놀이터 벤치에 앉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라이터에 불이 몇 번이고 꺼졌다. 이미 빨갛게 얼어버린 손으로 계속해서 라이터 휠을 돌렸다. 드디어 라이터에 불이 붙었다. 재빨리 담배를 라이터 쪽으로 갖다 댔다. 불에 비친 엄지손가락은 휠에 묻은 쇳가루 때문에 검게 변해있었고 거기서 검붉은 피가 나왔다. 얼얼하긴 했지만, 살이 까질 정도였다니. 차라리 추운 날씨에 손이 얼어버려 감각이 없어진 것이 다행이었다.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쉰 후, 내뱉었다. 조명등이 번쩍번쩍하더니 이내 꺼져버렸다. 하얀 연기는 하늘 위로 올라갈수록 흐릿해져만 갔다. 담배 연기 때문인지 하늘에 별은 잘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담배 연기를 재빨리 빨아들였다. 담배를 잡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어두컴컴한 하늘에 떠있는 별을 쳐다봤다. 갑자기 손에서 가시 몇 백 개가 나를 스치는 느낌에 그만 담배를 떨어트렸다. 나는 손을 바라봤다.

  꿈에서 그가 나왔다. 눈을 떴다. 머리부터 발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그만 떨어! 그만 떨란 말이야!”
  벽으로 돌아누워 새우처럼 몸을 구부렸다. 떨리는 것을 멈추기 위해 있는 힘껏 몸에 힘을 줬다. 그러자 떨림이 멈추긴커녕 더 심해졌다. 귀를 막고 두 눈을 감았다. 갑자기 편안해 지면서 떨림이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조심히 눈을 떴다. 새별이 구부린 내 몸속으로 파고들어 계속해서 나를 핥아 댔다.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새별은 내 주위를 돌며 나의 팔, 다리, 그리고 얼굴을 핥았다.
  “새별아. 언니 이제 괜찮아.”
  발을 핥고 있는 새별을 얼굴 앞에 놓았다. 새별은 내 입을 핥고는 자리를 잡더니 이내 고개를 파묻었다. 그 이후로 나의 몸이 떨릴 때마다 항상 그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놀라서 고양이를 떨어트렸다. 그 고양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곤 쩔뚝거리면서 내 다리에 얼굴을 비벼 됐다. 그 고양이의 행동을 지켜봤다. 여느 길 고양이와는 다르게, 그 고양이는 사람 손이 그리운 듯 계속해서 나의 다리를 돌며 자신의 얼굴과 몸 그리고 꼬리까지 비비며 울어 댔다. 고양이가 지나갈 때마다 바닥엔 붉은 발자국이 찍혔다.

  “새별아. 언니 왔어. 왜 이렇게 누워만 있니.”
  차가운 철창 속 안에 있는 새별은 힘없이 누워있었다. 링거를 꽂은 다리는 깁스처럼 두꺼운 붕대로 칭칭 감아져 있었다. 바늘보다 작은 혈관에 링거를 맞춘다고 몇 번이나 찔러 댔는지, 붕대를 감은 다리에 빨간 피가 묻어있었다. 처음엔 아프다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울던 새별은 이젠 다리를 몇 번이나 찔러도 울지 않았다.
  가져온 담요를 철로 만들어 진 입원실 바닥 위에 깔며 새별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러자 힘없이 축 처진 채 나의 팔에 안겼다. 순간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조심히 “새별아” 하고 불렀다. 그런데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새별에게 얼굴을 갖다 대고 “새별아” 하고 다시 불렀다. 그래도 새별은 눈을 떠서 나를 보지도, 나를 핥지도 않았다. 다시 철창 안으로 넣었다. 철창문이 닫히는 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동물 병원 의사선생님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오자, 새별은 아까 눕혀 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는 새별을 꺼내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직은 살아있지만, 안락사하는 것이 새별을 도와주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새별이 흐릿해져 갔다.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면 몇 초도 안 되어 다시 흐릿하게 멀어져 갔다.
  “새별아!”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지 새별이 눈을 떴다. 일어서려고 하는 듯했으나, 자꾸 넘어졌다. 한참을 그러다 결국 일어서지 못하고 뒷다리를 질질 끌면서 내 쪽으로 기어왔다. 닫힌 철창 너머로 나를 보며 앞을 막고 있는 철창을 핥아 댔다. 철창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새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새별은 떨리는 내 손가락을 핥았다. 혀를 내미는 것이 느려져만 갔다. 새별을 꺼내 안았다.
  “새별아. 언니 이제 괜찮아.”

