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심사평

  우리들의 삶이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는 사라져 간다. 일상의 삶은 그렇게 이야기 형식이 있어 허망하게 사라져버리지 않고 기억된다. 소설은 그 이야기의 한 형식이다. 그런데 소설이 다른 이야기 형식과 다른 점은 인쇄되어 있다는 그 두드러진 매체적 성격 이외에 자기반영적 시선을 들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이야기인들 말하는 자의 시선이 배제될까마는 소설이야말로 오로지 그것에 의존하는 이야기 양식이다. 말하는 자의 시선이 그렇게 깊이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말하는 자, 곧 서술자의 가장 가까운 삶이라 할 일상생활을 말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렇게 일상을 말하면서 그 일상을 관찰한 자의 시선을 내보인다.
  우리들의 현실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어떻게 투영되어 이야기로 만들어질 것인가에 초점을 두면서 응모작들을 읽어나갔다. 대략 「새 별이 왔다」, 「이백오십 번 버스」, 「파랑새」, 「가까운 듯 먼」 등이 눈에 들어왔다. 앞의 두 편은 일상의 리얼리티가 더 강했고 뒤의 두 편은 그것을 감추어 구조화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가까운 듯 먼」은 일상을 탈출한 이야기로 서사공간이 추상화되어 있다. 모든 이야기는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다고 했는데, 의도적이었는지 어쩐지 아무튼 끝이 실종되어 버린 감이 있다. 신비롭게 감추려 한 것들이 무엇인지 다소 어설프다는 생각이다.
 「파랑새」는 이야깃거리를 모은 공력이 대단하다. 그것이 설명의 수사학에 빠져들게 만들고 이야기를 압도해버린 점이, 그리하여 삶의 구체성이 소멸되어 버린 점이 아쉽다.
 「이백오십 번 버스」는 삶의 자락을 포착하는 담담한 시선이 주인물의 현실을 꿰뚫는다. 서사의미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기표들, 가령 마술사의 이야기와 같은 것들을 삽입한 것도 꽤나 흥미롭다. 탈출이란 지정된 종결을 향하여 나아가는 플롯은 잘 짜여진 틀에 구속되어 버린 인상을 주며, 제목이 이 사건들의 구조를 수렴하는지도 다소 의문으로 다가온다.
 「새 별이 왔다」는 치유와 화해의 이야기이다. 시점을 바꾸어가면서 주제를 몰아가는 서사 진행이 독특하다. 삶의 미망이 아름답게 종결되는 점은 학습된 플롯에 의존했다는 생각이다. 그만그만한 작품들이었다. 「새 별이 왔다」에 삶의 고통을 바라보는, 그것에 대처하는 우리 시대의 한 방식이 있다고 좀 더 의미를 부여해 보았다.  


                   영어영문학과 교수 민경택
                   국어국문학과 교수 송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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