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의 각색, 뛰어난 연기력 돋보인 연극

  무대가 1, 2분간 깜깜해진 후, 암컷 원숭이 제리를 살해한 죄로 법정에 선 '빨간피터'의 모습이 나타난다.
  프란스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를 각색한 이 작품은 원작의 난해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고 무대위 장치를 좀 더 현실화 시켰고, 관객들에게 극적 긴장감을 주기 위해 원작에 없는 제리를 등장시켰으며, 또 법정 장면을 만들어 냈다.
  박찬조씨 연출로 우리지역 극단 '금강'과 '터'가 지난달 24일부터 소극장 예사랑에서 장기공연하고 있는 '빨간피터의 고백'은 80년대 추송웅씨가 주연으로 열연할 때의 소극 형태를 탈피하고 원작의 본래 의미를 잘 살려낸 공연이었다.
  아프리카의 황금해안이 본거지인 피터는 탐험대원에게 잡혀 정기선 3등 선실 철장안에 갖히게 된다. 피터는 계속 철장안에서 벗어날려고 몸부림치나 부딪히는건 쇠창살 뿐이고 도망치려는 시도는 그에게 더 크고 견고한 철창에 갖히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그래서 피터는 완전한 출구로써 '인간 모방'의 방법을 택한다.
  "인간을 흉내내기는 쉬웠습니다."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점을 담지 '남을 향해 침을 뱉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으로 단순화시키며 카프카는 인간을 향한 강한 조소를 하고 있다. 특히나 카프카가 1차세계대전직후, 독일의 프라하에서 거주한 유태인임을 감안해 볼 때 그는 피터의 위와 같은 고백을 통해 유태인을 핍박한 독일사람들을 한껏 비웃어 주며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원숭이로서의 본성을 완전히 탈피하고 마침내 완전한(?)출구로서의 인간모방에 성공한 피터는 쇠창살을 벗어나 서커스의 무대위에 오르면서 제리를 만나게 된다. 서커스단에서 길들여지기를 싫어하는ㅡ인간화를 강하게 거부하는ㅡ제리에게서 사랑을 느끼며 피터는 서서히 자아를 깨달아간다. 그러면서 피터는 제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것을 실현시켜주기위해 사랑하는 제리를 살해한다.
  "이제 더이상은 저에 대한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인간들의 판단을 원치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피터는 법정에서 스스로 목을 멘다.
  피터는 제리를 통해서 그가 택한 출구가 방법론으로서의 부분 탈출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결국은 죽음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 것이다. 연출자는 생존을 위해 원숭이를 스스로 포기한 피터와 끝까지 완벽한 자유의지로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제리를 정반대의 캐릭터로 설정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원작에도 없는 제리를 등장시켜 작품을 이끌어간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터가 제리를 죽일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이끌어내기에는 제리와 피터의 갈등관계가 너무나 미약하지 않았나싶다.
  프란스카프카의 원작을 모노드라마화한 이번 작품은 원작의 난해성을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도 본래의 의미를 잃지 않은 연출자의 각색이나 주연 조수희씨의 연기력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며 조명이나 음향이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충분히 뒷받침 해주지 못해 모노드라마의 약점을 감추지 못한 점일것이다.

 박은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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