  허벅지에 올라와 있는 그 고양이는 나를 쳐다보며 울었다. 나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하늘을 쳐다봤다. 어두컴컴한 내 인생에 하나의 빛으로 찾아 와 어둠을 밝혀 주고는 다시 밝은 아침이 찾아오려 하자, 별처럼 사라진…….
  하늘 위에 떠있는 별이 더 선명하게 반짝였다
 

  2

  “아주 미치겠어요. 어제는 옆에 보이는 물건들 다 던지면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예요. 지 아빠랑 똑같이. 그러다가 자기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큰 소리로 울고불고 소리치길래 내가 닫힌 문 앞에서 그랬죠. 또 시작이냐! 너 때문에 미치겠다! 왜 울고 난리냐! 엄마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지금 너 하나 때문에 이 새벽에 다들 잠도 못 자고 온 가족이 공포 상태인 거 모르니? 그랬더니 갑자기 울음을 그치고 나한테 오는 거예요. 그리곤 글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지 뭐예요? 그러고 나서 나를 막…….”
의사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 울보 아줌마한테 말했어요.
  “그게 정상적인 겁니다.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들의 일반적인 행동입니다. 그럴 때면 자신의 심정을 딸에게 하소연하지 말고, 딸을 꼭 껴안아주세요. 손을 풀려고 해도 그냥 꽉 껴안고 등을 토닥거리며 미안해. 사랑해. 라고 말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진정제 주사를 놓는 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이죠.”
  의사선생님이 가방 속에서 꿈틀거리는 나를 발견 했나 봐요. 울보 아줌마는 손뼉을 치며 가방에서 나를 꺼내 의사선생님에게 보여줬어요.
  “새별이 키울 때, 많이 괜찮아졌었는데…… 새별이 죽고 나서 더 심해진 거 같아요. 그래서.”
의사선생님이 울보 아줌마의 말을 끊었어요.
  “새별이가 살아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것 또한 견뎌내야 할 텐데요. 이건 대체물밖에 안 됩니다. 이 동물도 죽으면 다시 원점이겠죠. 그래도 뭐, 동물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의사선생님은 나를 한번 보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웃으면서요.

