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꼬지에서 생긴 일

  119응급조치와 삐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다가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우리는 대둔산으로 가기 위해 서부터미널에서 모여있었다.
  새내기들의 흥분된 모습들이 선배들의 옛추억을 감상적으로 되살리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출발은 고통 그 자체였다. 20여명의 일반 등산객들과 60여명의 우리들이 한 차에 탔으니!
  다음날, 새벽까지 놀다 곤히 잠든 학우들을 겨우 깨워 산의 정상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어제의 피로 때문에 1학년 한 여학우가 심한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정상에 가까워진 장소에서 우리들의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쌀포대와 옷으로 들것을 만들어 운반하기 시작했다. 운반과정에서 의식을 잃어가고 있어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했다.
  미리 연락을 해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짚차에 싣고 진산에서 119구급차에 옮기기 까지 우리의 마음은 조마조마 했다. 제발 아무일 없기를.
  대둔산에서 출발하려 하기전 나를 울리는 삐삐의 진동! 긴장의 최고조였다. 음성사서함에 남겨진말. "급성 위장염인데 주사맞고 약타고 집에 갔어. 괜찮을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나온것은 왜일까?
  돌아오는 차안에서 모두들 스트레오로 코를 골고 있었다.
  나 역시 허리에 차고 있는 삐삐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자고 있었다.
 
 남   이정훈(기술교육ㆍ3)

 

  '나는 영원한 Via인입니다'
  사람들은 힘들거나 어려울 때 자신의 안식처를 찾아간다. 지금 나에게 Via는 안식처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Via가 안식처였던 것은 아니다. Via문을 두드리고도 난 항상 망설였고 두려워했다.
  내 이름과 본명을 불러주며, 따뜻하게 맞아주었는데도 힘들고 두려웠다. 그러던 중 M.T를 가자는 제안을 받았고, 그 제안에 한마디로 거절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중요한 일이 있기에.
  어찌된 일인지, 하룻밤 사이에 마음을 바꿔 M.T를 가기로 했다. 이런게 흔히 말하는 '신의 계시'일까?
  월악산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리고 계속 되뇌이고 있었다. '후회할 것이다'라고. 그러나 후회하기는 커녕,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고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느끼게 되었다. 내 어리석고 바보같았던 행동에 Via선배들과 동기들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우정이란 이름으로 채색해주었다. 미사시간, 식사시간, 공동체 놀이시간등 Via인들과 함께 보낸 1박2일의 그 짧고도 굵었던 시간들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M.T를 통해 Via인들의 사랑, 우정 그리고 그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누군가 Via에 대해 묻는다면, 또는 나에 대해 묻는다면 서슴치 않고 말할 수 있다. '나는 Via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Via인일겁니다'라고.

 ※Via:카톨릭학생회동아리

 여   강지수(국문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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