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르고, 외치고, 더욱 더 벅차오르다

 
  팝 스타 비욘세의 수많은 히트곡 중 하나인 ‘Irreplaceable’. 하지만 그녀는 2009년에 있었던 두 번째 내한 공연에서 Irreplaceable의 전반부를 아예 부르지 못했다. 그녀 대신 한국 팬들이 입을 모아 직접 불렀기 때문이다. 도입 부분부터 MR에 맞춰 열성적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에게 비욘세는 마이크를 아예 넘겨 줬다. 공연 내내 쉬지 않고 감사의 인사를 하던 그녀는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잊지 못할 것이다. 나와 어쩜 그렇게 잘 맞는지 모르겠다!”는 찬사를 남기고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뗐다.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르기, ‘떼창’은 락과 메탈 등 밴드 음악의 본거지이자 대형 음악 페스티벌이 활발하게 열리는 유럽에서 시작된 공연 문화다.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한 건 외국 밴드와 음악들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며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2000년 이후 대형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이 잦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또한 이 시기 등장한 락 페스티벌은 대중과 밴드 음악을 더 친해지게 했고, 점차 ‘즐기기’에 초점을 둔 음악 축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공연장에도 떼창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밴드 음악 뿐 아니라 팝, 어쿠스틱 등의 장르라도 관객이 사랑하는 아티스트라면 공연장에서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팬들을 만나게 된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싱 얼롱(Sing along, 따라부르기), 즉 떼창은 공연의 구성요소로서 관객과 아티스트가 공연에서만 접할 수 있는 고양감을 더욱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내한한 아티스트들은 한국 팬들의 떼창에 큰 감명을 받는다. 미국의 팝 밴드 ‘마룬 5’는 홍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시아 투어 중 어느 국가가 가장 인상깊었냐는 질문에 한국을 꼽으며 “우리는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해 보았지만 서울에서와 같은 공연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영국 락 밴드 ‘뮤즈’는 내한 공연 당시 한국 관객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미친 듯이 열정적이다”라는 찬사를 보내며 곧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떠났고, 실제로 4개월 만에 다시 한국을 방문해 화제를 낳은 바 있다. 해외 아티스트들은 서구의 음악 페스티벌을 돌며 수만 명의 관객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울림을 만끽하지만, 비영어권 국가인 한국에서 예기치 못하게 만난 열광적인 떼창은 아티스트들에게 또 다른 감흥을 안겨 준다.
  이민희 대중음악평론가는 “떼창이 해당 뮤지션에게 만족을 주고, 객석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불을 붙이는 것은 사실이다”라며 “물론 일시적인 반응보다 장기적인 관중동원력이 더 중요하겠지만 떼창은 해당 뮤지션이나 해외시장을 찾는 공연 에이전시에게 ‘입소문’으로서 유용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국내시장에 대한 정보가 아직 없으나 향후 개척하려는 인력들에게 추상적으로나마 한국 음악팬들의 수요나 성향을 일러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관객들은 ‘셋 리스트(Set list, 라이브 공연에서 가수가 부를 노래 목록)’를 공유하고, 공연 전부터 가사와 노래를 외워 두기도 한다. 한 달에 적어도 세 번 이상 공연장을 찾는다는 윤가희(23) 씨는 “잘 모르는 노래라도 내한 공연 몇 주 전부터는 반복해서 듣고 외우며 떼창을 할 수 있게 예습을 해 간다”고 말했다. 그들이 ‘떼창’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데 열정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민희 평론가는 “지금은 공연이 많이 늘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연은 그리 흔치 않은 이벤트였다. 귀한 경험에 대한 열망이 청중을 적극적인 무리로 만든 것이라고 본다”며 “수많은 청중들의 아티스트와 그의 공연에 대한 애정 표현은 보통 노래를 부르거나 몸을 흔드는 것으로 요약된다. 좋아하고 기다렸던 존재에게 에너지를 쏟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영국의 락 밴드 ‘트래비스’의 내한 공연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직장인 양혜영(28) 씨는 “가장 적극적인 호응이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많이 뛰고, 소리지르고, 따라부르는 것”이라며 “공연장에 있는 청중들과 아티스트 모두가 하나가 되는 느낌, 그것이 목이 부서져라 떼창을 할 수밖에 없게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떼창 문화를 보는 곱지 않은 시선들도 있다. 즐기기보다 음악을 감상하러 온, 다른 청중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부끄러운 민폐 행위라는 비난 역시 존재한다. 이민희 평론가는 “적극적으로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으로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까운 현장에서 생생한 음악을 감상하는 특별한 시간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며 “공연장에서는 적극적인 무리와 관망하는 무리가 분리되고 있으니 문화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는 성향에 맞게 자리를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티스트와 함께 외치고, 뛰는 것은 아티스트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타인들과 시공을 공유하는 행위다. 음악에 있어 대중이 절대적인 영향을 행사하게 된 오늘날 떼창 문화는 관객을, 공연을 주도하는 ‘들을뿐 아니라 이끄는’ 주체적인 지위로 격상시켰다. 아시아 투어에서 일본을 거쳐 잠시 들렀다 가는 나라였으나 불과 몇 년만에 아티스트들을 매혹하는 ‘핫 플레이스’가 된 한국. 흥의 민족, 한국인들이 오늘날 ‘가장 잘 즐기는’ 관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예견돼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송민진 기자 blossomydayz@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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