  저 아줌마는 매일 우리 집에 왔어요. 어느 한 친구를 데리고서요. 처음에 저 아줌마가 왔을 땐, 큰엄마는 저 아줌마한테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개를 숙이는 건 저 울보 아줌마였죠.
  오늘은 그 친구를 데려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오늘도 우는 건 여전했죠. 사실 비밀인데요. 우리 집에 저런 사람이 하루에도 다섯 번 이상 찾아와요.
  “환불해줘요. 교환해줘요.”
  환불 된 친구들은 큰엄마와 함께 창고가 있는 뒷문으로 들어가요. 나올 땐 큰엄마만 나와요. 그 창고에 들어갔다 나올 땐, 항상 큰엄마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어요. 큰엄마는 인상을 찡그리며 이렇게 말했죠.
  “쓰레기가 또 생겼네.”
  저 아줌마는 매일 우리 집에 와서 큰엄마에게 화를 냈어요. 그다음엔 울면서 매달렸죠. 그러고는 힘없이 축 처진 어깨로 친구를 안고 나갔어요.
저 아줌마가 울면서 매달 릴 때마다 큰엄마는 이렇게 소리를 질렀어요.
  “교환 해 주겠다고요!”
  그 말에 저 아줌마는 울면서 똑같은 말을 반복했어요. 다른 강아지 필요 없다. 살려내라. 어떻게 홍역 걸린 강아지를 파느냐. 어떻게 죽을 강아지를 파느냐. 그리고 울면서 친구를 안고 다시 나갔죠. 큰엄마는 저 아줌마가 나간 후에 “저렇게 끈질긴 사람은 또 처음이네” 하고 말했어요. 하긴……. 맞아요. 다른 사람들은 몇 번 오고는 더는 오지 않으니까요.
  오늘도 그러려고 왔나 보다 했는데, 항상 데리고 오던 친구가 보이지 않았어요. 아줌마는 유리로 된 우리 집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큰엄마는 창고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나왔어요. 그러다 아줌마를 보더니 봉지를 급히 다시 창고로 던졌어요. 아줌마는 유리로 된 우리 집을 한참 동안 보더니 큰엄마에게 말했어요.
  “예쁜 거 필요 없으니, 무조건 건강한 아이로 주세요. 저 검은 비닐봉지에 담기지 않을 아이로…….”
  큰엄마는 당황한 듯 그 자리에 멈춰 서있었어요. 헝클어진 머리를 넘기면서 창고 문을 닫고 유리로 된 우리 집을 쳐다보며 아줌마에게 말했어요.
  “이 많은 아이들은 전부 번식농장에서 데리고 왔어요. 아이들이 건강하지 못한 이유는 그 때문이죠. 전염병에 걸려서 와요. 저 창고에 있는 아이들 모두 파보나 홍역 전염병으로 교환 된 아이들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우리도 마진을 남겨야 하니까.”
  아줌마는 큰엄마를 쳐다보며 말했어요.
  “그렇다고 저렇게 치료도 안 해주고, 죽게 놔둬요?”
  큰 엄마는 아줌마를 보며 웃었어요.
  “치료해도 죽었잖아요. 안 그래요?”
  아줌마는 큰엄마를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 진 가방을 챙겼어요. 그러자 큰엄마는 나를 보며 큰 소리로 말했어요.
  “이 강아지는 가정견으로 제가 직접 브리딩 해 온 강아지예요. 농장 강아지와는 비교도 안 되죠. 이백만 원이에요. 손님들이 서로 자기에게 팔라고 난린데 육십만 원에 드릴게요. 원금만 받고. 그동안 병원비로 몇 백은 나갔을 테니까.”
 
  현관문을 열다 말고 아줌마가 나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잘 부탁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자.”
  문이 열리자, 키 작은 남자아이가 나를 쳐다보며 활짝 웃었어요. 아줌마가 나를 바닥에 내려놨어요. 여기가 앞으로 내가 살 집인가 봐요. 이젠 두 걸음을 넘어서 열 걸음도, 백 걸음도 넘게 뛸 수 있어요. 저 아이는 자꾸 제 뒤를 쫓아 다녀요. 집 안 구경을 실컷 했는데, 굳게 닫힌 저 방은 구경을 못했어요. 너무 궁금해요. 코로 킁킁거리며 냄새도 맡아보고 다리로 문을 있는 힘껏 차보지만, 문은 너무나 굳세게 닫혀 있었어요. 방금 어떤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하늘로 붕 뜨는 기분에 너무나 놀래서 위를 쳐다보니 키 작은 아이가 나를 안고 다시 거실로 향했어요.
  “쉿! 울 누나 밤새 울다가 자고 있어.”
  누나? 아. 저 방에 누가 있나 봐요. 아줌마는 시계를 보더니 부엌으로 가 물을 끓였어요. 그리고 사료에 물을 붓고 사료를 짓이겼어요. 그리고 능숙하게 서랍에서 그릇을 꺼냈어요. 어? 방금 아줌마의 표정이 어두워졌어요. 나는 부엌에 있는 아줌마에게 다가갔어요. 무슨 일 있어요? 그러자 아줌마는 나를 쳐다보고 그릇에 짓이긴 부드러운 사료를 담아 바닥에 놓았어요. 나는 허겁지겁 달려가 정신없이 먹었어요.
  “엄마!”
  나는 놀래서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이거 새별이 그릇이잖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여자가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어요. 그러고는 나를 발로 차고, 내 밥그릇을 뺏더니 아줌마를 향해 던졌어요. 밥그릇은 아줌마 머리를 맞고 떨어졌어요. 아줌마의 머리와 옷에 갈색무늬가 새겨졌어요. 아줌마는 머리카락에 걸린 내 밥을 떼며 말했어요. 
  “너 강아지 좋아하잖아. 그래서 엄마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빨간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방으로 들어갔어요. 한참동안 그 비명을 계속 되었어요.
 
