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영화가 이르지 못하는 영화의 순수영역

 최근 한국영화의 한 경향을 이루며 급격히 정착하고 있는 영화용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단편영화, 독립영화라는 명칭인데, 영화를 다루는 대부분의 매체들에서 한번 이상씩은 특집을 게제했을 정도이며 작년의 삼성 나이쎄스 단편영화제를 위시하여 얼마전 씨네 21주최의 서울영화에 이르기까지 단편영화의 활성화를 향한 일련의 행사가 개최되는등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제도권의 영화(제도권의 영화를 충무로영화라고 규정한다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을 왜일까.
 단편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독립영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정의는 의견이 분분하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통합된 견해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위 인디펜던트(independent)라는 명칭이 일반화된 서구의 영화구조를 살펴보면 몇몇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제도권 영화에서 다루지 않는 주레를 독특한 시각으로 형상화하는 점이라 할 수 있고, 둘째는 저예산영화라는 점, 셋째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이 많다는점, 마지막으로 거대 영화사들과 연계되지 않아 제작자의 간섭으로부터 창작자가 자유롭다는 점등일것이다. 물론 이러한 예들이 한국적 상황과 전적으로 부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독립영화의 기본개념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수는 있겠다.
 그렇다면 한국의 독립영화는?
 한국의 독립영화는 태동시기가 10년 남짓이다. 80년대라는 격변기 사회에 대한 영화적 발언의 요구로 시작되었으며 '오, 꿈의 나라'(장산곶매), '어머니, 당신의 아들(영화제작소 청년)을 거쳐 '파업전야'(장산곶매)에 이르러 그 전성기를 맞는 듯했다. 그러나 '파업전야'이후 '닫힌 교문을 열며'란 작품 한편 외엔 90년대를 가로지르는 이 시점까지 장편 독립영화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에 개봉된 변영주 감독의 장편 다큐멘타리 '낮은 목소리'가 80년대의 독립영화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정도라고 이해해도 무방할듯 싶다.
 그리고 바로 이 빈자리에 단편영화의 존재가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최근의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작되는 단편영화의 대부분은 분명 독립영화이다. 물론 그 작품의 시각, 완성도, 예술정신의 문제에 있어서 진정한 독립영화인지는 세밀하게 관찰한 후 파악이 되겠지만 위에 열거한 소위 인디펜던트의 모든 특성을 지금의 단편영화들은 갖고 있는 것이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집단은 몇군데가 안되는데 그중 유일한 극영화지향 단체는 영화제작소 청년이다. 5년정도의 활동시기가 말해주듯이 어느정도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청년은 91년, 제작진 전원이 학생의 신분으로 장편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제작했고 이후엔 단편작업과 비디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왔다. 작년 나이쎄스 단편영화제 본선작인 '사로'(정지우 감독)는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주목 받았고, 올해 서울영화제에도 'Grand father'(김용감 감독)라는 작품이 선정되는등 그 성과가 서서히 집약되고 있다.
 청년이 창작중심의 집단이라면 독립영화협의회는 단편영화인을 길러내는 학교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명칭에서 보여지듯 초창기엔 독립영화집단을 연결하는 협의기구의 역할을 담당했으나 잇따른 집단들의 해체와 구성원들의 이탈등으로 현재는 독립영화 워크숍이라는 단평영화창작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이 워크숍은 영화를 전공으로 배울 수 없는 초심자들에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체험하게 하는 동시에 영화인구의 저변확대라는 기능을 수행하며 창작인을 길러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대학의 영화과, 역시 단편영화의 보고라 하겠다. 각 대학에서 배출해내는 영화인력은 졸업후 충무로진입이라는 단선적 구조에서 이탈해있다.
 한양대 영화과 중심의 단편영화인 모임 '일리자음', 경성대 중심의 '르네상스'가 결성되는 것이 그 실례라 하겠다. 영화를 지망하는 모든 초심자들의 분발도 단편영화 발전에 일조한다. 그러나 매니아들의 정체성없는 지적 허영은 종종 얼토당토 않은 미완성작을 양산하기도 한다.
 단편영화는 말 그대로 짧은 영화다. 단편영화로 이해되는 영화의 시간적 경계는 1시간내외라는 통설이 있지만 이도 40분이상의 영화는 중편영화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다면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건 기존의 상업영화에 비해 크게 모자라는 이러한 시간적 특성이 단편영화의 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단편영화는 상영시간이 상업영화에 비해 현저히 짧은 영화이므로 극장에서 상영하기에 아주 곤란하다. 비디오로 출시한다해도 대여료를 제대로 받기엔 그 시간적 한계가 뚜렷하다. 따라서 단편영화는 배급의 절대적인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최근들어 대기업 비디오 체인 사업체드에서 이러한 단편영화를 비디오로 출시하는 계획이 조심스레 검토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영화제작의 이상적 형태인 제작비환수와 다음작품을 만들기위한 자금조달에는 그리 가깝지 않은것 같다. 그러므로 단편영화작가를 지향하는 사람은 영화만으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것 같다.(충무로 영화에서 활동한다해도 외지임금에 못미치는 수입을 어는 고급인력이 상당수인 현실!)그리고 여기에 단편영화, 독립영화의 핵심적인 사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영화를 하는 '정신'의 문제이다.
 돈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올곧은 세계를 표현하고 싶다는 예술의지가 단편영화를 추구하는 궁극의 지점에 자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정신적 측면을 강조하는 단편영화의 성격은 대안영화라는 명칭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상업 영화가 이르지 못하는 순수한 영역이 단편영화의 지향점이자 영화가 예술일수 있는 마지막 근거가 되는 것이다.
 필자는 위에서 언급한 한 독립영화집단의 구성이다. 우리는 돈이 안될 것을 확신하면서도 또다시 단편영화제작을 위한 사전 작업을 추진중이다.
 단편영화의 전망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영화가 단순히 상업적 수단이 되는 시점이 오더라도 누군가는 단편영화를 만들것이며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은 영화를 예술로써 꿈꾸는 의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임필성<영화제작소청년ㆍ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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