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정신' 무시한 넘지못한 '경계'

  광주는 지금 혼란의 도가니다. 한쪽에서는 시민들이 5ㆍ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몸부림치고 또 한쪽에서는 정부주최로 1백86억원을 들여 거대한 규모로 광주비엔날레를 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속에도 광주정신은 빛을 잃지 않고 있다. 겉만 번지르한 비엔날레에 반기를든 ‘건강한 민족 미술’ ‘참다운 민족문화’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광주 통일 미술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두 미술제를 다녀와 그 현장을 담아냈다.                        
 -편집자주-


  광주는 그야말로 축제의 분위기였다. 시내 곳곳에는 광주 비엔날레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광주정신 되살리는 광주비엔날레’라는 플랭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과연 아시아 태평양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국제미술대회’라는 면모에 걸맞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말 그대로 겉으로 보이는 비엔날레의 모습일 뿐이었다. 겉이 번지르한 사과도 속이 썩을 경우가 있듯이 약간 과장된 듯 하지만 이번 광주 비엔날레의 이면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본 전시장인 중외공원을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었다. 비엔날레는 '2년마다'란 뜻이다. 쉽게 말해 광주라는 특정지역에서 2년에 한번씩 계속적으로 열리는 '국제문화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단한 행사가 우리나라, 특히 서울도 아닌 광주에서 열린다는 것을 그저 영광(?)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기에는 왠지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의 경우는 역사가 1백년이나 되었고 고도의 문화 정책을 배려로 유구한 전통과 독특한 관광자원을 특화하고 있다. 이러한 고급문화의 대표적인 '비엔날레'를 그 해당 지역의 정서, 전통, 경제적 조건은 무시한채 성급히, 아주 성급히 치러내고 있는 것이다.
  왜 하필 광주였을까?
  광주ㆍ전남 미술인 공동체 회장 이준석씨는 "95년 8월 16일 정권이 정한 5ㆍ18 공소시효만료 이후의 광주 분위기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이다"면서 “광주지역 문화의 전통과 역사를 배제한 것은 물론이고 정기국회를 앞두고 벌어질 5ㆍ18 전국 투쟁에 대해 다독거려 잠재우려는 처사이다”고 비엔날레와 광주의 연관성을 말했다. 이는 검찰이 80년 광주항쟁과 관련 지난 7월 16일 '공소권 없음'이란 처사를 내린 이후 번져가기만 하는 ‘항쟁’의 불길에 대한 정치성을 지닌 하나의 유화책임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이러한 것은 비엔날레라는 거대한 규모와 영향력으로 개최지역의 특성은 중요한 요인이 됨을 감안할 때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엔날레는 지난해 12월 6일 제1회 광주비엔날레 준비위원회를 통해 처음으로 공론화되었다. 그로부터 9개월동안 단 한번의 기자회견과 심포지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민참여의 기회와 여론을 봉쇄한 채 마치 무엇에 쫓기듯 진행되어 왔다. 결국 국민의 세금만으로 치러진 겉만 요란한 행사임을 알 수 있다.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비엔날레의 짧은 준비과정과 예산문제는 곧바로 전시장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고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행사장 내에서 쉽게 느낄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러한 전시상의 문제에 대해 광주 비엔날레 관리 본부장 이호준씨는 “지방도시의 한계와 예산의 부족으로 아직도 많은 내부동선 체계등의 보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고 비엔날레의 어려움을 말했다. 또한 이번 행사는 해외관람객 7만명 유치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해외 관람객을 위한 영어로 된 작품설명이 없을 뿐더러 작품마다 배치되어 있는 운영요원들조차 그 작품에 대한 이해가 적어 관람객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실제로 본 전시장에 있는 한 운영요원은 “구청에서 근무하던 중 사전 교양없이 갑자기 배치받아 어리둥절하다”고 말해 준비ㆍ행정상의 미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광주 비엔날레에는 세계 60여개 나라 5백여명이 참여하여 ‘경계를 넘어’ 라는 주제아래 진행되고 있다. 경계를 넘는다(?). 어떤 경계를 어떻게 넘는다는 것일까. 세계의 현대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하며 60여개 나라를 느끼는 것이 바로 김영삼 정권이 말하는 ‘세계화’, 즉 ‘경계를 넘는다’는 뜻이란 말인가. 우리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꼭 넘어야만 할 경계조차도 넘지 못하고 있다. 15년이나 끌어온 광주 문제가 그렇고 세계 역사상 분단된 조국의 경계가 그렇다. 세계 현대 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라나는 2세들에게 문화적 감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광주 지역의 정서, 재정적 충족 조건, 역사의 전통 등이 충분히 고려되었어야 한다. 또한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기’식의 무리한 비엔날레보다는 아직도 넘지 못한 왜곡된 역사의 경계를 먼저 넘었어야 옳다.

 

글   김수진  기자 
사진   최혁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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