  큰 방에서는 엄마와 오빠가 자요. 아. 아줌마는 이제 나에게 엄마가 됐어요. 내 이름은 포근이에요. 푹신한 내 집은 홀로 거실에 있어요. 그래서 너무 외로워요. 나도 함께 자고 싶은데, 나도 한 가족인데……. 처음에는 침대에서 엄마와 우현이의 중간에서 같이 잤어요. 근데 오빠가 컴퓨터에서 어떤 글을 읽고 난 후, 나를 바닥에서 재우더니 이제 거실까지 집을 옮겼어요. 뭐라 했더라. 복종훈련 뭐라고 한 거 같았는데.
  큰 방문을 다리로 긁으며 아무리 엄마와 오빠를 불러도 문은 꿈적도 안 했어요. 나는 몇 번이나 울면서 발로 문을 치다가 이내 포기하고 다시 내 집으로 들어갔어요. 너무 그리웠나 봐요. 꿈에서 매일 엄마와 오빠가 나를 쓰다듬어 주는 꿈을 꿔요. 신기하게도 너무 생생하죠.
  털이 뽑히는 따끔한 느낌에 눈을 떴어요. 어? 언니네요.
  “새별이가 죽은 지 얼마 안 됐어. 새별이가 그립지도 않아? 이러면 새별이한테 너무 미안하잖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어요. 언니의 눈빛을 보면……. 분명 절 좋아하고 있거든요. 나는 앉아있는 언니의 허벅지에 올라가 언니를 보며 말했어요.
 
  어김없이 나는 엄마와 오빠의 방문 앞에 가서 울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왔어요. 어? 항상 굳게 닫혀있던 언니의 방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왔어요. 언니의 방문으로 가까이 가자 문이 열려 있었어요. 나는 그 문틈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었어요. 컴컴한 방안에 분홍색 조명등이 켜져 있었죠. 책을 밟고 의자로 올라가 언니가 누워있는 침대로 뛰었어요. 언니는 자고 있었어요. 이렇게 가까이서 언니의 얼굴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죠. 이 집에 산 지 일주일 만에요.
  언니의 얼굴에는 축축하게 물이 묻어있었어요. 나는 언니의 뺨을 핥았어요. 언니가 몸을 뒤척이면서 벽 쪽으로 몸을 돌렸어요. 나는 언니를 밟고 벽 쪽으로 갔어요. 언니의 팔이 벌려져 있네요.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파묻고 잠을 청했어요. 그날은 그 어느 날보다 가장 포근한 날이었어요.

