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 사는 이들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

  ‘노동’. 누구나 먹고 살기 위해서 한다. 즉 노동을 해야 돈을 벌고 벌은 돈으로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노동에 대한 보람 또한 얻어야 정신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 당연한 얘기를 첫머리에 올리는 이유는 오늘의 주제 ‘노동가요’는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즐기는 노래가 아님을 밝히고 싶어서이다.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고 부를 수 있는 노래 그것이 바로 ‘노동가요’인 것이다. ‘노동가요’에는 노동하는 사람이 노동과정에서의 희노애락을 담은 것 뿐만이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의 생활가요까지 포함된다. 옛날에는 민요가 있었다. 민요중에는 노동민요가 있다. 모내기 하며 부르는 노래, 베를 짜며 부르는 노래, 시집살이 하는 며느리의 애달픈 노래등은 이미 우리들이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노동가요가 소위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의 전유물이고 그런 사람들만이 부르는 노래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동가요의 발전은 물론 노동운동을 하는 이들이 주로 즐겨 부르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면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만의 전유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노동민요가 노동운동을 하는 옛 선조들이 만든 것이 아니듯이 노동가요는 노동을 소중히 여기는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래를 만든 삶의 노래인 것이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91년도 봄, 100여명 남짓되는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5개월째 회사에서 철야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반은 산업체 고등학교에 다니고 나머지는 20대 후반의 아가씨들이었다. 이들은 사장이 부도내고 회사돈을 다 챙겨 해외로 도피해버린 다음 버려진 노동자들이었다. 나는 그곳에 연대사업부장을 맡고 있었다. 그때의 봄은 왜이리 지루하던지, 점심을 먹고 회사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중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다들 따라 불렀다. 노래는 끝까지 부르지 못했다. 노래부르며 서러운 맘에 엉엉 소리내어 울며 그때 불렀던 노래는 지금 불러도 목이 메인다.
  저기 공장 뜨락에 따사한 봄볕내리면 / 생기도는 아이들 얼굴위로 개나리 춤춘다···.  그리움의 흘린 눈물들 / 노동자의 서러움 지친 바람 불어도 / 다시 아지랑이 되어···.
  이뿐이랴만은 6개월 농성을 정리하며 우린 농성중에 가장 많이 한일 하면 '노래'라고 큰소리로 외친다. 서러워도 부르고, 기뻐도 부르고, 쓸쓸해도 부르고, 엄마생각하며 부르고, 분노하며 부르고, 결의를 다지고, 수없이 많은 일들을 우린 노래에 담아 위로하고, 격려하고, 끌어주고, 밀어주고 했던 것이다.
  ‘미풍양속’을 헤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노동가요가?
  지난 7월 문체부에서는 노동가요 공식음반을 발매한 음반사에 대해서 시중 배포한 노동가요 음반을 자진해서 회수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달간 영업정지를 결정했다. 아마 공윤의 심의를 거쳐 공식발매가 승인이 난 음반에 대해 사후에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진 것은 박정희 유신독재 이후 근 이십여년만의 일이다. 농성중인 한국통신 노동자들이 갖고 있었다는 것을 빌미로 인해 판금조처가 내려진 것이다. 이들이 판금한 이유는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것인데, 그동안 노동가요는 불법이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아왔고, 이제 공식발매된 음반에 대해서도 억지 이유를 들어가며 탄압을 하고 있다. 이전의 노동자와 관련된 모든 정책이 ‘통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 현 정권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동안 ‘노찾사’나 ‘노래마을’등의 민중가요 합법음반은 되고 ‘노동가요’는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11월 11일 민주노총 건설을 앞두고 노동자들이 하나가 되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내려진 조치라 볼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공윤이라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공신력까지 훼손하면서 노동가요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을까.
  최근 광주 비엔날레의 공식노래를 부른 가수 신형원이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불러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이 노래는 택시노동자가 작사한 것에 유민원씨가 곡을 붙인 노래다. 이처럼 노동가요는 미풍양속을 해치기 보다는 국민들에게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소중한 것임을 인식하여야 하며, 또 생명력을 탄압한다고 물러서는 졸렬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구전민요나 구전가요가 오랜 역사에도 변치않고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미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가지만 더 얘기하자.
  남자 선배 노동자가 있다. 이 선배가 그곳에 처음 입사하여 동료들과 악수를 하는데 다들 손가락이 하나, 둘, 셋, 짤려 있더라는 것이다. 이 선배가 다닌 곳은 주방기기를 만드는 회사였다.
  이곳에서 선배는 밤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 노래를 불렀다 한다.
  짤린 손가락 바라보면서 소주한잔 마시는 밤 / 덜컥 덜컥 기계소리 귓가에 남아···.
 이처럼 노동가요는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 노동자들의 시린 가슴 포근히 감싸줄 한줄기 생명의 노래, 삶의 노래이며, 그들에게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갖도록 하는 희망의 노래인 것이다.

 

홍은영<늘푸른 노동자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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