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기우뚱(?)문학주의

  왜 '문학동네'가 문제되는가. 그 잡지가 이제 2호째를 맞는 문학잡지로서는 드물다 할 정도로 많은 독자를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2호째를 맞으면서 온갖 풍문과 함께 그 잡지는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 주변적인 이유일 뿐이다. 무엇보다 이 잡지가 관심을 끄는 것은 창간과 함께 내걸었던 그 편집동인들의 문학주의라는 '이상'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되고 있으며,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동네'가 주장한 문학주의는 어쩌면 90년을 전후로 하여 형성된, 우리문학의 여러 현상들을 토대로 하여 나타난 이념이라 할 수 있다. 장정일로 대변되는 신세대 문학인들의 등장과 그들의 '탈이념적'혹은 '새이념적'경향, 탈냉전과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에 의해 촉발된 민족문학론및 그 작품 실천의 위기현상, 80년대의 정치주의적 문학태도에 대한 문학내적 반성등, 이 모든 것들 위에 문학주의라는, '좌우'를 초월한 문학성 추구라는, 또다른 방식의 '탈이념적'경향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문학이라면 무엇보다 실제 작품 그 자체의 미학성에 의해 그 가치를 인정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당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자, 동시에 뭔가 분명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문학인은 문학을 위하여'라는 순수문학론의 90년대적 재판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일단 지적해 볼 수 있는 것은 2호를 통해 본 이 잡지가 상업주의의 덫에 걸쳐 그 문학주의 이념이 좌초되어버릴 수도 있는, 일종의 위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물론 외견상 이 잡지는 '좌우동거'적인 문학주의의 이념을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80년대와 90년대의 정서를 각각 대변하는 송기원과 신경숙의 장편소설이 나란히 연재되고 있다든가, 특집인 '세기말과 문학적 상상력'에 임규찬부터 이광호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의 대변자들이 글을 쓰고 있다든가 하는 것은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먼저 지난호의 최윤에 이어 이번에는 장정일이 작가특집란의 주제로 되고 있음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무척이나 때를 타는 작가들이기도 하다. 특히 장정일에 관한 많은 논란들은 그의 시류성의 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으로 외국작가 특집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심상치 않다. 그가 보여주는 '상실의 정서'가 얼마나 진지하게 구현된 문학성인지는 의문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세기말과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특집에서 나타나는 '보편성'의 추구, 좌에서 우까지의 많은 작가, 비평가들을 한 잡지에 끌어들이는 '비당파적'태도를 정말 문학주의의 체현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사실이다. 문학이 세계에 대해서 열려 있는 형식이고 그 세계에 대한 인간들의 반성의 형식이라면, 그것은 틀림없이 구체적이고 특정한 이념 및 그에 따르는 현실해석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잡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창작과 비평'이나 '실천문학'이 그러하고 '문학과 사회'나 '문학정신'이 그러하듯이 '문학동네'또한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문학주 혹은 문학성의 추구란 세계관의 애매모호함과 불투명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가치 평가에 있어서 형식미학주의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문학동네'는 90년대적 현실에 대한, 있을 수 있는 한 대응방식을 보여 준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신세대문학의 경박성이 논단되고, 대중추수적 문학작품들이 주목의 대상이 되는 속에서 진정한 문학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져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의문의 차원이 아니라 이념의 차원에서 추구될 때, 그것은 곧바로 90년대적인 '탈 이념적', '새 이념적'경향의 한 부분으로 위치 지워질 수 있는 것이다. '문학동네'가 이런 위험에 정말로 빠져 있는 것인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이것을 분명히 하지도 못한 채 이 잡지가 끝나버릴 수 도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 문학의 편안하지만은 않은 존재 조건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방민호<서울대ㆍ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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