  “누가 이렇게 말도 없이 집에 오래요!”
  엄마가 덩치 큰 남자에게 화를 냈어요.
  “내가 못 올 데라도 왔어? 이 집 내 돈으로 산거잖아!”
  “이십년간 내가 번 건 생각 안 해요? 당연히 줘야 하는 걸 주곤 왜 생색이에요!”
  그 심술 맞게 생긴 남자가 엄마를 밀며 거실 소파에 앉았어요. 엄마는 바닥에 쓰러졌어요. 엄마는 그 남자를 노려보며 일어나 그 남자에게 다가갔어요. 그리고 그 남자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말했어요.
  “당장 나가요. 안 그럼 경찰에 신고 할 테니까!”
  “자식 보러 왔다! 야! 빨리 나와! 아빠가 왔는데 말이야. 나와 보지도 않아? 이것들이 말이야. 버르장머리가 없어. 아주!”
  큰 방에서 슬금슬금 오빠가 나왔어요. 평소와 다르게 풀이 죽은 모습으로요. 저 남자는 분명 나쁜 사람이에요. 나는 그 남자에게 달려갔어요. “나가! 나가! 나가!” 하고 소리쳤어요. 그러자 그 남자는 나를 한 번 보더니 “이 개새끼는 또 뭐야. 아주 재밌게 산다? 살 맛 났어!” 하고 나를 발로 찼어요.
  “포근이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나는 있는 힘껏 뛰어 가 그 남자의 다리를 세게 물었어요. 엄마는 나를 안고서 거실 가까이에 있는 언니 방으로 날 밀어 넣고 문을 닫았어요. 너무 화가 나요. 사랑하는 엄마와 오빠에게 저렇게 화를 내다니.
  “나를 뭐로 보는 거야! 도대체! 왜 나와 보지를 않아!”
  입으로 문을 열려고 온갖 애를 쓰고 있을 때, 언니가 나를 안고 바닥에 주저앉았어요. 나는 저 남자가 소리칠 때마다 똑같이 소리쳤어요. 나를 쓰다듬는 언니의 손길이 평소와 달랐어요. 언니가 고개를 숙여 언니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와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카락 때문에 언니의 떨림은 더 잘 보였어요.
  “큰 애는 어딨어! 이거 안 놔?”
  그 남자가 언니를 부를 때마다 언니의 떨림은 온몸으로 퍼져 나갔어요. 나를 쓰다듬던 손길이 풀리더니 언니가 바닥에 쓰러졌어요. 언니의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어요. 눈은 하늘을 보는 건지 날 보는 건지 모를 정도로 초점이 풀렸어요. 나는 이리저리 언니의 주위를 맴돌았어요. 떠는 언니의 팔을 핥고, 다리를 핥고, 발가락을 핥고, 얼굴을 핥았어요. 아무리 핥아 봐도 언니는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졌어요. 나는 닫힌 방문을 앞에 두고 엄마를 불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엄마의 비명소리였어요.
  “그러니까 내가 놓으라고 할 때, 놨으면 안 다쳤을 거 아냐!”
  이상하게도 언니의 입에서 점점 이상한 게 나왔어요. 나는 언니의 입을 핥았지만, 끊임없이 입에서 나왔어요. 누워있는 언니 주위를 돌면서 하나하나 핥고 있을 때, 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소리쳤어요. 엄마는 언니를 안고 그 남자를 노려봤어요. 이때다 싶어 그 남자의 다리를 세게 물었죠. 어? 이상해요. 그 남자가 소리를 지르질 않아요. 나는 다시 더 세게 물었어요. 그런데도 그 남자는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나는 이상해서 그 남자를 쳐다봤죠. 그 남자는 언니에게 눈을 떼지 않았어요.
  “119에 전화해! 어서!”
  시끄러운 집 안은 모두가 나간 후에서야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졌어요. 현관 앞에서 언니가 나간 문을 한동안 지켜봤어요. 쿵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어요.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그 남자의 뒷모습이 왠지 낯이 익었어요.
  손에 쥐어진 종이가 구겨지고 그 남자의 팔과 함께 그 종이가 떨어졌어요. 나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 바닥에 떨어 진 종이를 봤어요.
  언니?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은 과거 치명적인 일로 상처를 받은 후에 지속적으로 불안증상을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일단은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게 제일 중요한데, 이에 대한 치료법 중에 홍수기법이 있어요·…….”
  의사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언니는 눈을 감았어요. 의사선생님은 눈을 감은 언니에게 계속 말을 했어요. 그때마다 언니는 너무 괴로워했어요. 하지만 의사선생님은 개의치 않고 언니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넸어요. 의자 손잡이를 잡은 언니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언니의 얼굴은 인상이 가득했어요. 나는 더 이상 못 참고 가방 속에서 나와 언니의 손을 핥았어요. 의사선생님은 말을 멈추고 나를 노려봤어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언니의 표정은 이내 매우 편안해 보였어요. 그러자 의사선생님은 나를 한번 쓰다듬은 후 다시 가방에 나를 넣었어요.

