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을 넘으면 평지가 보인다'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6시 45분경 망월동에 도착했을때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준 것은 ‘천하민족통일대장군’ ‘지하5월정신여장군’이라고 새긴 장승과 솟대였다. 그곳에서 광주통일미술제가 열리는 망월동 묘지까지 약 4km에 걸쳐 길 양쪽에 꽂혀있는 만장에는 전봉준, 안중근 등이 남긴 글과 5ㆍ18 관련자 불기소 처분 항의와 통일을 염원하는 시민의 글이 적혀 있었다.
  망월동 주차장을 중심으로 거리에 대형 전시판이 마련되어 전국 3백여 작가의 2백50여 작품이 걸려있고 공동걸개그림과 판화, 조각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거리에 전시해 놓았기 때문에 밤새도록 켜놓은 백열전구와 밤이슬을 피하기 위해 덮어논 비닐을 보니 광주 비엔날레의 엄청난 전시관이 생각나 씁쓸해졌다. 굴곡있는 우리의 역사, 19세기 말 갑오농민전쟁부터 지금까지 근ㆍ현대사에 있었던 사건들, 5ㆍ18 민중항쟁에 대한 내용과 조국통일의 염원이 담긴 그림을 보면서 고통을 딛고 투쟁과 승리를 이끌어 낸 민중들의 모습과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꽤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제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학교에서 자습을 끝내고 곧바로 친구들과 이곳에 왔다는 김선미<창평고교ㆍ3>양은 “담임선생님께서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런 곳에 와서 보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고 해서 왔어요. 한 나라 안에서 민족이 민족을 죽이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데 다른 지역 사람들은 그 사실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단지 광주시민들의 일이라고 방관하지 말고 모두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정부의 주입식 교육과 언론의 축소ㆍ왜곡 보도에 의해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다른 고등학생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졌다. 죽 둘러 보고 24시간 전시하는 전시장을 지키기 위해 노숙하시는 광주ㆍ전남미술인 공동체에 계신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매일 이렇게 지키느라 힘들지 않냐고 묻자 “힘들긴, 그래도 하루에 약 5천명에서 2만명씩이나 오고 시민들의 호응이 좋아 별로 힘들지 않아”라고 말했다.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하고 돌아가 다음날 낮에 다시 찾아갔다. 구름낀 날씨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대절해 전국에서 온 대학생들과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 할머니, 할아버지 등 꽤 많은 사람들이 왔다. 광주 시위현장을 그린 그림을 보고 묻는 아이에게 차분히 대답해주는 엄마, 무비카메라로 작품을 찍는 사람, 배낭을 멘 외국인의 모습도 보였다. 과연 저 외국인이 우리의 5월, 광주를 얼마나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비엔날레를 보고 왔다는 나인숙<전남대ㆍ4년>양은 “평소에 역사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많이 했었는데 여기와서 말보다 행동으로 직접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광주비엔날레의 5월 정신전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과 추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여기오니 가슴에 절실히 와 닿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통일 미술제와 더불어 정신대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작품들의 특별전도 있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상처받은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광주통일미술제는 ‘역사는 산을 넘어 강물로 흐르고’ 라는 부제에 걸맞게 광주에서 통일로, 과거사를 딛고 통일로 지향하는 우리 민족의 열망과 노력을 담은 전시회라는 뿌듯함을 가슴에 안고 나왔다.

 

글  박윤자 기자
사진  최혁중 기자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