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전문잡지 창간 '붐'에 즈음하여

  요즘 한번쯤 서점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잡지 판매대에 진열된 잡지를 보고 새삼 놀래본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잡지의 종류도 종류이거니와 현란한 잡지의 표지 디자인과 의미도 알 수 없는 이국적인 제호에 더욱더 현기증을 느꼈으리라 짐작된다. 1995년 8월 30일 현재, 우리나라 월간지의 가지수는 2천 33종. 이 정도면 서점 진열대에 전시되어 독자에게 선 보이는 것만으로도 꽤나 성공(?)한 잡지라 칭송할 만하다. 이러한 잡지 홍수속에서 올 상반기에 주목할 만한 또하나의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소위'남성지'의 본격적인 출현이라 볼 수 있다. 지난 봄, '앞서가는 남자 매력있는 남자'라는 케치프레이즈와 함께 초고감도 남성 패션지를 표방한 'GG'라는 잡지가 창간되어 현재 통권 5호를 내었다. 'GG'는 Good Gentlemen의 약자로 대한문화사에서 발행하고 있으며 약 3백여 페이지에 가격은 4천8백원이다. 이 잡지는 남성지를 표방하면서도 패션을 중심으로 독자에게 접근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두번째로 창간된 남성 전문 잡지는 시사저널사의 '더맨'. 이것은 패션, 자동차, 컴퓨터, 건강, 여성등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남성 실용 생활 정보지'를 모토로 하고 있는 이 잡지는 약 2백 20페이지 정도에 가격은 4천 5백원이다. 이어 올 여름 또하나의 남성지가 창간되었는데 제호는 'HIM'이다 2백50페이지 정도에 4천 5백원의 가격으로 '남자를 위한 생활 패션 교양지'라는 슬로건으로 남성독자를 공략하고 있다. 특히 'HIM'은 창간특별부록으로 휴대용 전기 면도기를 사은품으로 주고 있어 벌써 남성잡지 시장이 과열 경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미국의 경우 '최고의 남자'를 내세우며 창간된 '에스과어'지가 남성지의 대표주자로 불리우던 때도 있었으며, 영국의 경우 1980년대 'Arena', 'GQ'등의 남성지가 출현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남성지임을 본격적으로 표방하고 나선 잡지는 거의 없었다. 단지 여원사의 '직장인'이 남성직장인을 주된 독자로 발간하는 남성잡지의 기본틀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남성지'를 표방하고 나선 잡지들은 기존의 남성을 주독자로 삼는 잡지와는 달리 그들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요즘 남성지라 표방하는 잡지들 모두 '패션'을 공통된 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여성지가 여성의 패션을 주된 기사거리로 삼는 것과 상동구조이다. 더 나아가 남성의 화장품이나 악세서리등을 기사화하고 있어 기성세대의 남성관과는 거리감을 두고 있다. 이것은 이들 잡지가 소위 'X세대'의 남성 내지는 20대와 30대 초반의 남성을 주요 타겟독자로 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이러한 남성지의 경향에 대해 일부 비판론자나 보수주의자들은 '남성의 상품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기도 한다. 둘째, 이들 남성지의 주된 단골메뉴중의 하나는 레져와 스포츠이라는 점이다. 외국에서 직수입된 신종 레포츠는 일종의 특종감이다. 골프, 카레이싱, 마운틴 바이크 등 현실세계에서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레포츠들이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이 새로운 여가문화를 창출한다는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여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도한 소비문화를 조장하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무의식 속에 침투시키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세째, 건강과 술에 관한 기사를 통해 남성의 눈길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분위기 있는 음주법을 소개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당신은 일주일에 몇회 술을 드십니까', '건강을 위한 금주법'등을 소개하고 있어 '병주고 약주는' 자본주의 전형이 잡지 속에 내재되어 있다. 또한 건강과 술은 반드시 섹스와 여자의 문제를 동반한다. 그러한 면에서 요즘 남성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간간히 실려 있는 '침실미학'은 남성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일품이다.
  네째, 잡지의 편집측면에서 보면 읽는 잡지에서 보는 잡지로의 변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즉 잡지의 비쥬얼화가 공통적인 편집방향이며 소위 감각적인 터치가 눈에 띠게 나타난다. 아무래도 빼곡빼곡한 활자보다는 컬러풀한 사진이 신세대 독자에게는 어울린다는 편집방침인듯 하다. 이상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남성잡지가 정치, 경제, 문화등 사회내 갈등구조와 모순구조의 문제를 누락시키고 여성지를 모방한 또 하나의 '여성지'로 출발한 것은 어쩌면 우리사회가 남성까지도 상품화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전형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남성지는 잡지시장의 새로운 영역 개척이라는 소자본가의 이해와 상품광고의 효율화를 위한 광고 자본가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물이라는 데서 그 한계가 뚜렷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의 건강한 노동과 삶의 가치를 구현하는 방법을, 최근에 나오고 있는 남성지에서 애써 찾으려는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노병성<대전전문대ㆍ언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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