  3

  나는 포근이와 함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길을 걷는 잠깐 이라도 포근이가 보고 싶어 가방 문을 열기 위해 지퍼를 내렸다. 지퍼가 다 내려가기도 전에 작은 구멍으로 얼굴을 쏙 하고 내밀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짖었다. 강아지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 되었다니.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몇 번이나 지퍼를 열고, 닫고를 반복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 세한 공기가 온 집에 가득했다. 가방에서 포근이를 꺼내 바닥에 내려 놨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포근이는 평소와 달리 내 방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거실로 향했다. 포근이를 따라 거실로 향하자 소파에 앉아 있는 아빠가 보였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병원에서 매번 치료를 할 때 하던 상상인지, 아니면 진짜 현실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포근이가 아빠를 보며 짖기 시작했다. 아……. 현실이구나. 나는 멍하니 거실에 서 있었다. 아빠는 포근이를 보더니 포근이를 안고 쓰다듬었다. 신기하게도 포근이는 아빠의 손길에 이내 조용해졌다.
  “은희야.”
  아빠는 소파에 포근이를 내려 두고 나에게 다가왔다. 난 자연스레 뒷걸음질을 쳤다. 아빠는 두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아빠를 쳐다보자 머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손을 풀며 한숨을 쉬더니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은희야. 아빠가 미안하다. 네가 그날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며 정말 충격 받았다. 너에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용서가 안 된다는 거 안다. 그래도 은희야. 아빠가 진심으로 미안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는 것이 싫어,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왼 쪽 어깨 위가 무거워졌다. 나는 바닥에 보이는 큰 발을 확인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한 후, 내 눈에서 큰 발이 사라졌다. 나는 그대로 멈췄다. 포근이는 내 주위를 계속 맴돌았다.

  엄마의 품에 안겨 침대에 누웠다. 엄마는 나를 안아주며 “아빠 집에 못 오게 해야 했는데 미안해. 널 지켜주지 못해서” 하고 말했다. 고개를 저으며 엄마의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포근이가 질투를 느꼈는지 바닥에서 침대 쪽을 쳐다보며 낑낑대고 있었다. 나는 안쓰러워 포근이를 안으려 침대에서 일어나 포근이가 있는 바닥으로 내려갔다.
  포근이의 입에 구겨진 종이가 있었다. 나는 포근이가 물고 있는 그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언니가 이런 거 먹지 말랬잖아.”
  종이를 확인하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그건 나와 아빠가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 나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 입을 맞추는 사진이었다. 그 속에 나는 너무나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구겨져 찢긴 사진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이렇게 웃고 있는 아이가 정말 나란 말이야?’
  엄마는 침대에서 내려와 내 옆에 앉았다. 엄마의 어깨에 기댄 채 한동안 말없이 그 사진을 바라봤다.
  “엄마. 아빠도 날 사랑했던 적이 있었어?”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중한 아기였는데. 널 낳았을 때 아빠 나이가 서른하나였어. 그 시절에는 많이 늦은 거였지. 네가 태어나자 아빠는 좋아서 입이 귀에 걸렸단다. 우유도 타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어딜 가든 아빠가 널 안고 다닐 정도였지.”
  그런 때가 있었단 말인가?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아빠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도 결코 아빠를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사진 속에서 아빠 품에 안겨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뚫어져라 다시 한 번 쳐다봤다.
  문득,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사진 속의 아빠와 내 모습이 점점 변해갔다. 총각처럼 젊은 아빠의 모습이 허옇게 머리가 세어버린 늙은 아버지로, 그저 티 없이 활짝 웃고 있는 아기의 모습이 성숙한 아가씨의 모습으로. 어느새 다 커버린 사진 속의 나는 처음엔 무표정했다가 천천히 나를 향해 웃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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